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아랍의 봄’ 북한에도 가능한가?

워싱턴-한영진 jy@rfa.org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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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4일 오후 올겨울 가장 추운 날씨 속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7년 1월 14일 오후 올겨울 가장 추운 날씨 속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어디로> 진행에 한영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인 1월 14일은 ‘아랍의 봄’ 혁명으로 24년간 튀니지(뜌니지)를 통치했던 벤 알리 독재 정권이 무너진 날입니다.

8년전 ‘아랍의 봄’ 혁명을 이끌었던 메사우드 롬다니 전 튀니지 인권연맹 부위원장은 “인간의 존엄을 믿고 진실을 갈구했기에 '아랍의 봄' 이 가능했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이집트(에짚트)와 리비아, 예멘, 시리아(수리아)로 확산되면서 아랍의 왕정 국가들, 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들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중동에서 아랍의 봄 혁명이 있었다면 1년 전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 촛불혁명이 평양으로 상륙할까봐 두려워 촛불 시위로 집권한 남한 정부를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하지만, 2018년 새해 들어와 평창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남쪽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북한은 어디로> 시간에는 촛불혁명을 두려워하던 북한이 왜 남한으로 문을 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운드 바이트> 아랍의 봄 시위 현장 녹음

이 녹음은 지금으로부터 7년전, 중동과 북아프리카 나라를 휩쓸었던 ‘아랍의 봄’ 현장 분위기입니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의 한 노점상인의 분신 자살로 시작됐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한 지방도시에서 남새를 팔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청년이 경찰들에게 물건과 수레 등을 빼았겼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남새 장사에 뛰어들었던 부아지지는 장사짐을 빼앗기자,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그후 병원에 실려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분신 사진을 소설네트워크, 즉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본 튀니지 시민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북한으로 치면 인민보안원이 장사꾼의 짐을 빼앗고 달구지를 회수한 것인데, 튀니지의 사람들은 순순히 당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튀니지에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벤 알리 대통령이 23년간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업률도 높고, 물가도 높아 사람들의 불만이 팽배했던 찰나였습니다.

부아지지의 사망 소식에 튀니지 사람들은 광장에 몰려가 알리 정권 퇴진을 외쳤습니다. 당시 상황을 잠시 들어시겠습니다.

처음에는 알리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얼리고 경찰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분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황한 알리 대통령은 1월 14일 이웃 나라인 사우디 아라비아로 도망쳤고 독재정권은 무너졌습니다.

아랍의 봄 불길은 그 다음 이웃 나라인 이짚트로 옮겨갔고, 30년 집권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도 무너졌습니다.

아랍의 봄 바람은 연이어 리비아로 옮겨지면서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무아마르 가다피 대통령을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친분이 깊었던 무아마르 가다피 대통령은 반군들에게 쫓기다가, 좁은 시멘트 동굴에서 반군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외신들은 상세히 보도했지만, 북한의 당과 보위부는 라디오를 듣지 못하게 엄격히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외국에 나갔던 북한 외교관들에게 “귀국해서 아랍의 봄 시위에 대해 일절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을 정도였습니다. 아랍의 봄 바람이 평양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입니다.

북한 보위부는 소요를 막기 위해 삼삼오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 조차도 엄격히 막았습니다.

또 아랍의 봄이 스마트폰, 즉 지능형 손전화에 깔린 소셜네트워크(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촉발되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손전화 단문 메시지 검사도 엄격히 실시했고, 블루투스 기능도 막아버렸습니다.

외국에서는 유트뷰나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누군가 손전화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소셜네트워크에 올리면 수천 수만명이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아랍의 봄이 짧은 시간에 퍼져나간것도 손전화에 깔린 소셜네트워크 덕분이었습니다.

북한이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랍의 봄 혁명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도 평양판 아랍의 봄이 일어날 수 있는 권력자들의 행패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미국의 한 탈북민은 “2000년 중반에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대학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면서 “그 이유는 대학 청년동맹이 지나치게 상납과제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고 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당시 대학교원들과 학생들 속에서는 “학생이 오즉 분했으면 죽음을 택했겠는가?”하는 동정했지만, 소요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시위나 집회 등 반체제 행동에 대해서는 3대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북한 특성상 동료의 죽음을 묵도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탈북민: 지금은 그 누구도 김정은에게 도전할 자가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도 없고,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인데, 만약 그게 급변사태로 변한다면 바로 순식간이예요. 바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북한에 끊임없이 소프트파워를 불어넣으면 북한에 '평양의 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8년전에 중동지역에서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났다면, 1년전 남한에서는 ‘촛불혁명’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 촛불혁명이 북한 내부에 전파되는 것도 막았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처음 촛불시위가 시작될 때는 시위대 숫자까지 부풀리며 보도했지만, 점차 보도횟수도 줄이고 일부 시위영상은 모자이크 처리해 형체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남한의 발전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북한이 사진을 조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사운드 바이트>

정작 북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그때부터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전문가는 “일반 시민들이 최고 통수권자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김정은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남한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최고 통치자를 끌어내리는 것까지 주민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북한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오히려 ‘핫바지’ 정권이라며 지난 12월에 있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전직 고위관리는 “북한이 촛불혁명을 원천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고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지난해 남한 정부가 대북 화해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무시한 것은 “촛불혁명이라는 거대한 반정부 시위가 평양으로 옮겨질까봐 두려워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다음, 남북 고위급 대화가 진행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핵무력 완성이라는 군사제일주의 구호를 내걸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요구하던 북한이 갑자기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은 참기 어려운 국제제재를 각개격파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밝혔습니다.

북핵폐기까지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대북압박과, 날로 높아지는 해상봉쇄 위협, 중국의 경제 제제 압박에 직면한 북한이 한국을 통해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겁니다.

남한의 평창 동계 올림픽을 지렛대로 삼아 국제제재에 균열을 내고, 핵무기 완성을 위한 시간을 벌고, 내부 결집을 위해 전략적 판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성욱 자유통일연합 대표는 북한의 의도는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한 “주체혁명위업의 완전 승리, 즉 적화통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경계했습니다.

김성욱 대표: 혁명적인 총공세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주체적인 혁명노선의 승리, 사회주의 강국건설입니다. 이 혁명적인 총공세는 다름아닌 주체사상으로 승리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적화통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고위급 회담에 참가했던 북한 당국자가 비핵화 질문에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한반도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얻어내려는 ‘위장 평화 공세’, ‘남한을 핵인질로 여기고 있다’는 여론이 외부사회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어디로> 오늘은 아랍의 봄과 촛불혁명이 두려워 외부와 담을 쌓던 북한이 왜 남북대화의 문을 열었는지 전해드렸습니다. 이상,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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