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먼 방북은 김정은 이미지에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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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올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국정 방향과 문제점에 관해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출신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David Straub)씨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스트라우브 씨는 국무부에서 나온 뒤 지금은 미국 서부의 스탠퍼드 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APARC) 한국 프로그램 부국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한에 상호비방을 중지하자면서 관계 개선의 희망을 나타낸 데 이어 북한은 최근 남쪽에 대해 상호비방중단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제의했는데요. 그 속셈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스트라우브: 제가 볼 때 북 측의 제의는 상투적인 것이요 아주 냉소적인 선전일 따름입니다. 북한은 자기들 군사훈련은 하고 싶어하면서도 남한이 하는 훈련은 이처럼 문제를 삼는 겁니다. 과거에도 보면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이 열리기 앞서 늘 이를 비난하고 중단을 요구했지요. 그러면서도 종종 남측에 관계 개선을 희망해왔습니다. 그러다 한미군사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이런 저런 도발행위를 일삼는 겁니다. 이런 게 오랫동안 반복이 돼왔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북측의 제의는 진정성이 별로 없다고 봐야죠?

스트라우브: 북한은 아무런 진정성도 없이 다년간 그런 행동을 반복해왔습니다. 북한은 너무도 오랜 세월 남한과 국제사회를 오도하려 해왔기 때문에 그런 선전 발언에 어떤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북한은 남한에 대해 아주 적대적이고 냉소적이어서 어떤 말도 가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제의는 그런 생각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기자: 남한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어도 남북관계에선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는데요. 남한은 신뢰로 남북관계를 풀어간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고 있지 않은데요?

스트라우브: 제가 볼 때 그 책임은 사실상 북한에 있습니다. 남한은 합리적인 선에서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오로지 자기들이 내건 조건 하에서만 대화를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비난 받을 만한 겁니다. 북한은 대다수 나라들이 합리적이라 보는 조건 아래서도 남한과 대화할 의지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남한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북한이 상시적인 이산가족 재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요. 왜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정기적이고 대규모로 만날 수도 없고 서신을 교환할 수도 없습니까? 이걸 허용하지 않는 북측 태도는 정말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그건 전적으로 북한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기자: 북한 국내문제를 좀 들여다보지요. 김정은이 숙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전격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이 같은 숙청이 북한 내부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스트라우브: 장성택이 북한 국내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솔직히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또 저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확실한 분석이나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곤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론 북한 국내정치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김정은이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있어 장성택이 최대 걸림돌이 됐고 그래서 처단을 미룰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추측으론 모르긴 해도 후자 쪽인 것 같습니다.

기자: 문제는 장성택의 숙청이 중장기적으로 김정은 정권에 미칠 영향 아닙니까?

스트라우브: 사실 외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중요한 점은 장성택 숙청에 따른 김정은 정권의 장기적인 미래입니다. 올해 신년사나 다른 연설, 나아가 북한이 취한 행동을 보면 김정은 정권도 종전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북한의 상황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죠. 조만간 정치적 측면을 포함해 북한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겁니다. 그게 얼마나 빨리 닥칠지, 어떤 형태를 띨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자: 장성택을 잔인하게 숙청한 것은 대외적으로도 김정은의 잔인한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봐야지요?

스트라우브: 북한 국내적으로 장성택이 어떤 양향을 끼쳤는지는 알 길이 없어도 대외적으로 끼친 영향은 아주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지도력에 재앙을 끼쳤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북한의 장기 전략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무기를 일종의 요술상자(magic box)로 활용하는 겁니다. 즉 핵무기 위협을 이용해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제한적이긴 해도 핵 국가로 인정하고, 나아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남한과 동맹관계도 끊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지만 북한은 끝까지 버티다 보면 이런 목표가 이뤄질 걸로 믿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국제사회에 비친 지난 2년 간 김정은의 모습은 어떤 걸까요?

스트라우브: 물론 김정은은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북한의 새 지도자로 외부세계와의 관계에 많은 문제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21세기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후계 세습을 통한 권력자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그가 별다른 국정 경험이 없는 젊은 지도라는 점이고, 외모나 태도로 보면 김일성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점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가 세계 대부분에서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이미지 측면에서 보면 김정은은 웃음거리에서 아주 잔인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죠.

기자: 김정은은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데니스 로드먼이란 왕년의 미국 농구선수를 서너 차례 초청하기도 했죠?

스트라우브: 사실 로드먼의 방북 배경을 두고 언론에 이런저런 논쟁이 많은데요.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로드먼의 방북을 결정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치적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이 로드먼처럼 아주 이상한 미국인을 북한에 초청하는 게 정치적 측면에서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게 저로선 아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볼 때 그건 외부세계에 김정은의 이미지를 망친 또 다른 요인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김정은이 국제사회에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로드먼을 초청했다면 착각이란 말이죠?

스트라우브: 로드만 초청으로 김정은은 이미지를 개선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개선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연구해본 사람이라면 로드먼의 초청이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해만 끼칠 것이란 점을 알았을 겁니다. 물론 북한 지도자들이나 특권계층은 외부세계에 대해 알 만큼 알기 때문에 우리만큼이나 똑똑한 사람들입니다만, 모르긴 해도 로드먼을 북한에 초청하기로 한 결정을 김정은이 내렸을 겁니다. 김정은이 미국 농구와 로드먼을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로드먼을 초청하는 건 아주 나쁜 생각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정은 자신이 워낙 특권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무슨 일이든 해왔기에 누구도 그가 하겠다는 걸 말리지 못했을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