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회피 (2)

서울-이현주 leehj@rfa.org
2015.10.28
defectors_foundation_b 서울 노원구 공릉동 평보빌딩에서 열린 '공간 이음'개소식에서 직원들이 쿠키, 머핀 등을 판매하고 있다. '공간 이음'은 새터민의 취업과 창업을 유도하고 자립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복합커뮤니티공간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통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남쪽에서 많이들 하는 얘깁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남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탈북자가 보는 남한 사회, 남한 사람에 대한 얘기는 그 동안 자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엔 반대로 남한 사람들이 보는 탈북자, 북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불편한 얘기, 신랄한 비판도 피하지 않고 진솔하게 담아보겠습니다.

이 시간의 제목은 <남과 북,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태를 함께 얘기해보고 진단해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진행자 : 이 시간 함께 해주시는 분이 있죠. 탈북 청년들과 오랫동안 활동해온 자칭 천재천사, 북한인권단체 <나우>의 이영석 교육팀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석 : 반갑습니다.

진행자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책임과 회피 문제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 선생은 탈북 청년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책임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주셨는데요...

사실 이게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책임이 목숨과 직결되는 북쪽 사회의 특성이라는 걸 고려해야하지만, 일반 남한 사람들이 이런 상황까지는 잘 모르죠. 그래서 이런 책임을 회피하는 성향은 자칫하다가는 탈북자들이 무책임하다는 선입견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영석 : 그렇죠. 남한에선 탈북자를 일반 회사에서 고용을 하면 정부에서 혜택을 주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사례처럼 북한 이탈 주민이 실수를 하면 인정하지 않고 남한식 표현으로 나는 모르겠소...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싫어하게 되면 결국 회사에서는 아예 탈북자를 받지 않겠다, 차라리 중국 조선족이나 외국 노동자를 받겠다...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그런 경우, 대학에서도 탈북 대학생들의 이런 문제가 불거지니까 총학생회 차원에서 탈북대학생 받지 말아달라고 대학 측에 문건을 보내게 됐어요. 학교 측에서도 그런 의견을 무시를 못하니까 양해를 구하고 탈북 학생 수를 줄인다던지 하는 경우도 있고요. 직업훈련을 위한 교육기관에서도 탈북자들을 굉장히 많이 모시고, 교육도 하다가 이런 일들로 서로 싸우고... 이런 문제가 생기니 그 학원에서 탈북자를 위한 수업을 다 없애 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기니까 안 좋은 영향이 있다고 봐야죠...

진행자 : 이 정도면 그저 그런 성향이 있다고 넘겨버릴 일은 아니네요.

이영석 :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남한 사회에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성장과 발전도 없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걸 그냥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아예 원인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탈북자는 우리 회사 못 들어오게 한다, 이런 결정이 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습니다.

진행자 : 사실 직장은 돈,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곳이니까 탈북자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만 해달라고 할 수도 없네요. 그렇지만 아예 탈북자를 받지 않는 것보다는 좀 다른 해결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이영석 : 회사는 돈을 버는 게 목적인데 무조건 봐달라고 할 수는 없고 자기 돈을 손해 보려는 분들은 극히 드물죠. 그래서 저희는 회사와 관련된 분들을 만날 때는... 봐달라,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고 나가라 하지 마시고 혼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몇 시간 더 일하게 한다든지 벌칙이나 벌금으로 대체해 달라고 하죠. 손을 놓지 말고 계속 같이 가자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같이 지내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되거든요. 이런 고비를 한두 번 잘 넘기면 회사생활도 오랫동안 잘 합니다. 그런데 초반에 서로 원칙대로만 하려고 하다보면, 나가라고 하고 더 이상의 발전이 안 되는 거죠.

진행자 : 직장인들도 그렇지만 사실 젊은이들, 대학생들은 그때가 정의감에 가장 불타고 의협심이 강할 나이인데 그런 친구들조차 책임을 회피하려는 습관이 있다는 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이영석 :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학생이면 지성인들이지 않습니까? 조금 바뀌었지만 본인이 궁지에 처하면, 어려움이 닥쳐 급하면 본능이 나오기 마련인데요. 그 중에 하나가 책임회피, 나는 모른다... 이런 말을 많이 쓰면서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죠. 솔직히 남한 대학생들은 탈북 대학생을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은 없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몰라도 반대하는 친구들은 없거든요. 그런데 같이 공부하는데 나쁜 영향을 준다던지 그룹별로 자주 공부를 하게 되는데 같이 해야 하는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던지 이럴 때는 북한, 일본, 중국 국적에 상관없이 싫다고 얘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도 ‘미안하다’라고 하면 잘 넘어가는데 끝까지 잘못이 없다, 왜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느냐... 계속 이런 태도를 보여서 아예 그룹 공부를 같이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행자 : 결국에는 혼자 생활하게 되는, 자발적인 모서리가 되는 경우군요.

이영석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수 친구들은 꾸준히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진행자 : 그런 모습들이 남한 사회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이런 문제에 대해 국제 표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끝까지 부정해야 살아남는 사회는 사실 북한이 유일할 것 같습니다.

이영석 : 지금 국제사회를 보더라도 북한 외교관들이 유엔대표부에서 고집을 피우고 인정하지 않는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요. (웃음) 북한에만 남아 있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남한 사회에서 또 직장에서는 유연하고 남의 의견,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고 책임을 지고... 이런 사람을 좋게 평가를 합니다. 기성세대들이야 여태껏 굳어온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더라도 청년들은 저희가 하는 이 얘기를 한 번쯤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영석 : 밖에서는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서 목숨에 뺏어간다던지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북한 안에서는 그렇지 않지만요. 자기 스스로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걸 무서워하지 마시고 사람들한테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남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친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지난 시간에 방송을 시작하면서 탈북자들을 잘 삶아둔 국수에 육수만 부어둔 것 같다고 비유하셨는데... 사람은 음식을 비유해서 좀 죄송하지만...(웃음) 결국 이영석 선생님도 나아질 수 있는 그 잠재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시는 건가요?

이영석 : 그렇죠. 왜냐면 남과 북, 전 세계적으로도 사람은 거의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본인이 앞으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죠. 북한에서 와서 얼굴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남한에서 왔다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똑같거든요. 앞으로의 발전이 중요한 것이죠.

진행자 : 결국 태도의 문제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영석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책임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합니다. 권위 없는 책임이란 있을 수 없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권위를 주지 않는 북한 사회, 책임을 요구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책임과 반성이 없는 개인 또는 사회는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순 없겠습니다.

<남과 북, 우리는>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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