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서울-문성휘, 김태산 xallsl@rfa.org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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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노동신문을 평양 시내 호텔에서 읽고 있다.
한 남성이 노동신문을 평양 시내 호텔에서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김태산: 네, 오랜만입니다.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참 돌이켜 보면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체신소의 혜택을 보았다, 체신소를 이용했다. 북한은 한국의 우체국을 체신소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초기부터 체신소였는지 아니면 한국처럼 우체국, 우편국, 이렇게 부르다가 체신소로 바뀌었는지…

김태산: 아니, 제가 알고 있기론 초기부터 체신소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북조선 인민정부에 그때 체신성이 있었거든요. 체신성 밑에 각 군마다 체신소를 두고 거기서 모든 전보, 편지, 소포 그 다음 북한의 주요 일간지인 ‘노동신문’, 이것까지 배달하는 체계가 돼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체신소는 우선 신문을 많이 전해주지 않았습니까. 그 신문 때문에 사실 우편통신원들이 더 고생을 했거든요.

김태산: 고생을 했죠. 그건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거니깐 안 보낼 수 없지 않습니까? 리에까지 다 배달이 돼야 하니깐.

기자: 예,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니까 통신원들이 몸이 아픈데도 가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게 편지는 기왕 늦어지는 거니까 통신원이 한주에 한 번씩 무더기로 가져가도 되는데 이 신문만은 하루라도 늦어지면 이게 문제가 난다는 거죠. 그래서 통신원들이 겨울이고 여름이고 계속 다니는 것이 그 신문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이 우편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80년대 중반부터 ‘민주조선’ 신문이 없어지고 ‘혁명전선’이라는 신문도 한국의 “통일혁명당”에서 발간하는 거라고 해서 간부들이 보는 거 있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조총련에서 발간하는 ‘시대’라는 잡지도 있었습니다.

김태산: 볼만했죠. ‘시대’는…

기자: 네, 시대는 볼게 많았는데 이게 다 80년대 중반에 (경제난으로) 다 없어졌습니다.

김태산: (조총련이 발간하는 잡지) ‘시대’가 그때 없어졌던가요?

기자: 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종이사정으로 벌써 80년대 후반부터 노동신문 발행 부수가 확 줄어들고 ‘민주전선’은 80년대 중반부터 찍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북한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웬만한 계층은 다 ‘노동신문’을 어느 집이나 다 보았고 그리고 좀 토대가 걸리는 사람들, 좀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조선’을 보게 하지 않았습니까? ‘민주조선’이나 ‘노동신문’을 어느 집이나 다 보았는데 ‘민주조선’이 없어지면서 ‘노동신문’을 축소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신문 도둑질이 시작된 겁니다. 신문 도둑질이 왜 북한에 많았냐면 불쏘시개로도 쓰고 화장지, 그러니까 변소 종이로도 쓰고…

김태산: 담배 말 때도 썼죠.

기자: 네, 옛날부터 담배피울 땐 꼭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네, (노동신문이) 당 기관지이니까 최고 존엄을 모시듯 해야 하는데 사실상 그 신문을 본인한테 쥐어 줄 수 없으니까 집이 비게 되면 신문 통에다 꽃아 놓고 가죠. 그러니까 사람이 없으면 지나가다 쑥 뽑아가지고서는 읽어보기야 보겠죠. 그 다음에 뒤처리는 이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없는 것은 담배 말아 피우고 초상화가 있는 건 잡혀가지 않으려면 조용히 자기가 없애버리죠. 그다음엔 종이가 없으니까, 북한에서 종이가 나올 데가 없으니까 ‘노동신문’에 눈독을 들이는 거죠. 그런데 리에 가면 리당비서가 하나 보고 관리위원회가 하나 보고 그 다음엔 리 세포비서들한테 밖엔 못 주었어요. 어떤 작은 곳은 세포비서한테도 신문이 못들어가고 ‘세포비서’라는 소책자 하나 들어가고, 이게 ‘노동신문’도 종이가 부족 되니까 중앙에는 1차로 나오는 종이를 쓰고 지방에 나가는 건 ‘노동신문’을 회수해 다시 2차로 가공한 질이 나쁜 종이를 썼죠.

