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김정은식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워싱턴-한영진 jungy@rfa.org
2017.01.11
kim_bag_factory-620.jpg 새해 첫 공개활동으로 새로 건설된 평양가방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김정은.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은 어디로> 오늘 진행을 맡은 한영진입니다.

“이봐 채금자(책임자) 해봤어? “

이 발언은 남한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생전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날바다를 막아 새땅을 찾던 서산간척장에서 물살이 너무 빨라 아무리 큰 돌을 쳐넣어도 계속 떠내려가자, 정주영 회장은 큰 폐 유조선을 빠뜨려 막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갸우뚱하는 현대 직원들에게 “이봐, 이거 해봤어? 안해보고 왜 이야기 하느냐?”라고 하라고 지시합니다. 결국 유조선을 빠드려 간척지의 마감물길을 막는데 성공하는데요.

북한에도 잘 알려진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군이 고향입니다. 17살 때 부친이 소를 판돈 70원을 몰래 가지고 나와 남쪽에 내려와 크게 성공한 뒤, 마음의 빚을 갚는다고 소1,001마리를 몰고 북한을 찾아가 화제가 됐지요.

담벽도 문이라고 내미는 뚝심으로 정회장은 세계 굴지의 현대그룹을 키워 한국경제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남쪽에 내려온 3만명 탈북자들도 실향민 1세대 정주영 회장처럼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있습니다.

만일 정주영이 남쪽에 내려오지 않고 그냥 북한에 살았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과연 현대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수 있었을까,

간추린 토막 상식 마치며, 오늘 ‘북한은 어디로 시간’에는 ‘실종된 김정은의 경제개혁’을 시작합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육성: 크고 앞서갔다고 해서 크게 좌절할 필요없어요. 나는 모든 기업인은 다 이런겁니다. 기업은 사회 손해를 봤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하는 거 아닙니다. 본인이 실패했다고 할 때 손을 들 때 비로서 실패하는 것이지, 인간이 자기는 영원히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할때는 영원히 승리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말은 정주영 회장이 기업가의 정신에 대해 역설한 부분입니다.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작은 농촌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집안의 장손으로써, 온 가족을 끌고 가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뼈빠지게 농사일 해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못사는 농부의 삶에 진저리를 느끼고, 집을 몰래 뛰쳐 나옵니다. 이렇게 몇번 거듭하다가, 나중에는 아버지가 소를 팔아 장만해둔 70원을 가지고 몰래 나오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잡혀 다시 고향으로 끌려갔지만, 여전히 세상을 향한 도전의 꿈만은 접지 않았다고 그는 자신의 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정주영은 열심히, 그리고 억척같이 일해 신용을 쌓고, 그 신용을 담보로 작은 쌀가게를 넘겨받고, 나중에는 자동차 수리소를 인수해 현대라는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현대기업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 산업, 선박제조 등을 시작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정주영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시련은 있어도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에는 현대그룹과 같은 민영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아닙니다. 수령이 나라의 모든 재부를 차지해 개인 사유화는 일절 인정하지 않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북한 인민들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열망은 강렬합니다. 그래서 새로 출범한 젊은 김정은에게 뭔가 변화를 기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처음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발언이 2012년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 있었던 탈북한 간부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집권 초기에 “우리도 세계의 발전된 기술과 경험을 받아들여 경제를 발전시키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요구는 “사회주의 열차에 자본주의를 태우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북한이라는 열차에 자본주의라는 시장경제를 태우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어 북한에 ‘6.28’조치라는 ‘우리식의 경제관리방법’이라는 것이 탄생했습니다.

“사회주의 열차에 자본주의를 태우라”라는 말에 북한 경제일꾼들은 “외국을 경험한 젊은 지도자가 뭔가 다르긴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고 기뻐했다고 한국으로 망명한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전 공사는 한국의 조선일보에 당시 심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올라간 다음에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이야기 할 때는 아, 우리도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우선 나이가 젊은 지도자가 올라갔고, 그 다음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내각과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인민경제대학의 유능한 교수 박사 연구사들로 연구팀이 조직되었고 북한에서 똑똑하고 지식이 깊은 경제학자, 연구사들은 스위스와 독일,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같은 발전된 나라들에 파견되어 경험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북한경제 개혁을 진두에서 지휘했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나진선봉과 신의주 등을 먼저 개방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나라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된 다음, 그 효과를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이른바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을 거울로 삼았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등소평은 1980년대 초 남방지역인 심천과 광동지방에 경제 특구를 만들고 그곳에 외국자본을 끌여들여 먼저 발전시킨 뒤, 성공을 확신하고 전국에 일반화 시켰습니다.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에는 국민소득이 몇백달러에 불과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15년 기준으로 8천280달러로 올랐습니다. 중국은 2020년에는 국민소득을 1만달러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샤오캉 사회’를 목표 하고 있습니다. 샤오캉 사회는 전국민이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 전 국민이 잘사는 중산층 사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국의 경험을 받아들여 북한 경제를 부흥시키려했던 경제 개혁파들은 장성택 처형을 시작으로 숙청의 찬서리를 맞게 됩니다. 국가보위부는 장성택 처형하면서 노동당 행정부 내에 조직되었던 연구소를 ‘현대판 종파의 본거지’로 매도하고, 거기서 근무했던 학자, 연구사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고 당시 경험한 탈북 인사들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주민이 먹는 문제를 풀려면 농업을 중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연했던 김일성 종합대학 한 교수는 공개 총살당하고, 나선경제특구법을 만들었던 경제전문가 수십 명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들 처형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아까운 인재들이 죽는다”고 통탄했고, “우리는 개혁개방을 절대 할 수 없는 나라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합니다. 수령우상 사회와 시장경제는 기름과 물처럼 결코 융합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의 발언을 다시 들어보시겠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 아, 사람들이 이젠 다 느꼈어요. 김정은, 너도 역시 김정일의 아들이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정치 후광에서 너도 벗어날 수 없구나…

북한에서 잠시 불었던 개혁의 바람은 사그라지고, 지금은 누구도 무서워서 입을 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처음에는 개혁의지가 있었지만, 절대권력 유지를 위해 서슴없이 공포통치를 선택한 것입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김정은이 작년까지 주장했던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라는 단어도 사라졌습니다. 구체적인 경제 목표나 지표 설정도 없이 무리뭉실하게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김정은 신년사 육성: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 이것이 새해의 행군길에서 우리가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

이와 관련해 한국 통일부는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에서 새로운 경제전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 내부적으로는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이야기 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라든지 내용을 제시하지 못해서 기조만 이야기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항일의 연길폭탄정신과 전화의 군자리 혁명정신을 발휘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고도로 발전된 지금 세상에 70년전에 빨치산 병기창에서 울려나오던 ‘연길폭탄정신’을 발휘하라는 것은 폐쇄와 고립을 반복하겠다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오히려 김정은은 핵과 대륙간탄도 미사일 제작이 최종단계에 이르렀다고 미국 트럼프 정부를 자극했습니다. 결국 경제발전에 자신없는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신년사에서 보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핵과 미사일에 집착할 경우, 북한 경제는 살아날 가망이 없고,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한번 잘 살아보자”던 주민들의 소박한 꿈이 이뤄질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RFA 주간기획 ‘북한은 어디로’ 오늘은 “실종된 김정은식 경제개혁”을 마칩니다. 진행에 한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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