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20] 김일성, 생전의 절대권력 경제개혁에 사용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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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입니다. 안녕하세요. 흔히 북한이 안고 있는 그 많은 문제점을 들여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 태동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데 심각성이 있는데요. 바로 그 같은 문제점을 야기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어느 쪽이 더 문제가 많습니까?

란코프: 지적하신 대로 이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도 진실을 이야기 할 때가 왔습니다. 북한에서 그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두 사람이 사망한 지금도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어떤 신처럼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이 아닌 사람으로 봐야 하겠지요. 객관적으로 말하면 김정일의 삶도, 김일성의 삶도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둘 다 적지 않은 좋은 성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 때문에 범죄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도덕을 어지럽힌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삶은 이 같은 유감스러운 사실을 너무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김일성이 김정일보다 훨씬 더 좋은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지 않습니까?

란코프: 맞습니다. 북한 주민 대부분은 김일성을 김정일 보다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어느 정도는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보기엔 김일성 시대가 살기 좋았습니다. 실제로1990년대 초까지 식량 배급이 잘 나와서 굶어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엔 공장과 기업소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기차도 시간표에 따라 운행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북한 주민들은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변: 그렇다면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행태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말인가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김일성이 1994년 죽고 김정일 시대가 오자 다 바뀌었습니다. 식량 배급이 나오지 않아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해마다 최소 50~60만명이 생겼습니다. 철도는 시간표와 무관하게 운행됐습니다. 군수산업이 아닌 공장치고 그대로 가동되는 공장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주민 생활도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1994년쯤 나타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이게 모두 김일성 사망 때문에 생긴 줄 압니다. 그러나 수 많은 경우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이 94년에 죽지 않았더라면 기근도 생기지 않고, 경제도 별로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김일성이 94년에 죽지 않았더라면 통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북한 사람도 있습니다.

변: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죠?

란코프: 물론 이것은 겉으로만 나타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김정일 시대가 어렵게 된 기원을 찾아보면 김일성 시대가 빚은 불가피한 결과임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가 김정일 시대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그 기반을 파괴한 장본인은 김정일이 아니라 바로 고 김일성 주석이었습니다.

변: 왜 그렇다고 봅니까?

란코프: 이걸 설명하려면 해방 후 북한 상황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일성이 1940년대 말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련 군대가 그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1940년대 말 북한은 사실상 소련이 통제하는 위성국가였습니다. 저는 구 소련에서 1940년대 소련 군대에 관한 기록을 많이 연구했기 때문에 당시 소련 통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습니다. 소련의 엄격한 통제 밑에서 김일성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불가피하게 소련 식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가 사회주의는 효율성이 전혀 없는 체제입니다. 세계 어디든 국가사회주의가 무너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주의가 없어진 이유는 효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소유를 절대화하는 공산경제는 오랜 세월 경제의 효율성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도 효율성 없는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선택한 사람은 바로 김일성이었습니다.

변: 그랬군요. 그런데 해방 후 북한 최고 지도자로 등장한 김일성이 정말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나요?

란코프: 1940년대 말이나 1950년대 초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손가락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소련의 통제와 감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말에 들어와 김일성은 소련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국가와 노동당에서 친 소련 세력과 친 중국 세력을 많이 숙청하였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김일성은 나라의 경제를 많이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 식 경제 구조를 없애버리고 보다 더 좋은 경제 구조로 대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변: 구체적으로 김일성의 경제정책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예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란코프: 북한의 협동농장을 좋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이든 동유럽이든 농민들은 협동농장에서 국가를 위해 농사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개인 농업 생산은 물론 여러 제한과 통제를 받았지만 국가에 의해서 인정되었습니다. 제가 자란 소련에서 농민들이 자기 소유로 지을 수 있는 개인 밭이 가족마다 수백 평 정도였습니다. 북한 보다 10배나 20배 정도 컸습니다. 그 덕에 농민들은 개인 밭에서 열심히 일했고, 생산도 잘했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알 수 있듯이 소련의 식량사정은 북한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개인 노력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농민들은 무조건 협동농장에서만 일해야 했습니다.

변: 방금 농업 분야를 말씀해주셨는데요. 공업 분야는 어땠습니까?

란코프: 공업구조를 보면 문제점이 많습니다. 구 소련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해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선전과 선동 그리고 사상교육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김일성은 설령 보상을 많이 주지 않더라도 사상이 높은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오판이었습니다. 소련의 경우에도 지도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김일성 시대 북한처럼 심하진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1950년대부터 절대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절대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를 개혁할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힘을 경제를 개혁하는 데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