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정평군이 고향인 올해 나이 80살 이 모 할머니는 고향 근처라도 가보고 싶지만 이젠 가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고향에 대한 씁쓸함을 전합니다.
이 할머니: 고향에서 18살에 나와서 이제 80살입니다. 고향 근처에라도 가보고 죽어야 하는데 이젠 가긴 틀렸잖아요. 여기가 바로 제2 고향이에요. 고향 사람들만 부지런히 만나다가 가는 거지요. 자식들이라도 (고향 사람들 모임에) 대신 잘 나왔으면 좋겠는데 학생이고 직장인이어서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워요.
이 모 할머니의 피난길은 어떠했을까 이 할머니가 들려주는 생생한 그 당시의 얘기입니다.
이 할머니: 저희 고향은 함경남도 정평군 인데요. 지금도 주소를 잘 외우지 않아요. 보따리를 지고 이고 떠나던 피란 시절이 생각납니다.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올 때는 안내원 인도로 몇 친척들과 남쪽으로 가던 중 황해도 해주에 와서 붙잡혀 다시 끌려갔어요. 끌려가 하숙집에서 자던 중 밤중에 다시 안내원 내세워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산을 통해 남쪽으로 가는데 삼팔선에 환하게 불을 켜 놨어요 여기서 잡히면 또 붙잡혀 가게 되다 생각하고 수풀 속에 숨어 있는데 친척의 아기가 물을 달라고 해서 힘들었어요. 그 당시 저는 처녀였지 않아요. 고무 신발을 벗었어요. 고무신에 물을 담아서 아기에게 먹였어요. 그렇게 해서 조금씩 이동하는데 인민군들이 없을 때 넘어가려고 조용히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민군들이 불빛에 보이지 않고 잠시 자리를 뜨는 것을 기다렸다가 극적으로 넘어와 개성 임시 수용소에서 몇 달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가 많았는데 머리에 이가 가득하게 쌓여서 하얘졌고 옷에도 기어다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살던 친척 도움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사는 거예요.
이 모 할머니의 가장 큰 소망은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가보는 일입니다.
이 할머니: 다 보고 싶지마는 내 고향을 찾아 부모님들 산소에 가고 또 자랐던 곳이 어떻게 됐나 보고 싶어요.
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고향 생각이 난다”고 말합니다.
이 할머니: 뭐 어릴 때 남한에 와서 결혼하고 자녀 낳아서 키우고 가족들이 많이 늘었지 않아요. 손자가 전부 14명이고 손자들이 다 공부도 잘해서 기쁘고 이제는 미국에 살면서 고향 가기를 포기하고 이런 모임에서 고향 분을 만나는 게 큰 낙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오셨던 분들이 올해 와보면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많이 안 보이잖아요. 계속 돌아가시잖아요. 고향 가는 걸 포기를 하고 살지만 고향 생각은 매일 나요. 그래서 북한 사람 소식이 있으면 기를 쓰고 듣곤 해요.
이 실향민 모임에 나온 다른 고향 출신의 신 모 할머니는 긴 타향살이 때문인지 옛 친구들 기억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신 할머니: 어렸을 때 만세교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나지요. 어려서 나와서 잘 고향 생각이 안 나요. 어렸을 때 강가에서 수영도 하고 놀던 생각밖에 안 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왔으니까. 친구들 생각 잘 나지 않아요. 하도 오래돼서 얼굴 봐도 잘 모르겠어요.
신 할머니는 통일 이후에나 고향에 가지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신 할머니: 북한에서 하는 짓을 보면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통일이나 되면 가볼까 일부러 관광으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관광도 정해진 곳만 가기 때문에 갈 의미도 없고 그러 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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