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국과 대화하려면 태도부터 바꿔야”

지난 2월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오른쪽)이 미국 상원군사위원회 비공개 브리핑을 위해 의회를 방문한 모습.
지난 2월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오른쪽)이 미국 상원군사위원회 비공개 브리핑을 위해 의회를 방문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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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최근 북한이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의 방문을 계기로 2명의 미국인을 석방한 배경과 목적 등에 관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특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디트라니 대사는 16개 미국 정보기관을 관할하는 국가정보국에서 2006년부터2010년까지 북한정보 담당 책임자를 지낸 바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클래퍼 국장이 지난 8일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국가전복 혐의로 2012년 11월 이후 억류돼온 케네스 배 씨와 간첩혐의로 지난 4월 이후 억류된 매듀 밀러 씨와 함께 귀국했습니다. 우선 북한이 이번에 두 사람을 풀어준 배경을 무엇이라고 봅니까?

디트라니: 이번 경우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왜 이들을 풀어주기로 했는지 그 동기를 파악하긴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최근 그가 한 행동을 비춰볼 때 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또 뭘 이루고자 했는지 판단해볼 순 있습니다. 우선 지난 2년 반 가량 북한의 정책은 재앙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하고 핵실험을 했으며 한국과 미국을 핵선제 공격으로 위협했습니다. 또한 숙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했고 4명의 미국인을 체포해 옥에 가뒀는데요. 이런 행위들은 악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불러왔으며 유일한 동맹인 중국을 소외시켰지요. 이게 바로 지난 2년 반 동안 북한이 벌인 일련의 행동이었고, 제 견해론 재앙이었죠. 그런데 지난 한 두 달 일어난 일을 보면 김정은은 15년만에 처음으로 이수용 외무상을 유엔에 보냈고, 최룡해 당 비서와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아시안 게임 폐막식을 위해 서울에 보내 한국 총리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게 했습니다. 또한 강석주를 유럽의회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 보내 평화 공세를 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엔 케네스 배와 매튜 밀러를 석방한 것이지요. 최근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보면 김정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기존의 노선은 옳은 방향이 아니며, 더 나은 대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기자: 게다가 지금 유엔에선 북한에 대한 인권압박도 가중되고 있지 않습니까?

디트라니: 맞습니다. 지금 북한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일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데요. 유엔 인권위원회는 대북인권결의안을 통해 인권유린이 심각한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고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을 형사 소추할 가능성까지 비추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땐 이게 북한 지도부에 상당한 우려 사항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살펴보면 이제 북한의 많은 사람들도 이런 점을 깨달았다고 봅니다. 즉 기존의 행동을 바꿔야 하며, 지금과 같은 '제재 상자'에서 벗어나 북한도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나라이며, 6자회담으로 돌아올 준비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이죠.

기자: 방금 북한이 미국인 석방 등을 통해 뭔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북한이 왜 진작 이들을 석방하지 않았을까요?

디트라니: 제가 보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아주 고위급 미국 관리의 방북을 원했다는 점입니다. 클래퍼 국장은 분명 고위급 미국 관리입니다. 다른 이유는 클래퍼 방북 결정은 북한이 아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내렸다는 점입니다. 석방임무의 최적임자는 국가안보국장이란 생각을 한 것이죠. 16개 미국 정보기관을 관할하고, 북한 상황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을 파견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요구한 '고위급' 요건도 충족하고,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사람을 보내기로 한 겁니다. 설령 북한이 미사일 문제와 핵문제에 관해 논의하고 싶어도 클래퍼 국장은 문제의 핵심을 찌를 수 있거든요.

기자: 북한이 기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엔 클래퍼 국장이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고, 미국인 석방을 위해 간다는 점만 명시됐는데요. 그렇다면 북한이 얻은 것은 뭘까요?

디트라니: 북한은 약간의 선심을 베푼 나라로, 또한 좀 더 인간애도 있고 동정심도 있는 합리적인 국가란 이미지를 얻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고 봅니다.

기자: 사실 국가정보국장이란 고위 직함을 감안할 때 북한은 이번에 클래퍼 국장을 통해 뭔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디트라니: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제가 이해하기론 이번 클래퍼 국장의 방북은 북한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내린 것입니다. 클래퍼 국장이 똑똑할 뿐 아니라 대북문제에 가장 정통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만일 북한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게 있었다면 분명 그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클래퍼 국장은 설령 북한 측이 '우린 핵 프로그램이 없으며 핵확산을 하지도 않고 미사일도 없다'고 나올 경우 아주 명쾌하게 그 자리에서 "우린 당신들이 뭘하는지 다 알고 있다"며 반박할 수 있는 인물이었죠.

기자: 다시 말해 클래퍼 국장은 억류 미국인의 석방 문제로 평양을 간 것이지 협상 차원이 아니란 말이죠?

디트라니: 그렇습니다. 이들 미국인 석방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인도적 조치입니다. 제 개인적 견해론 북한이 이들 미국인을 인질로 억류한 것은 국익에도 맞지 않으며, 더구나 북한 핵 및 미사일 협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두 사안은 별개의 문제란 말입니다. 클래퍼 국장의 방북은 전적으로 억류 미국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석방 건이었습니다.

기자: 혹시 북한이 이번에 미국인 석방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 재개의 희망을 품었다면 착각이었겠네요?

디트라니: 맞습니다. 만일 북한이 이번 석방 건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대화의 목적부터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대화가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의 이행에 관한 것이라면 미국은 당연히 응할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 의중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라면 아무도 그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년 이런 일을 해왔으니까요. 단순히 만남 자체를 위한 만남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대화라면 응하는 것도 좋겠죠. 그 경우 서로가 직접 만나 북측에 대해 "2005년 공동성명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 안보 및 경제지원, 나아가 정상적인 관계를 대가로 포괄적이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느냐?"하는 질문을 해보면 북측 의중을 알 수 있겠죠. 만일 북한이 머뭇거리면 대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주 간단하죠.

기자: 현 시점에서 북한은 자국 핵 문제에 관해 어떤 생각일까요?

디트라니: 북한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요? 과연 비핵화할 준비가 돼 있을까요? 우린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건 북한은 여전히 핵 능력을 갖고 싶어한다는 점이죠. 우린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제 분석이 옳다면 북한은 지금껏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점을 깨달았고, 지금은 선의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사회와 다시 교류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를 바란다면 북한이 2005년 9월 합의한 대로 포괄적이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비핵화할 준비가 있다는 점을 북측에게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준비가 안 됐다면 회담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기자: 북한도 미국의 이런 입장을 알고 있다고 봅니까?

디트라니: 북한도 미국이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서 핵문제를 풀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클래퍼 국장이 북한 측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면 그는 분명 미국의 입장을 잘 전달했다고 봅니다. 즉 북한 핵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만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요. 미국의 목적은 핵과 미사일이란 핵심 문제를 다루는 겁니다. 물론 북한의 불법 행동과 인권문제도 있지만 이는 쌍무적인 문제이지 6자회담 문제가 아닙니다.

기자: 클래퍼 국장의 방북 후 미국의 대북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디트라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클래퍼 국장이 북측과 뭘 논의했는지도 알 길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미국의 입장은 분명했을 겁니다. 북한은 클래퍼 국장에게서 들은 걸 공표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북한 측에게서 듣고 싶은 건 그들의 핵프로그램 해체 협상에 복귀할 용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