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선 기아대책 대북사업본부장

서울-노재완 nohjw@rfa.org
2014.07.16
ahn_hyangsun-305.jpg 지난 15일 서울 가양동 기아대책 사무실에서 만난 안향선 대북사업본부장.
RFA PHOTO/노재완

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남한에는 여러 민간 구호단체가 있는데요. 이 중에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활동을 벌이는 구호단체도 있습니다. 오늘 만나게 될 주인공은 기아대책의 안향선 대북사업본부장입니다. 안 본부장은 10년 가까이 북한을 오가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대북 지원사업의 전설로 통합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안향선: 네, 안녕하세요. 안향선입니다.

기자: 2010년 5.24조치가 발표되면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사업은 거의 중단됐습니다. 기아대책의 대북지원은 어땠습니까?

안향선: 대부분 단체들이 그런 것처럼 저희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라진선봉 지역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것은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기본 사업은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기자: 가장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적은 언제이며, 어떤 일로 다녀오셨습니까?

안향선: 2011년도 12월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방북 목적은 평안남도 강남군에 지원했던 밀가루에 대한 분배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당시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안향선: 네, 저희 같은 경우 운이 좋게 예정했던 일정은 다 소화하고 나왔습니다.

기자: 대북지원 사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경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된장을 가져다가 여기 남한에서 판매하는 일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안향선: 북한 된장을 반입하게 된 것은 협동농장에서 콩 재배를 위해 계약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거기서 재배된 콩을 갖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 해서 된장을 만들게 됐고요. 또 된장 판매를 통해 북한 내에서 시장경제를 경험하게 할 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같은 남북협력 사업이지만, 개성공단과는 사업 취지 자체가 다르죠.

기자: 지금은 5.24조치로 된장 반입이 어렵죠?

안향선: 네, 반입이 안 됩니다.

기자: 북한 된장 반입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안향선: 된장 사업은 2002년에 준비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제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입니다. 그때 처음 저희가 만든 된장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기자: 북한 된장은 5.24조치가 취재진 2010년 5월까지는 들어왔겠네요?

안향선: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된장 반입은 2009년 초까지만 들어왔습니다.

기자: 북한 된장의 이름이 ‘다리돌 콩 된장’이라고 하던데요. 다리돌의 의미가 뭡니까?

안향선: 다리돌은 징검다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남북교류와 통일의 다리 역할을 하자는 의미에서 다리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

기자: ‘다리돌 된장’은 여기 남한 된장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안향선: 다리돌 된장은 대량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화학조미료나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순수 전통방식으로 장을 담그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곰팡이가 피고, 갈변현상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사실 방부제를 넣은 된장에선 곰팡이가 피지 않거든요.

기자: 다리돌 된장은 남한에서도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동안 어느 정도 판매했습니까?

안향선: 북한에서 된장을 수입해 판매했던 5~6년 동안 100톤 정도를 팔았습니다.

기자: 판로는 어땠습니까. 백화점이나 대형 상점 등에서도 판매가 이뤄졌습니까?

안향선: 아닙니다. 물량이 적어서 백화점 등에선 판매가 안 됐고요. 주로 교회나 관계된 곳에서 직거래를 통해 판매가 이뤄졌습니다. 저희 재단 안에는 ‘행복한나눔’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있어 주로 이곳을 통해 영업했습니다.

기자: 판매를 통해 생긴 수익금은 어떤 일에 쓰셨습니까?

안향선: 된장을 가져오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비용이 있어서 사실 수익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기보다는 북한에서 만든 된장을 우리 남한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사업을 진행했던 거고요. 수익이 발생했던 부분들은 북한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모두 사용했습니다.

기자: 여러 가지 사업을 위해 북한을 많이 다니셨는데, 방북 회수가 궁금합니다.

안향선: 2004년부터 방북을 했는데요. 30여 회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기자: 북한 어느 지역을 주로 다니셨습니까?

안향선: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역을 많이 다녔습니다. 거기서 주로 했던 일들은 수자원 개발사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물을 관리하는 일을 했던 거죠. 그리고 보건 의료분야에서 병원을 건립하는 일도 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안향선: 북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다녔는데, 모두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수자원 개발일 겁니다. 그만큼 북한에서 물을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북에 가보지 못해 수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경우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빠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수자원 개발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안향선: 북한에는 정수장 시설이 없고, 오폐수 시설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정수하는 일을 돕고, 오폐수 시설을 만드는 데 지원하고 그랬습니다. 물을 깨끗하게 하려면 일단 생활 폐수를 없애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일하면서 우연히 기회가 생겨 이북이 고향인 부모님을 모시고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90세 가까운 아버지가 북한에 다녀오고 나서 평소 말씀을 잘 안 하셨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웬만해선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분이었거든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돼서 마음대로 북한을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기아대책 섬김의 안향선 대북사업본부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본부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안향선: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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