비밀에 쌓인 고려의학치료센터

김주원∙ 탈북자
2015.07.14
pharmacy_factory_b 평양의 장수고려약공장 직원들이 국민들의 건강증진에 필요한 고려약들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1990년대 초반 동유럽이 붕괴되면서 사회 주의 독재자들이 비참한 말로를 고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9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남보다 오래 살려는 김일성, 김정일의 욕망은 이 시기 만수무강연구소에 대한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앙당 5과와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각 당위원회에서는 만수무강연구소의 확장과 관련한 내부강연과 선전을 요란하게 진행했습니다.

당시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 당위원회에서는 연구원들을 위한 내부 강연을 통해 영국 왕궁국립연구소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국가지도자의 건강장수를 위한 연구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오직 독재자 일가의 만수무강을 위한 연구소가 전 세계에서 북한에만 있다는 사실을 저도 남한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김정일의 지시로 만수무강연구소가 확장되면서 새로 생겨난 ‘고려의학치료센터’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합니다.

‘고려의학치료센터’는 1991년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 2실인 식품보약화 연구실에 신설됐습니다. 이 치료센터의 역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의료기술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동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김정일은 한때 동의학을 서양에서 들어온 신 의학(양의학)보다 과학적이지 않다며 천시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김정일은 의학계에서 동의학 연구를 금지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동의학 기술발전을 보고받고 고령의 장수자들이 동의학 치료법을 많이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의학도 무시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일반 병원에도 동의 과를 다시 내오고 이름도 ‘고려의학과’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특히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에 비밀리에 조직한 동의치료조의 명칭을 고려의학치료센터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센터의 존재는 같은 만청산연구원의 성원들도 모를 정도로 비밀에 붙여졌습니다.

저도 만청산연구원 제2실에 속해 고려의학치료센터 연구사들과 같은 당 세포에서 생활하다 나니 토요일마다 생활총화를 함께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좀 익혔습니다. 동의학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오랜 옛날부터 개발되고 발전해왔습니다.

고려의학치료센터는 3명의 의학박사와 2명의 조수들을 합쳐 5명이 연구팀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장으로는 70고령의 구본해 박사였습니다. 연구팀에는 ‘정선생’이라 불리는 40대의 여성도 한 명 있었는데 중앙당 조직부 부부장 부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청진태생인 이 여성은 청진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옛 서적들을 읽으며 동의학과 점을 보는 기술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는 함경북도 당과 보위부, 보안서 간부들, 무역일꾼들의 관상을 봐주고 직접 동약을 만들어 병 치료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소식이 고위급 간부들에게도 전해지면서 평양에 올라와 중앙당간부들의 치료와 점도 쳐주던 과정에 병으로 아내를 잃은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연분이 돼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동맥경화증이 심해져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었고 김정일도 비만으로 동맥경화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김일성은 신석증, 피부종양, 골소송증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김정일도 40대 중반부터 당뇨병이 시작되었고 만성후두염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려의학치료센터는 김 부자가 앓고 있는 병을 동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에 쓰이는 약재들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 백두산제약공장과 정무원(현 내각) 보건국의 9호 담당부서에서 맡아 보장했습니다. 초기 연구를 위한 실험대상으로 김일성 고급당 학교 특설반의 간부들을 선택 했으나 연구조 책임자인 구본해 박사의 제의에 따라 외국인들로 실험대상이 변경되었습니다.

외교부와의 협조로 처음에는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 성원들과 가족들에게 동의 학으로 연구한 보약을 선물하면서 관찰했는데 차츰 소문이 확산되며 북한에 출장 오는 외국인들도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제의했습니다.

고려의학치료센터의 사무실과 치료실도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만청산연구원 청사에서 평양 지하철 혁신역 입구의 맞은 켠에 위치한 서성구역 중신동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만청산연구원의 비밀보장을 위해서였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은 호위총국 군인들이 주야로 경비를 서고 있는데 외국인 환자가 오는 날이면 군인들이 미리 연락을 받고 사복을 갈아입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접근이 금지된 내부의 다른 연구원들과 가까워질 가능성도 우려됐습니다.

옮겨진 건물은 서성구역 중신동의 중앙당 외교부 소속 외교단상점에서 창고로 쓰던 1층 4개의 큰 방이었습니다. 외교단상점은 해외에 출장을 나가는 간부들에게 옷과 트렁크, 구두를 비롯한 일체의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상점이었습니다.

그 창고의 일부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연구에 악용됐다는 의미입니다. 중앙당 5과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전용 초대소에서 해마다 교체되는 침대와 소파, 서류장, 카텐(커튼) 등 고급 가구류와 비품들을 고려의학치료센터 진료실과 휴면실, 치료실과 약제조실을 꾸리는데 제공해 주었습니다.

약제조실에 필요한 약초파쇄기와 건조기, 분쇄기, 혼합기, 대형냉장고도 외국산 고급으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진료실과 휴면실은 고려호텔의 특실에 버금가는 아늑함과 청결함이 유지됐으며 프랑스향수 냄새가 항상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외교부를 통해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각기 한 나라의 언어로 적힌 안내서도 항상 구비 되었으며 이런 책들은 외국에 주재한 북한 대사관을 통해 해당 나라의 고위간부들이나 외교일군들에게 배포됐습니다.

영어로 된 안내책자에는 만수무강연구소라는 명칭이 빠지고 ‘조선장수연구소 고려의학치료센터’이라는 우리말과 함께 영어로 코리언 메디컬 트리트먼트 센터(Korean Medical Treatment Center, Korean Longevity Institute. )라고 소개됐습니다.

안내책자에는 동맥경화증, 심근경색, 당뇨병, 노인성관절염, 후두염 등의 한의학적인 치료가 센터의 기본 요법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고려의학치료센터 말고도 연구원들은 고려호텔이나 양각도호텔, 해방산호텔에서 직접 환자들을 치료도 했습니다.

지방의 호텔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치료를 하는 의료봉사활동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치료의 목적이 김부자의 건강을 위한 한약재의 개발과 건강관리 방법을 찾기 위한 인체실험인 줄 누구도 몰랐습니다.

사연을 모르는 외국인들과 총련의 간부들이 자기의 귀한 몸을 실험대에 맡겼습니다. 실험대상이 되고도 오히려 치료를 받은 것이 고마워 사례비로 돈을 내놓는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총련의 한 상공인은 승용차를 기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재미를 본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서는 고려의학치료센터를 통해 일본산 중고차 수십여 대를 기증받아 기관용 대기차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동양의 우수한 의료기법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착각했던 사람들, 고려의학치료센터에서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제라도 알게 된다면 김일성, 김정일 정권의 만행에 치를 떨지 않을까요?

인민들과 이런 실험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의 저주라고 있었던 것인지 김일성, 김정일은 그렇게도 갈망하던 만수무강을 얻지 못하고 지금은 금수산의 무거운 돌집 속에 인형처럼 만들어져 세상 사람들의 영원한 구경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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