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고요. 친구들도 많고 여성들에게도 인기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재주는 재주 중에 으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우스갯소리도 잘 하고 재밌던 사람이 남쪽에선 재미없다, 썰렁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 이유, 짐작 하시겠습니까?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웃기는 얘기 한번 해보겠습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 요즘 희극 방송, 개그 콘서트가 한창 인기인데요.
즐겨보세요? 재미있으십니까?
문성휘 : 김 선생님은 재미있으십니까?
김태산 : 난 솔직히 그다지 즐겁지 않아요.
문성휘 : 사마귀 유치원이었나요? 왜 얼마 전에 국회의원을 풍자해서 재판장에까지 갈 번 하지 않았습니까?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한다고 해서요. 그런 사회풍자 유머는 재밌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와서는 다들 배를 잡고 웃는데도 나는 하나도 안 재밌더라고요. 이제는 잘 보고 웃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식의 희극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겁니다.
진행자 : 왜 그럴까요?
문성휘 : 우리 흔히 그런 말들을 많이 해요. 북한과 남한은 웃음 코드가 다르다고요. 같은 민족이라도 오래 갈라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한데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가 낳은 영향이겠죠. 일단 북한은 체제에 대한 비난을 전혀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걸 최대한 돌려서 은유를 많이 사용하죠. 그에 대해 남한은 노골적이라고 할 만큼 직설적입니다. 북한은 예를 들면 새로 나온 김정일 초상휘장을 어떤 노인이 달고 나왔는데 젊은 아이들이 빼앗으려고 하니까 노인이 초상휘장을 떼서 때가 꼬질꼬질한 내의에 꼽았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수령님이 바깥 정세가 위험하니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했답니다... 이것보세요. (웃음) 진행자는 하나도 안 웃죠? 우리는 많이 웃었던 말인데요...
김태산 : 북쪽에서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면 문제가 되니까 정치적인 얘기보다는 우리 보통 북쪽에서 ‘상소리’라고 하는 야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남쪽에서는 내가 놀랄 정도로 수위가 높게 정치나 사회 문제를 희화시키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과부가 바람을 폈는데 여맹조직에서 과부를 불러 비판했어요. 그러니까 과부가 벌떡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아니! 나한테 달린 걸 가지고 내 맘대로 했는데 이거 어디 여맹 것인가!’ 그랬답니다. (웃음) 북쪽 사람들은 우습다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에게는 여맹이 무인지, 사람은 왜 데려다가 비판을 하는지 다 설명을 해줘야 웃을 수 있겠는데 그 설명을 다 듣고 나면 이해나 하는 정도지 웃을 순 없는 겁니다. 저도 여기 와서 유머 책들을 많이 사서 읽어봤어요. 근데 이걸 어디 읽기나 하지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타고난 재간이 아닌 다음에야 그걸 써 먹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아, 그거 진짜 안 돼요. 근데 진짜 화가 나는 것이 그렇게 책에는 다 나와 있는데도 실생활에서는 절대 써먹으면 안 되는 유머가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상소리라고 하는 야한 얘기... 여기서는 특히 여성 앞에서 사용하면 큰 일 납니다. 경찰에 잡혀들어 가죠. (웃음)
김태산 : 하긴 뭐 남쪽에서는 여성 앞에서 이런 야한 얘기를 하면 성희롱이라고 해서 걸리는데 처음에는 아니,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런 얘기도 할 수 있는데 여긴 뭐 인간들이 살지 않는 특별한 사회인가... 오기가 나더라고요. 근데 실상 내가 일하면서 보면 그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뉴스에 나오는 건 어떤 경우인가 싶기도 하고요.
진행자 : 같은 내용도 어디서 어떻게 말 하느냐에 굉장히 틀린 게 이런 얘기죠. 어쨌든 저도 그런 농담을 들으면 상당히 당황할 때가 있는데 북쪽에서 오신 여성분들은 진짜 잘 받아치시더라고요.
문성휘 : 여자들도 같아요. 여자들도 정치적인 얘기를 안 하면 무슨 말을 하겠어요? 생활 총화하던 얘기를 계속 할 수도 없고요. (웃음) 그러니까 여성들도 웃을 일이 없는 겁니다. 북한에는 심지어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안녕하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그러고 세 번째 말부터는 남을 욕하는 거랍니다. 왜? 남을 욕하지 않으면 정치적 얘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누구 누가 출근을 안 했던데... 이건 욕이죠? 근데 요즘 쌀값이 너무 올랐지, 이거 나라에서 뭘 하는 거야? 이러면 정치적인 말이 되는 겁니다. 이걸 피하자니 ‘헤벌쭉하게 웃는 걸 보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냐?’ 이런 식이 돼버리는 거죠.
김태산 : 여자들 세 명이 모이면 하는 소리는 유머적인 말도 들어가면서 자기 남편 씹어 먹기... (웃음)
진행자 : 그건 남쪽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데요? (웃음)
문성휘 : 북한은 또 뭐가 문제냐면 군대나 돌격대 등 집단생활이 굉장히 많은데 이런 곳이 그런 유머의 생산 공장이 되는 것이죠.
김태산 : 군대 갔던 여성들, 돌격대 갔던 여성들... 남성들 속에 그 걸쭉한 농담의 포화를 견뎌야 하죠. 그리고 그런 얘기라도 못하면 그 강도 높은 힘든 노동 속에서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진행자 : 숨통을 터주는 거네요.
김태산 : 그렇죠. 그래서 항상 그런 얘기를 걸쭉하게 재밌게 잘 하는 사람이 인기입니다. 당 정책 선전 부장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보다 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일을 쉽게 하고... 어쨌든 유머의 힘은 센 것 같습니다.
남쪽에 ‘간 큰 남편 시리즈’라는 게 있습니다. 대강 이런 내용인데요. 50대에 부인한테 말대답 하는 남편, 60대에 외출하는 아내에게 언제 돌아오냐고 묻는 남편, 70대에 아내가 외출할 때 따라 나서는 남편... 20대엔 반찬 투정하는 남편, 30대엔 아침밥 차려달라는 남편이 간이 크답니다. 그럼 세상에 가장 간 큰 남편은? 간 큰 남편 시리즈 얘기를 모르는 남편이라는데요. 몇 년 째 남쪽에서 인기 있는 유머인데 재밌으셨습니까?
한국에서 가정 내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남성의 권위를 풍자한 유머입니다. 체제와 사회가 다른 남북이 같은 곳에서 웃음을 터뜨리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같이 웃지 못하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요?
함께 웃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북의 유머에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