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마영애 씨, 미국서 보는 북한의 현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8-09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씨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너무 비참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전기가 없어서 기차가 보름씩 출발하지 못 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엄청난 무기를 만들어 대한민국이나 미국을 향해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실험하는 김정은이 용서가 안 된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그리고 오토 웜비오 사건을 보면서 북한에서 태를 묻고 출생한 것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봅니다.

현재 뉴욕에서 북한인권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 데 세계인들은 ‘북한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미 주류 사회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고, 그들의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를 잘 못합니다. 왜냐면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그런 나라에서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그 나라(북한)에 감옥이 모자라서 감옥을 더 지어야 되는 이런 어려운 상황, 그래서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리고 처형하는 문제를 볼 때 자유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그것이 도대체 이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 동안 미국 의회나 유엔에서도 증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증언하면서 느낀 점 있으면 말해 주시죠.

: 제가 미국에 와 살면서 미국 국회에서도 증언했었고, 그리고 뉴욕에 있는 유엔에서도 두 번이나 유엔총회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문제를 논의하는 그런 자리에도 제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북한이 인권을 유린하고 수많은 죄 없는 사람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 넣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고요. 그들(인민)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 안 하는…..북한이라는 나라가 그런 일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관리들도 유엔 총회에 참가하지요.

: 유엔에서는 해마다 9월부터 12월 사이에는 각 나라가 자기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유엔에 들고 와서 상의 하고 방안 책을 찾고 하는데, 북한의 관리들은 유엔총회에 참가해서 도대체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 만 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탈북인들이 증언자로 활동하고 있지요.

: 미국에도 많은 탈북인들이 정착해 있고. 그들이 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살다가 그 땅을 되돌아 보지 않겠다고 해 탈북한 난민들이거든요. 이런 사실들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고, 과연 이런 나라가 있을 까? 그렇게 못 먹고, 못 살고, 어렵고, 고통을 당하는 그런 땅에서 독재자는 엄청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을 탈출한 이후 북한이 긍정적인 면에서 변한 것이 있습니까?

: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은요. 북한 동포들, 제가 있을 때 2300만에서 많이 굶어 죽고 2000만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나서 살던 땅을 뒤로 하고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그런 당시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반 없습니다.

북한에 계실 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직접 보셨는지요.

: 그때 당시에는 배급이 중단이 되고 시장경제를 돌지 못하게 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생활 양식 이라고 했어요. 시장 운영을 잘 못하게 하니까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정말 아사 되었던 그 모습들, 저는 지금 생각하면은요. 심장이 떨린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저는 평양이었지만, 평양에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 고령의 노인들이 굶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온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후 김정일 시기에는 외교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어려웠다고요.

: 2000년도 초까지는요. 즉 1994년 김일성 사망한 이후에 북한에 엄청난 기아가 발생했죠. 일단 자연재해로 인해서 북한의 식량난으로, 공급이 잘 안되고 그리고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외교활동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에서 식량도 들어오고, 베트남에서는 알랑미 쌀이 들어오고, 중국과 동남아 일원에서는 흰쌀 내지는 옥수수가 들어와서 평양사람들도 근근이 먹고 살았는데,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통치하며 외교활동을 많이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거래를 잘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정일이 무기 생산에 힘을 들였지요.

북한에 살 때 식량 사정, 전기 공급 등 불편했던 이야기도 해 주세요.

: 사실 이 방송을 통해서 한 가지 공개를 하고 싶은 것은, 저의 남편(북한) 쪽에 삼촌들이 다 군수품 공장의 연구사 들이고, 그런 기관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자강도 강계 이런 곳은 갱도고, 군수물자를 생산 하는 지하 갱도들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 것 보면은요. 눈이 딱 깜 깁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며, 쌀이 얼마나 들어가고 기름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군수품에 돌려지는지, 그때 당시에는 평양 시민들도 공급이 안 돼가지고 제일 처음 북한에서 식량난이 고통을 당했던 것이 평양시 사람들 이거든요. 어디가 훔쳐 먹을 데도 없고 콘크리트 바닥에 심어 먹을 자리도 없고, 그러니까 국가에서 뭘 안주면, 그대로 앉아 꼼짝없이 굶어 죽는 거에요. 평양도 이런 상황인데 지방 같은 경우에 더 한심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방 같은 경우에는 어디 가서 콩을 훔쳐 먹을 데도 있고, 익지 않은 벼를 훔쳐다가 절구에도 찧어서 먹고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제일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은 평양입니다. 그리고 지방의 경우에는 국가적으로 공급이 돼야 될 식량이 공급 안 되니까 정말 온 국가가 도둑질을 해야 되고, 정말 그거 안 하면 죽으니까요. 그때로부터 탈북의 대열이 늘어 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평양은 그래도 사람들이 뭐 천국이라고 이렇게 얘기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평양에 전기가 모든 일을 하지 않습니까? 전기가 안 들어와 냉장고를 쓸 수도 없고요. 평양도 똑 같았습니다. 겨울 같을 때는 20층 30층 40층 그런 아파트들이 난방이 보장 안되니까 변기들이 다 얼어 붙어서요. 정말 비참한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저도 거기에 한 사람이었지만, 정말 지금 이렇게 뒤돌아 보면은요. 지금도 가슴이 저려 지도록 가슴이 아파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인권활동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데

: 북한에서 저를 살 생부 명단에도 올려 놓는 상황까지 왔는데요, 제가 바라고 있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희생이 없이는 무엇을 이뤄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