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음악으로 여는 세상] 세상을 구원하는 음악

어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어느 건물 입구에 한자로 크게,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인 걸 봤습니다. 북쪽에는 이런 풍습이 없는데요, 남쪽에선 입춘 때 가정집 대문에 이런 글씨를 써서 붙입니다. 남쪽에 와서는 종종 보긴 했지만, 이렇게 큰 건물에 붙은 걸 보니 좀 낯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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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새삼 입춘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연일 봄 날씨 같은데요, 그래서 봄이 새삼 반가울 리는 없고 봄보단 좋은 운수를 비는 '대길'이라는 말이 더 절실한 것 같습니다. 이북 날씨는 좀 어떤가요? 남북 관계도 또 우리 운수도 날씨처럼 확 풀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음악으로 여는 세상, 봄 소식 전해 드리면서 시작합니다. 김희진의 '봄이 오는 길'.

- 김희진 ‘봄이 오는 길’

지휘자 정명훈 씨,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동양인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의 오페라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유명 지휘자입니다. 정명훈 씨는 현재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예술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신년 초에 가진 기자회견 내용이 와 닿습니다.

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밝힌 2009년 계획은 “음악으로 배고픈 아이들을 돕고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활동을 하겠다”라는 것. 정명훈 씨는 음악이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줄 수 있고 자신은 음악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적 성과보다는 사회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는 음악가라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1월 말, 정명훈 씨가 이끄는 서울 시향은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 공연을 열었습니다.

공연에서 연주한 보르딘(Borodin)의 ‘폴로페츠인의 춤(Polovtsian Dances)’ 듣고 얘기 이어갑니다.


-Borodin ‘Polovtsian Dances’

‘자선 공연’이라는 말을 사실 저는 남쪽에 와서 처음 들었습니다. 공연을 통해 모은 돈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겁니다. 북한 어린이 돕기, 심장병 어린이 돕기 수재민, 소년 소녀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또 꼭 돈으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음악이라는 것을 접하지 못할 만큼 고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음악을 들려주면서 위로를 해줄 수 있습니다.

정명훈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음악인들은 적지 않습니다. 음악인들뿐 아니라 이름이 알려진 운동선수, 배우, 대중 가수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중 가수로 일 년에 몇 번씩 자선 공연을 여는 김장훈 씨의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혼잣말’.

- 김장훈 ‘혼잣말’

사실 저는 처음 남쪽에 왔을 때 ‘자선’이라는 말 자체에 놀랐습니다. 제가 배운 ‘자본주의’는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누르고 일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선, 기부, 자원봉사 같은 함께 살아가고 또 나누는 노력이 있는 사회라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또 제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으로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북한 수재민 돕기 음악회, 탈북 청소년들을 돕는 음악회, 북한 어린이들의 겨울나기 음악회 등 많은 자선 음악회에 열고 또 참여했습니다. 딱히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제 손으로 마련한 장학금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고향 동생들을 볼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예술가로 자칭하면서 혼자 하는 음악보다 이런 희망을 주는 음악이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제가 음악을 하는 목적이 되고 제가 더 피아노를 잘 쳐야 하는 이유도 찾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이희아 ‘희아의 노래’

지금 뒤로 흐르는 곡은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희아 씨의 ‘희아의 노래’라는 곡입니다. 이희아 씨는 남쪽에선 꽤 유명합니다. 선천성 기형으로 손가락도 네 개 중 관절이 있는 손가락을 1개, 무릎 밑으로도 흔적만 있습니다.

이런 신체적 조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인데요, 피아노를 치려고 아마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겁니다. 이런 이희아 씨도 자선 공연을 많이 합니다. 2007년 여름엔 북한 장애인을 위한 자선 공연도 했습니다.

북한에선 ‘자선 공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음악, 문학, 미술 등 대부분의 예술 분야가 정치와 체제를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죠. 정치와 체제를 위한 것도 일종의 사회를 위한 공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글쎄, 그것은 대중,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오는 6월, 5명의 고전 음악가들과 함께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음악회를 열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이 공연 수익으로 많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남북 관계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습니다. 이런 때 어림도 없는 말이겠지만, 북과 남, 남과 북이 함께하는 자선 공연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모여진 기금은 서로서로 이해하고 함께 살기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위협과 공포보다 따뜻한 마음과 이해, 양보가 모두 살기 편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요.

마지막 곡으로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들으면서 저는 물러갑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 서울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