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송과 전기의 역사 (2)

서울-문성휘, 김태산 xallsl@rfa.org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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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차 핵실험 단행 소식을 중앙TV의 '중대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는 평양 주민들.
북한의 6차 핵실험 단행 소식을 중앙TV의 '중대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는 평양 주민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김태산: 네, 염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있었습니다.

기자: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도 어제시간에 이어 북한의 방송역사, 특히 유선방송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계속 나누려 합니다. 저는 북한의 방송, 전기, 텔레비죤, 상수도, 이런 기초생활 시설들이 언제 다 구축이 됐는지 몹시 궁금한데요. 1960년대에 유선방송을 놓아서 집집마다 김일성의 말을 다 들었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청자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죠. 북한에서 “제3방송”이라는 건 방송 순위입니다. 제1방송은 “조선중앙방송”으로 라디오 방송이고요. 제2방송은 “조선중앙텔레비죤”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세 번째 방송이 지금 말하 는 유선방송, 라디오 전파를 타지 않고 북한 주민들만 듣도록 만든 방송이죠. 옛 동구권도 그래 사회주의를 하던 나라들은 다 북한의 “제3방송”과 같은 유선방송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으로 제4방송이 “조선중앙방송” 외국어 방송입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이렇게 4개나라 말로 방송을 하거든요. 다음으로 “제5방송”이 대남방송이라고 북한의 공식적인 표현으로는 “평양방송”이지요. 그리고 옛 “통일혁명당 방송” 1990년대부터 “구국의 소리방송”으로 이름을 바꾸었죠. 대남 텔레비전방송은 “개성텔레비죤방송”이 있는데 이게 다 “제5방송” 영역에 속합니다. 네, 간단히 설명 드렸고요. 60년대에 벌써 북한이 유선방송을 다 설치했다…

김태산: 그렇죠.

기자: 저도 보니까 그때 소련에 나갔던 사람들이 유선방송을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 물어보니까 소련도 유선방송이 있다…

김태산: 그렇죠. 사회주의 때는 라디오보다 먼저 나왔다기보다도 매 집마다 라디오를 놓을 처지는 못 되니까 국가적으로 주민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값싼 유선방송을 먼저 공급한 겁니다.

기자: 아, 그럼 선생님은 방송이라는 걸 처음 들은 것이 라디오 방송이 아니고 유선방송부터 들었다는 겁니까?

김태산: 네, 그렇죠. 우리 때는 라디오 방송은 못 들었어요. 농촌 이소재지에서 라디오라는 걸 보기도 어려웠고, 제가 커서 1960년대 말이죠. 그때 군대나간다고 갔다가 강계 군수공장으로 가면서 그때에 도소재지에 가서야 라디오라는 걸 봤어요. 그때 60년대 농촌에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때 기억이 나는 건 뭔가 하면 녹음테이프, 테이프 큰 걸, 지금도 그럴 쓰더라고요. 큰 테이프가 빙빙 돌아가는데 그걸 가지고 와서 60년대 중반에 그때 “반 종파투쟁”을 할 때니깐 와서 우리 부모들, 농촌사람들 다 대낮에 학교 강당에다 모아 놓고 뭔가 강연회를 한다고 그래요. 그래 우리는 몰래 가서 창문으로 들어보니까 녹음기, 그때 저게 뭔가 했는데 지금 보면 녹음기였어요. 녹음테이프 그게 이렇게 슬슬 돌아가는데 김일성이 하는 말이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계만 사려 다닌다고 하는데 기계를 사와야 나라가 발전할 게 아닌가? 그렇게 내가 싫으면 인민들한테 지지를 받아서 (내 자리에) 올라오란 말이야” 이렇게 말하던 생각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그땐 저게 무슨 소리냐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김일성의 교시였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반종파 투쟁”을 하면서 그 종파여독 청산을 할 때 김일성의 사상을 침투시키느라고 농촌에까지 강연회를 했다는 겁니다. 그때도 녹음기 가지고 했어요. 라디오는 어릴 때 우리 농촌에 없어서 못 보았습니다.

기자: 맞아요. 저의 아버지도 1969년 1월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군벌주의자로 몰아 인민군 내부부장(국방장관)이었던 김창봉과 그 수하에 있던 최광, 허봉학과 같은 사람들을 숙청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회의에서 김일성이 직접 한 연설을 녹음기를 가지고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그때에 벌써 녹음기가 있었어?” 했는데 있었다고 했어요.

