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음악으로 여는 세상] 흘러간 노래, 흘러가지 않은 감정

안녕하세요 음악으로 여는 세상, 김철웅 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제 눈에 확 띄는 기사가 하나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1928년 일제시대에 발표돼 지금도 많이 불리는 노래, ‘황성 옛터’. 거의 80년 전 노래인데요..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98세 가까운 나이로 생존해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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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이름은 이애리수. ‘황성 옛터’를 불렀을 때 그의 나이가 18 살이었답니다. 이후 큰 인기를 끌었지만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무대를 떠났고 집안의 반대 때문에 지금까지 황성 옛터를 부른 가수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다고 합니다.

- 음악 <황성 옛터>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아마 영화 ‘조선의 별’에서 이 노래가 잠깐 나와서 청취자분들 중에서도 기억하신 분들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일제 강점기 때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노랫말을 구슬픈 곡조에 담고 있습니다. 고려 옛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빗댄 가사 덕분에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전국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였을 때, 한 마음으로 부르던 노래를 부른 가수가 살아있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찌릿해옵니다.

이런 일제 강점기가 지나고 민족해방이 왔지만 그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실향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전쟁 뒤에 발표된 노래들은 구슬퍼 졌습니다.

그런데, 잘 보면 이 시기 눈에 띄게 활동했던 가수들이 알고 보면 북쪽이 고향인 사람이 많습니다. 같은 시기 북쪽에서 월북자를 크게 선전했던 것에 비교해보면 남쪽에선 월남자라는 선전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그저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오늘은 남쪽에서 활동한 실향민 출신 가수들의 노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의 김정구 씨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 입니다.

- 눈물 젖은 두만강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아는 곡이라 믿습니다. 이 곡은 원래는 독립운동가 남편과 아내의 비극적인 이별을 소재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곡이 처음 발표됐던 때도 일제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이 곡이 민족혼을 고취시킨다고 판매금지령을 내렸고 그렇게 이 곡은 묻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후, 김정구 씨는 이 노래를 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노래의 가사와 구슬픈 곡조는 고향을 두고 가지 못하고, 가족을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1000만 이산 가족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또 동족상잔의 고통을 겪은 국민들은 이 곡에 열광했습니다.

김정구 씨는 1985년에는 평양에 가서 이 노래를 불러 북한 주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이 노래는 국민가요로 추앙 받으며 절대적인 인기와 사랑을 받는 곡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요? 한명숙 씨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입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유명한 한명숙 씨는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입니다. 이 노래는 북한 영화에도 잠깐 소개돼서 우리 청취자들에게도 익숙한 노랩니다. 한명숙의 고향 진남포는 대동강 어귀로부터 39㎞ 올라간 상류에 위치한 이 항구 도시인데요.. 지금은 남북의 배편이 활발히 오가는 ‘남포’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랩니다.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로 유명한 원로가수 신카나리아 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입니다. 192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신카나리아..좀 낯선 이름인데요. 본인의 진짜 이름은 아니고 가명입니다. 신카나리아 씨는 가요계에서는 처음으로 예명을 쓴 국내 1 세대 여가수로 특유의 꾀꼬리 같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입니다.

-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소개해 드린 분들 외에도 ‘비 내리는 호남선’의 손인호, ‘꿈에 본 내 고향’ 의 한복남, ‘아리조나 카우보이’의 명국환 씨 등도 북쪽에 고향을 둔 가수들입니다. 모두 다 소개해 드리기에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기만 합니다.

평균 실향민의 나이가 이제 거의 70세가 넘었습니다. 그래서 실향민 1 세대들이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구요, 대신 실향민 2 세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가수 ‘강산에’ 씨를 소개합니다. 강산에 씨의 부모는 함경도 출신입니다. 3살 때 세상을 뜬 강산에의 아버지는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고, 어머니는 충청도 출신이지만 6.25 동란 전 함경도로 시집가 전쟁 전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고 하네요. 그의 노래 '라구요'의 가사가 들려주듯 그의 부모가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다'던 그곳에 아들인 그가 2006년 ‘금강산 콘서트’ 무대를 통해 먼저 발을 디뎠습니다.

고향을 그리는 부모의 마음이 그의 아들에게 노래를 타고 고향 땅에 전해졌을 것 같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겪은 세대가 사라져 간다 하더라도, 민족의 아픔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 등을 돌린 지 50여 년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상대방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쓰라린 마음은 흘러간 노래의 잔상처럼 우리의 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강산에의 ‘라구요’ 들려드리면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