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 총국 “통남 황기농장”

김주원∙ 탈북자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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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강도 백암군 덕포지구에 조성된 대규모 감자농장의 전경.
량강도 백암군 덕포지구에 조성된 대규모 감자농장의 전경.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양강도에는 유달리 “아미산 총국” 산하의 농장과 목장들이 많았습니다. 양강도 삼지연군만 해도 “녹수리 꽃사슴목장”과 “포태 황구목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할 “통남 황기농장” 역시 삼지연군 포태감자농장 통남분장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양강도 보천군에서 삼지연과 이어진 도로를 따라 10km쯤 가다 보면 통남분장의 첫 마을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지은 지 오랜 살림집들입니다.

마을의 낡은 건물들 사이로 아담하게 지은 농촌문화주택 40여 채가 눈길을 끄는데 여기가 “통남 황기농장” 종업원들의 살림집들입니다. 그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산등성에 오르면 넓은 초원에 잘 지은 건물 3동이 나타납니다. 여기가 바로 아미산 총국 산하 “통남 황기농장”의 사무실입니다. 사무실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이곳 농장에 제일 큰 황기밭이 있고 주변엔 크고 작은 황기밭들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20미터가량 지나면 주변의 황기밭과 키 낮은 잡관목들 사이에 둘러싸인 너비 80미터 길이 100미터의 장뇌삼밭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흔히 ‘장뇌삼’을 ‘인조산삼’ 또는 ‘재배산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 아미산 총국 산하 삼지연군 “통남 황기농장”에서는 최소 6년생, 최고 12년생의 황기와 장뇌삼을 생산해 김일성 일가와 북한 고위층들에게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황기[黃芪]는 옛 중국의 한방 본초학서인 “농본초경”에도 소개된 콩과종의 여러해살이식물입니다. “농본초경”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부터 몸의 기를 보충하는 중요 약재로 황기를 많이 사용해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황기는 시대에 따라 이름도 다 달랐는데 고려시대에는 왕지(皇耆)라는 이름과 수판마(數板麻)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이조시대에는 감판마(甘板麻)로 불리다가 18세기에 들어서서는 맛이 달다고 하여 ‘단너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16세기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의학자인 허준은 자신이 쓴 책 “동의보감”에서 황기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허준은 황기에 대해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은 없다. 허손증으로 몹시 여윈데 쓴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 “동의보감”에서 황기에 대해 “원기를 회복해 살이 찌게 해 추웠다가 열이 나는 것을 멎게 하고 몸이 허약해서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치료하며 흉터를 없애고 오래된 상처에서 고름을 빨아내고 아픈 것을 멎게 한다”고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후에 나온 민간요법 도서들도 황기를 “강장강정효과가 있고 식은땀이 나는 것을 치료하며 이뇨작용과 종양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며 신체허약, 피로회복, 치질, 자궁탈출, 내장하수, 말초신경 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감옥에서 출소하거나 군대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돌아온 자식들에게 제일 먼저 닭곰을 해 먹입니다. 닭곰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황기인데 지금은 산림이 황폐화 되어 황기를 구하기도 힘이 들지만 옛날엔 산에 흔한 식물이었습니다. 황기가 이렇게 건강에 좋은 약재로 손꼽히게 된 것은 황기에 들어 있는 건강기능성 성분들 때문입니다. 황기에는 트리테르펜 사포닌(triterpene saponins), 이소플라보노이드(isoflavonoids), 다당류 그리고 20여 종의 미량원소가 들어 있습니다.

황기는 이렇게 닭곰이나 달여 먹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최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황기에 들어 있는 성분을 추출하여 주사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도 비만으로 당뇨병이 온 간부들을 위해 황기주사를 개발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양강도와 함경북도, 자강도를 비롯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황기가 더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야생으로 자란 황기를 채취해 약재로 사용하였으나 그 수요가 높아지자 1970년대부터 황기를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황기는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재배에 최적화된 장소는 북한의 양강도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아미산 총국에 지시해 양강도 삼지연군 통남리 일대에 황기농장을 만들었습니다. “통남 황기농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특별히 제공하기 위해 초기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8호 작업반’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김일성의 만수무강연구소를 모방해 김정일이 만들어 낸 아미산 총국으로 이관되었습니다.

황기가 잘 자라는 토양은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 되는 진참흙이 적합합니다. 땅이 너무 비옥하면 줄기와 잎만 무성해지고 기본 약초로 쓰이는 뿌리가 부실해 지기 때문에 보통은 산등성이가 아닌 산 중턱에 재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아미산 총국이 삼지연군 통남리에 황기전문농장을 내오게 된 배경은 주변 동북쪽 양강도 보천군 보서리 경계에 해발고가 1,760m인 고지봉이 있고 이곳 골짜기들마다 모두 맑은 물이 흐르는데다 기후와 토양조건이 적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황기는 1년생부터 씨받이를 할 수 있으나 “통남 황기농장”에서는 2년 이상 자란 황기에서 충실한 씨앗을 받아 종자로 사용했습니다. 파종은 4월 초에 하는데 황기의 씨앗은 껍질이 단단하여 땅에 심으면 발아가 되지 않고 썩는 율이 높았습니다.

수확은 6년 이상 혹은 12년 이상 자란 황기로 매해 10월에 채취하였습니다. 이렇게 수확한 6년산 황기는 주로 북한의 고위간부들에게 제공되는 선물용이었고 12년산은 김일성 일가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만 특별히 제공되었습니다. 당 간부들 선물용인 6년산 황기는 규모가 일정치 않은 6개의 밭에서 돌려가며 수확을 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에 제공되는 12년산 황기와 장뇌삼은 면적이 큰 밭에서 일정하게 구역을 나누어 재배하였는데 주변엔 여러 개의 경비초소가 있었습니다.

재배산삼은 좁은 판자를 틈틈이 박아 공기가 잘 통하도록 만든 상자에서 키웠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여기서 키운 인조산삼을 먹었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인조산삼이 아니더라도 북한에서 채취한 산삼은 모두 김일성 일가에 바쳐야합니다. 이마도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정도의 직책을 가진 간부들에게 따로 선물을 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1992년 생일 50돌을 맞는 김정일에게 “통남 황기목장”은 12년산 인조산삼 50 그루를 살아 있는 것으로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통남 황기농장”의 밭들은 주변에 키가 큰 나무들을 모두 제거하고 키 낮은 잡관목들만 남겨 두었습니다. 황기 밭에는 잔디가 자라지 못하도록 쑥이나 다른 풀들을 심었는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땅딸기’라는 불리는 야생딸기가 많이 자랐습니다. 산나물 캐러 온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딸기를 따먹으려고 접근하려다가 초소에서 주야 교대로 경비를 서는 황기농장 직원들에게 쫓겨나곤 하였습니다. 황기는 보통 너비 1.5m 길이 20m의 둑을 지어 심었는데 둑과 둑 사이에는 깊이 60cm 너비 1미터의 도랑을 만들고 여기에 비료대신 영양흙이라는 부식토를 채워 넣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곳 황기목장 종업원들은 집에서 가축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나 돼지는 물론 심지어 토끼도 사육하면 안 됐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 동식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저로서도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만수무강연구소도, 김정일이 가지고 있던 아미산 총국도 이젠 모두 김정은이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텔레비죤(TV)을 보면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아마 일찍이 세상을 등진 조상들을 닮아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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