김태산: 있었어요. 60년대 제가 그 녹음기를 보았어요.

기자: 네, 제가 어렸을 때 1970년대 중반, 그때 북한이 마지막 농촌까지 수도화 공사를 했어요.

김태산: 네, 그렇지요.

기자: 네, 그게 70년대 중반인데 그때 수도화 공사를 하면서 수원지가 멀리 있었거든요. 그게 도시경영사업소 상수도과에 속해서 거기에 저의 학급에 다니는 애가 그 수원지를 보는 집으로 가는 거예요.

김태산: 수원지 관리원이죠.

기자: 네, 부모가 수원지 관리원으로 갔는데 그때에 제가 유선방송을 전기로 듣는 것을 처음 보았어요. 우리 집에 와서 그 애가 말하는 게 자기넨 아직 방송이라는 게 없다고, 못 듣는다고, 왜 우리 집만 못 듣는지 모르겠다… 북한은 웬만한 수원지들을 산 중턱에 세워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원리로 수도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애네 집도 산중턱에 있으니까 경치가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학급 애들이 무리를 지어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체신소에서 나와 유선방송을 설치해 주는 거예요. 그때에 방송을 전기선 한선에다 연결하고 다른 한 선은 지선이라고 땅속에 묻는 거예요. “저거 전기로도 방송이 나오나?” 했는데 그땐 참 우둔했죠. 전기선에다 축전기 하나 매 답니다. 전기를 차단하고 전류만 통과하게끔, 그렇게 해서 방송이 나오게 만드는 원리인데 어쨌든 그 전기선을 쥐면 사람이 죽어요. 이거 안전장치가 다 돼 있어야 하는데 그냥 쇠로 된 전기선을 집안에까지 들여 온 거예요. 그리고 방송 안에다 축전기를 설치해 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전기선)걸 다치면 죽는다”하는 거예요. 난 그게 너무 섬찍했어요. 아니 그럼 다치면 죽는다는 전기선을 왜 집안에까지 끌어들였나? 그래서 내가 되게 궁금하던 생각이 나요.

김태산: 기자 선생네 때면 발전했네요. 우리 땐 60년대 초반, 중반에 방송을 들을 때엔 강철선, 와이어로프를 태워서 선이 무르게 만들어 가지고 전기선에 연결을 해서 (선을) 잡기만 하면 전기가 흐르죠. 한선을 잡고 지선만 잡으면 쩌릿쩌릿 했어요. 그러니까 사고가 날 수 있었는데 그때 뭐 방송선에 붙어서 전기사고가 났다는 사연은 못 들었어요. 북한이 그때부터 방송선이 부족하니까 전기 한선에다 방송을 태워가지고 전 국민이 듣도록 한 것만은 어쨌든 좀 발전됐다고 봐야 하겠는지. 여하튼 그때 우리 집에 처음으로 선진 문물이 들어 온 건 그 유선방송이었습니다. 그 후에 텔레비죤도 나오고 했지만 아무튼 방송이 북한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찾아 온 선진문물이라고 봐야 하겠죠.

기자: 네, 저의 어렸을 땐 말이에요. 유선방송으로 “인민군군가” 그 노래가 나오면 전쟁이 일어나는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 정세가 긴장할 땐 방송으로 그 노래가 자주 나왔어요. 그러면 야, 이거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야?

김태산: 정세 긴장하면 벌써 방송에서 말하는 투가 달라지고 노래도 다 달라지지 않았어요. 뭐 그때 판문점사건 이런 거랑 갑자기 터지면 노래도 그래, 방송하는 게 다 달라지죠. 벌써 그러면 사람들이 한순간에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스피커가 전시태세로 딱 넘어가는 거예요.

기자: 사람들이 말하는 게 그래서 유선방송이 필요하다, 일부러 놓았다 그러는 거예요.

김태산: 그렇죠. 그렇게 정세가 긴장되면 방송이, 스피커가 전시태세로 확 넘어가는 거예요.

기자: 네, 그래서 유선방송이 필요하다. 오늘 역시 좋은 얘기 많이 나눴고요. 이런 북한의 방송 역사, 이게 북한의 선전선동의 역사인데 다음 시간엔 그렇게 간고하게 지켜 온 유선방송을 왜 인민들이 못 듣게 되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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