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천 싸스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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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한때 남북교역 규모는 연간 10억 달러에 가까웠을 정도로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2010년 남한에서 5.24 대북조치가 발표된 뒤 개성공업지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북교역이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에는 남북관계가 풀려 교역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리는 남북경제협력 일꾼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14년간 의류분야에서 대북 임가공무역을 한 이명천 싸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만나보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이명천: 네, 안녕하세요.

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명천: 5.24조치 이후로 대북사업을 못 해서 작년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했는데요.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얼마 전부터 잠시 일을 멈추고 쉬고 있습니다.

기자: 아무래도 생활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명천: 네, 어려움이 많죠. 저뿐만 아니라, 대북사업을 했던 분들 대부분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5.24조치 이후로 사업을 접고 폐업을 신고한 업체들도 많습니다.

기자: 대북사업 중단으로 대표님께서도 큰 손해를 봤을 것 같은데, 그동안 피해 금액은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까?

이명천: 피해 상황을 모두 금액으로 환산하면 엄청나죠. 5.24조치 이후 순수 피해액만 따지면 150만 달러 정도 됩니다.

기자: 과거 북한에서는 의류 사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옷을 취급했습니까?

이명천: 스포츠 의류와 등산복과 같은 레저 의류 등을 많이 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는 어느 회사와 손을 잡고 사업을 했나요?

이명천: 저희는 주로 봉화총회사와 거래했습니다.

기자: 그러면 생산 공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명천: 남포공단과 평양 인근 지역에 있습니다.

기자: 남북교역이 중단되기 전까지 사업은 괜찮았습니까?

이명천: 5.24조치 전까지 10년 넘게 거래해왔는데요. 북한과 그런대로 업무 협조가 잘 됐고요. 제품의 품질도 좋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이익을 내면서 해왔죠.

기자: 대표님은 대북사업을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이명천: 저는 1999년 5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자: 대북사업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는지요?

이명천: 일단 북한 지역이 생산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었고요. 게다가 품질도 좋았습니다.

기자: 중국이나 윁남(베트남) 같은 곳과 비교해서 품질도 앞선다는 얘기인가요?

이명천: 품질도 품질이지만, 일단 언어가 통한다는 점에서 사업하기가 아주 편했습니다.

기자: 꼼꼼하게 제품을 잘 만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북한 근로자들이 부지런해서 그렇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교육을 잘 한 결과라고 보십니까?

이명천: 물론 교육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손재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원래 손재주가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북한 관리자들도 긍정적으로 계속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진짜로 사업 초창기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북한은 많이 변한 겁니다. 언어가 우선 순화됐고요. 그에 따른 행동과 의식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한이 자기네 북한보다 잘 사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중에 통일됐을 때 우리 남북경협 업체들이 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의식의 변화도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명천: 사업 초창기만 해도 저희가 명함을 건네면 북한 책임자가 명함이 왜 우리말이 아닌 한자와 영어로 돼 있느냐며 야단을 치고 그랬는데요. 지금은 그 사람들도 의식이 바뀌어 이해하고, 자기들도 영어를 쉽게 쓰고 있습니다.

기자: 결국 북한 관리자들도 남한 사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인가요?

이명천: 그렇죠. 저희와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죠.

기자: 대북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이 뭐였습니까?

이명천: 자주 만나서 사업 얘기를 하면 좋은 발전이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답답했죠. 기껏해야 1년 한두 번씩 만나서 상담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체크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는 겁니다.

기자: 그러면 그때마다 방북신청을 해서 북한에 들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이명천: 일단 정부의 방북 승인을 받아야 하고, 게다가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그런 게 번거로운 거죠. 경비도 부담스럽고요.

기자: 사업하시면서 방북은 어느 정도 했습니까?

이명천: 5.24조치 이전에는 개성에서 1년에 두 번씩 미팅을 했습니다.

기자: 북한 내륙에 진출한 기업도 개성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까?

이명천: 우리 정부의 도움으로 상반기 한 번 하반기 한 번 개성에 들어가 북한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이 경우 북한 관계자들은 미팅을 가지려고 일부러 평양에서 내려온 거네요?

이명천: 네, 그렇습니다.

기자: 개성이 열리기 전에는 주로 어디서 만났습니까?

이명천: 초창기에는 베이징에서 만났고요. 나중에 단둥이 활성화되면서 단둥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기자: 아무래도 개성에서 만나는 게 시간과 경비 면에서 절약됐을 것 같습니다.

이명천: 그럼요. 특히 시간이 많이 절약돼서 편리했습니다.

기자: 개성으로 내려오는 북한 사람들은 대표님만 만나고 가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남한 기업 대표들도 함께 만나나요?

이명천: 시간을 짜서 하루에 7~8개 업체를 만납니다. 당연히 토론할 때는 1대 1로 하고요.

기자: 그러면 하루 동안 남한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이명천: 아닙니다. 개성에 내려오게 되면 2~3일씩 머무르면서 또 다른 남한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더라고요. 보면 항상 그렇게 계획을 잡고 오는 것 같습니다.

기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다시 북한에 들어가 사업을 하실 의향이 있는지요?

이명천: 5.24조치가 풀리면 당연히 가야죠. 그리고 하게 될 경우 사업도 더 늘릴 계획입니다.

기자: 끝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남북경제협력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이명천: 다른 거 없습니다.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5.24조치를 점진적으로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이명천 싸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명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