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의 시간]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회 민명기 회장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1.12.28
min_myungki_305 민명기 회장이 이북 도민의 날 행사에서 인사하고 있다.
RFA PHOTO/ 이현기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는 지난 21일 김정일 사후 변화가 예상되는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2년에도 미국 적십자사나 미국 정부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홍보와 함께 1.5세와 2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 민명기 회장으로부터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상봉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대두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저희 실향민 단체는 그동안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를 만나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고, 또 하나는 미국 적십자사 본사를 찾아 산토스 시니어 디렉터에게 이산가족상봉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어요. 그리고 미국 시민권자로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35명이 접수 했는데 이분들의 명단을 미국 적십자가 본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3일 제네바에서 국제적십자사가 북한 적십자사를 통해 이분들의 명단을 접수 시켰으며 작년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 부상이 미국의 킹 특사를 만난 적도 있어 상당히 재미동포 이산가족상봉에 고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김정일이 사망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서 남북관계나 이산가족 상봉 등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냐는 노파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들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 김정일 사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우리 실향민들은 그동안에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체제에서 실향민들은 사실 북한에서 소외당해서 많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실 추방당한 실향민들이라고요. 그래서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실정이나 사상을 잘 알고 해서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1세 권력자들이 지속되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데 한 가지는 1세 권력자들이 한 5년이 지나면 다 물러날 것이고 그래서 북한에도 개방돼서 민주화가 토착이 되면 한반도의 통일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위원회가 김정일 사후 변화가 예상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이산가족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사업 계획들을 심층 논의했다고 들었습니다.

: 금년에도 주로 이산가족상봉과 관련해 홍보를 많이 했지만, 내년에도 홍보활동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이산가족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 홍보하고 이산가족을 생각할 적에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것만이 이산가족이 아니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산가족은 존재할 수 있다. 왜냐면 천재지변이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로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1세들이 물러난다고 해도 2세 3세가 배턴을 받아서 이산가족에 대한 그런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산가족에 대한 홍보에 주력하고 특히 내년에는 2세 3세들을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해요. 주제는 ‘6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현실과 상봉에 대한 전망’주제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가질 계획입니다.

1.5세, 2세들이 실향민 단체에서 적극 참여하도록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현재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임원을 보면 부회장도 1.5세고 사무총장도 2세고 그 외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도에는 좀 더 활발하게 젊은 2세들을 많이 영입해서 사업해나갈 계획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민명기 회장 기사를 읽었습니다. 6.25전쟁 발발 당시에 부모님과 남한으로 피난하셨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삼촌을 꼭 만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는 데 그 이야기도 들려주시지요.

: 제가 어릴 적에 부모님 따라 월남했는데 우리 경우 북한에서 대주주의 속해서 어느 날 갑자기 정권이 바뀌면서 부모님의 자산을 몰 수 당했고 도저히 북한에서 살 수 없다 해서 탈출했는데 삼촌도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같이 월남하면 발각될 수 있기 때문에 나눠서 월남하자 해서 우리 가족만 밤에 탈출을 했어요. 우리 삼촌에게는 내일 어디로 와라 약속을 하고 서로 헤어졌는데 북한의 보안원들이 눈치를 채고 삼촌의 집을 포위하고 감금하다시피 해서 월남을 못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항상 북한에 있는 동생 가족을 그리워하고 걱정을 했어요. 우리가 성장했을 때 삼촌과 상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하셨지만 아직도 소식은 모르지만, 부모님의 유언은 꼭 삼촌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 민명기 회장으로부터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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