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성우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층 건물 건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타워 크레인, 대형 기중기입니다. 뼈대가 되는 본체 기둥이 서 있고 이 기둥의 맨 꼭대기에 크레인의 팔 역할을 하는 붐(Boom)이 길게 달려 있습니다. 이 붐으로 높은 층까지 건설 자재를 운반하는 건데, 흡사 로봇 팔과 같습니다.
이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건물이 올라가면서 함께 따라 높아지는 걸 보면 마술 같기도 한데요. 요즘은 이런 첨단 건설 장비들과 자재 덕택에 건설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INS- "아... 저희 집 아파트 옆인데 저걸 언제 지었지 하니까 겨울에 지었대요. 북한 같았으면 거기에 사람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해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다들 잡담하고... 남쪽 건설 현장엔 사람이 별로 없어요. "
그러나 아무리 기계화됐다고 해도 건설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는 이 인력들을 일공 노동, 남쪽에서는 속칭 노가다라고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로 채웁니다. 몸으로 때우는 직업이라 탈북자들도 한두 번쯤은 해보는 일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은 남한의 건설 이야기, 첫 번째 시간입니다.
진행자 : 김태산 씨, 지난 시간에 남쪽에서 와서 첫 번째 일자리가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 속칭 '노가다' 일이었다고 하셨는데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김태산 : 참 힘들었어요. 노가다라는 말은 일본말인데 하루하루 나가서 품팔이하는 거죠. 그런 일이 제일 많은 것이 건설 현장. 즉, 집을 짓거나 파괴, 철거하는 그런 현장입니다. 그런 일자리는 힘드니까 누가 쉽게 가려고 하지 않아요. 근데 가서 일해 보니까 남쪽은 기계화 돼서 쉬울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북쪽은 출근해서 좀 일하다가 헐렁헐렁 담배도 좀 피우고 쉬고 하는데 여기는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담배 한번 피울 수 있는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있고 계속 일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모든 작업 공정이 맞물려 돌아가고 효율 높게 인력을 이용하려니까 짬이 없어요. 그러니까 북쪽보다 일하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북쪽은 뭐, 문 선생도 잘 알겠지만 건설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하루 출근해서 고저 좀 하다고 힘들면 쉬자하며 30분 쉴 때도 있고 1 시간 쉴 때도 있고... 그리고 또 그런다고 해도 누가 잔소리 안 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해서는 어디 가서 밥 벌어 먹고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처음엔.
문성휘 : 제가 희천기계공작공장 확장 공사 때 나가봤는데요. 거기서 돌격대 생활을 했어요. 북한에서 일이 제일 힘든 곳이 돌격대라고 하잖아요? 근데 남한에 와서 일을 해보니까 돌격대도 남한에서 일하는 것의 30% 밖에 일을 못해요. 가장 힘들다는 돌격대도 아마 남한 사람들이 보면 굉장히 놀랄 거예요. 길이가 4미터 되고 두께가 25센티 되는 통나무... 한 입방이 넘거든요? 그런 걸 메고 운동장 하나만큼을 옮겨 놔야 하는데 한 사람이 그걸 메고 옮긴다는 게 보통이 아니에요. 문제는 그런 통나무를 한번 나르고는 30분, 1 시간씩 잡담을 하고 쉰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몇 시간이 안 되죠.
김태산 : 이 통나무 같은 걸 남쪽 같으면 기계로 훌쩍 나르겠는데 북쪽은 그걸 사람이 운반하니.... 그렇다고는 해도 남쪽에서 똑같은 일을 했으면 나르고 또 이어 나르고 쉬지 게끔 할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어폐가 있갔는지 모르갔지만 출근하면 다 같은 처지에서 배급타고 돈타니까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한번 일하러 나가면 하루 60-80달러 정도 받죠? 이렇게 받으니까 그 값을 한다는 것이 참 힘들어요. 근데 북쪽보다 노동해서 내 앞으로 차려지는 것이 많고 또 엄청나게 더 이득이 나니까 할 말은 없습니다.
진행자 : 김태산 씨는 처음에 그 일 시작하셨을 때 일자리를 어떻게 찾으셨어요?
김태산 : 인력 사무소라고 있어요. 그곳에 새벽 5-6시부터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몰려들어요. 우리 탈북자 중에서 나보다 먼저 온 젊은 친구가 소개해서 따라갔는데 그 때가 여름이니까 새벽 6시라도 벌써 밖이 훤하지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벌써 사장이 누구는 어디, 누구는 어디해서 다 보내더라고요. 친구가 '여기 북에서 같이 나온 분인데 일자리 하나 주세요.' 하니까 척 보더니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요. 오십이 넘었다니까 안 되겠대요. 친구가 막 사정을 하니까 나한테 힘든 일 할 수 있겠냐고 다시 물어서 할 수 있다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따라 가보니 상점 건물 철거 현장이었는데 아침에 나가서 저녁 10시까지 일하니까 퇴근할 때 일이 힘들어서 조금 더 주는 거라고 10만원을 주더라고요. 일력 사무소에 가니까 소개비로 10 퍼센트, 1만원을 떼고....
