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남쪽 사회의 모습은 주로 학생들이 시위하는 보도였습니다. 학생들은 입을 천으로 가리고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시위 현장. 북쪽에서는 이를 '민주화가 되지 않은 남쪽의 모습'이라며 선전했지만, 사실 이런 민주화 시위가 가능한 자체가 민주화된 사회의 모습이라는 생각, 그 당시에는 왜 하지 못했나 싶습니다.
지금은 노래방 노래책에 나와 있지만, 그때는 시위현장에 불렸던 민중가요.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는 이런 민중가요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첫 곡은 '아침이슬'입니다.
양희은 - 아침이슬
사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197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면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민중가요로 만들어진 노래는 아닙니다. 민중가요는 일반적으로 정치 운동, 노동 운동 같은 사회 운동에서 불리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인데, 운동권 학생들이 주로 부른다고 해서 ‘운동권 가요’, 또는 ‘저항 가요’라고도 합니다. 민중가요가 잉태된 시기는 70년대이지만, 우리가 현재 잘 알고 부르는 민중가요들 대부분은 1980년대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남쪽의 현대사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은 197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남쪽 사회를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시켰지만 대통령직을 무려 17년 동안 재임하면서 사회 민주화에 이바지하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혼란한 정국을 틈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중심이 된 신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게 됩니다. 12월 12일 일어났다고 해서 12•12 사태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후 정국은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갔습니다. 군부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도 이 시기 일어나게 됩니다. 군부 퇴진과 사회 민주화를 원하는 운동은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 내내 크고 작게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터진 것이 남쪽에서 6월 항쟁이라 불리는 대규모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이 6월 항쟁을 통해 남쪽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고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1987년의 일입니다.
노래 한 곡 듣고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이런 격동의 현대사를 지내오면서 남쪽 사람들에게 민중가요는 단순히 시위를 할 때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저항을 표시하는 수단이었으며 사람들과 교감하는 통로가 됐습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솔아 솔아 푸른 솔아’는 아마 청취자 여러분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노래는 민중가요로는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요 순위 방송에서 4위까지 올라갔고 이 노래가 담긴 음반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대학가의 민중가요가 이렇게 음반으로 묶여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이 음반을 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사실 각 대학의 노래 모임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연합 노래 모임으로 아침 이슬을 만든 김민기 함께 시위 현장에서 불렸던 노래, 또 새로 만든 노래들을 묶어 1984년 1집 음반을 팔았습니다. 1집은 그다지 대중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87년 발매된 2집의 파급력 컸습니다. 2집에 수록된 곡이 바로 이 ‘솔아 솔아 푸른 솔아’와 ‘광야에서’ 같은 노래입니다.
이것이 80년대 후반의 상황이고 90년대 불린 민중가요는 조금 다릅니다. 더 빠르고 신명나고 심지어 트로트 곡의 구조까지 빌려왔습니다.
꽃다지 - 바위처럼
지금 들이시는 곡은 꽃다지의 ‘바위처럼’이라는 곡입니다. 대학가에서 지금까지 불리는 정치색 좀 덜하고 가벼운 노래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연세대 사태라는 사건을 계기로 학생 운동권은 거의 해체됐고 민중가요는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사태는 여러분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1996년 일어난 사건으로 시위하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이 진로가 막히자 연세대학교로 들어가 사흘 동안 봉쇄됐다가 검거된 사건입니다. 검거를 하고 보니 학생 대부분이 선배의 강요에 의해 나온 어린 1,2학년 학생들과 도망가기 수월치 않았던 여학생이었고 핵심인물 대부분은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이런 결과는 한총련에 대한 실망과 함께 대중과의 교감을 떨어뜨렸고 이후 학생 운동권이 해체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90년 후반 이후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통일 운동에서 주로 불렸던 노래들입니다.
INS IN : 꽃다지- 서울에서 평양까지
북쪽이 고난의 행군을 겪고, 탈북자가 생기고 남북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쪽의 운동권에서조차 이제 북한 체제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들이시는 이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가사는 사실 따져보면 이제 우리 탈북자들이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는데 평양은 왜 못 가…
INS OUT : 꽃다지-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래서 이렇게 격동의 시절, 사람들과 함께한 민중가요는 이제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의 노래, 젊은이들에게는 단순히 가사가 좋은 노래 정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중가요는 단순한 선동 정치 노래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시대 민중의 정신을 대변하고 사람들의 소망을 담는 노래입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위로를 받고 힘을 냅니다.
북쪽에서는 사실 이런 민중가요는 없습니다. 기껏 부르는 노래라고 해봤자 정치적으로 국가에서 부르라고 하는 노래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주민들에게 모임이나 시위, 집회의 자유가 없으니 이런 식으로 개인들이 원하는 바를 목소리 높여 얘기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고 민중가요 역시 만들어지지도 불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우리의 목소리와 소망을 담아내고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목소리로 함께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해봅니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남쪽 국민이 어려운 시기 부르며 힘을 받았던 ‘상록수’ 라는 노래의 가삽니다. 오늘 청취자 여러분께 바치고 싶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와 함께 저는 이만 인사 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