기자: 초기엔 김일성의 초상화가 있는 신문은 수매를 못한다,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김일성의 초상화가 있는 신문은 종이공장에서 분쇄할 수 없다고 받지 않으니까 집집마다 부엌에서 불타버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는 초상화 있는 신문도 다 비치라 했습니다. 종이사정이 그만큼 급했다는 거죠. 그리고 보니깐 ‘노동신문’이 생활면에서 참 쓰기가 좋았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무조건 ‘노동신문’ 종이가 있어야 했죠.

김태산: 네, 솔직히 저도 좀 피워보았는데 ‘노동신문’ 간지(속지) 있지 않습니까? 원지보다 간지 종이 질이 좀 부드럽지 않아요. 그러니까 ‘노동신문’으로 담배 말아 피우면 담배 맛이 참 구수한 건 사실이에요.

기자: 네, 맞습니다.

김태산: 다른 종이로 피우는 것보다 ‘노동신문’ 간지로 말아 피우면 등사잉크가 타서 그런지 어쨌든 담배 맛은 구수했어요.

기자: 네, 이게 엄청 건강에 나쁜 거라 했는데 그 등사잉크가 타는 냄새가 맛이 좋은 것으로 느끼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맛은 정말 좋았죠. 그리고 왜 ‘노동신문’이 좋았냐 하면 변소 종이로 쓰는 덴 노동신문 이상이 없었습니다.

김태산: 제일 질긴 종이니깐.

기자: 네, 한국에서 나오는 종이들, A4 용지 같은 것들, 이렇게 질이 좋은 건 변소 종이로 못 씁니다 너무 빡빡해서, 그런가하면 엷은 종이는 북한의 종이공장들에서 생산하는 엷은 종이나 아니면 종이공장에서 생산하는 책 같은 건 그냥 막 찢어지고 그러니깐 노동신문이 적당한 질김과 부드러움이 뛰어났죠.

김태산: 그렇죠. 종이의 강도, 그리고 물을 흡수하면서도 찢어지지 않아 좋은 말은 아니지만 북한에서 많이 사용했죠. 그렇게…

기자: 네, 그리고 80년대부터 그랬죠. “노동신문이라는 건 5면과 6면밖엔 볼게 없다” ‘신년사’는 해마다 통달경연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계속 검열을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읽어야 하는데 ‘신년사’ 외에는 읽어 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항상 5면, 6면 이런 것만 보는 거죠.

김태산: 5면 6면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상식이나 국제소식, 남조선(한국)에서 뭐가 어떻다는 소식도 좀 전해주고 어쨌든 북한에서 일어난 사고 같은 건 노동신문에 절대 싣지 않지만 5면, 6면의 하단 면에는 장편 연재소설 같은 것도 오를 때가 있고 좀 싣고 생활에 필요한 의학상식 같은 것도 좀 싣고 이렇게 조목조목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올려 주었으니 참 보기가 재미있었어요.

기자: 네, 80년대 초기까지는 신문의 5, 6면에 재미있는 그런 상식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그것마저도 사라졌어요. 상식이나 누가 쓴 시, 이런 것도 사라지고 우리하고 상관이 없는 국제정세죠. 다 국제정세죠. 그리고 남조선(한국) 정세, 그러면 우린 그때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도 정말 남한 사람들은 모두 짚신을 신고 다리 밑에서 살고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남조선에서 무슨 시위를 했다, 뭘 했다 하면 “야, 저 놈의 세상이 빨리 끝장이 나야 하겠는데…” 그래서 5, 6면을 많이 봤죠. 그런 기억밖에 없습니다. 벌써 86년, 이때에 신문을 너무 훔쳐가니까 통신원들이 신문을 인민반장네 집에 통째로 맡겼어요. 그러면 인민반장이 매 이름을 적어 놔요. 저녁에 인민반장네 집에 들르면 “너희네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가져가라” 하면 가져오고 이렇게 했어요.

김태산: 이자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저도 이젠 북한을 떠나온 지 거의나 20년이 됐고 한마디로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으로서 모를 말도 많은데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고는 하면서도 아직까지 저희 대한민국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닙니까? 그러다나니깐 우리 대한민국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북한도 서서이나마 따라 온다는 느낌은 듭니다.

기자: 네, 그런 차이를 없애는 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었고요. 다음시간에 계속 하기로 하겠습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기자: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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