진행자 : 소개비가 적지 않네요.
김태산 : 아 참 처음에는 아까워 죽겠더만요. 북쪽에서 막 왔으니 10달러면 얼마나 커요. 내 일년치 노임이야. 그런데 내가 혼자 일을 하자면 어디 일 자리가 있는지 모르니까 재간이 없죠. 어쨌든 하루 나가서 힘들게 일을 했는데 손에 돈을 딱 쥐니까 집에 돌아올 때는 기분이 좋아요. 거 왜 있잖아요? 옛날 영화 보면 일제시대 때 탄광, 임산 노동자들이 함바집 가기 전에 들려서 한잔씩 하고 가는 그런 거 알죠? 일공 노동이라는 걸 나도 하니까 똑같아. 저녁에 술이 당기더라고요. 근데 술을 너무 많이 먹으면 다음 날 일을 못나가니까 정말 조금만 마셔야해요. 그렇게 몇 달 하니까 그 인력 사장에게 저 사람은 나이 들었지만 일은 열심히 잘 하는 사람으로 인정이 돼서 그 다음부터는 가면 일은 힘들지만 돈은 되는 곳에 잘 보내줬어요. 그렇게 거기서 한 6개월을 따라다니며 일을 했네요. 일공 노동이라는 것이 하루에 6만원 씩, 한 달 동안 매일 일을 할 수 있으면 한 250만 원정도 받겠는데 비오면 일 못하고 추우면 못하고 자재가 안 와서 하루 쉬고...이러니까 고저 일 절반, 휴식 절반. 돈이 그렇게 많이는 안 되더라고요.
진행자 : 그냥 몸을 써서 하는 일이니까 몸이 축나고 하니까 오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문성휘 : 근데, 요새는 외국인 노동자들, 불법 체류로 돈 벌러 오는 사람이 한 해에도 몇 십만 명이니까 그런 힘든 일용직 노동일의 80%는 다 이런 사람들이 채워요.
김태산 : 그들은 돈을 벌려고 왔기 때문에 사장이 시키면 그대로 하는데 우리는 여기 사니까 그렇게까지 다급하지 않거든요. 못 하겠다고 하고 말대답도 하고 그러죠. 그러니까 일용직 노동일도 요즘은 일자리가 찾기가 어렵습니다.
진행자 : 탈북자 중에 이 일을 하려고 하시는 분들은 계십니까?
김태산 : 처음 온 사람들은 뭘 모르니까. 인맥도 없고. 그러니까 일단 인력 사무소부터 가는 거예요. 거기서 좀 눈이 틔면 오토바이 배워서 배달도 하고 운전을 배워 회사에도 들어가는데 2-3년 정도 걸리죠. 맨 처음 시작하는 일은 일공노동이 많아요.
문성휘 : 그렇죠. 1-2년이지 그 후에는 누가 노가다를 뛰자고 하겠어요.
진행자 : 그렇군요... 근데 남쪽 남성들 중에도 젊었을 때 일용직 건설 노동자 일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김태산 : 맞아요. 인력 사무소 가보면 세 가지 부류가 있어요. 우리 탈북자, 중국 동포들 그리고 대학생들이나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 그 중에 이 젊은이들이 제일 일을 못해. 이런 일을 못해봐서 그런가? 일을 제일 못해요.
진행자 : 탈북자들은 이런 인력 사무소에서 일 잘 한다고 환영을 받을 것 같은데요?
김태산 : 사람 나름인데 술 마시는 걸 절제를 못 해서 문제죠. 일공노동이라는 것이 새벽 5-6시에 일을 나가야하는데 술 5-6병씩 마시고는 다음날 그렇게 못 일어나죠. 그러니까 인력 사무소에서 조금 좀 꺼리는 경우가 있어요. 나가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술 먹고 안 나오고 힘들면 안 나오고 그러니까 문제가 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진행자 : 일 하시면서 남쪽 사회 많이 배우셨겠네요.
김태산 : 북쪽에서도 사실 이런 일은 안 해봤는데... 인생 수업을 좀 산 셈이죠.
북쪽에서는 건설 현장에 돌격대로 일반 주민들을 동원합니다. 다들 직장에서 이 돌격대로 뽑히면 진짜 죽을 만큼 싫었다고 말씀하시던데요. 남자들은 군대 10년, 평균적으로 돌격대에 3년... 13년을 국가에 바칩니다. 문성휘 씨는 이런 북한 당국이 도둑과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건설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INS -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휘, 김태산 :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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