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판 에이전트와 계약을 하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4.05.20
second poetry 200 장진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Photo: RFA

BBC라디오 '뉴스아워'에 출연했을 때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세계에 하고 싶은 시인의 말이 뭐냐고 사회자가 물었다. 나는 그때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왜 세계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3대 세습이야말로 독재와 인권유린의 명백한 증거이다. 북한은 중동처럼 기름이 나오지 않아서인가? 서방의 인권기준이 투자가치로 판단하는 것인가?" 방송이 끝난 후 사회자는 마지막 질문이 아주 멋있었다며 그 질문에 자기가 제일 먼저 대답하겠다고 했다. "서방은 북한인권 실상을 사실 잘 모른다. 그냥 독재 정도로만 알지 구체적인 증거를 모른다. 당신 같은 북한 망명 작가들이 그걸 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눈을 뜬다."

나는 그날 호텔에 돌아와 밤 늦게까지 여러 나라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통역은 셜리가 해주었다. 작가들도 나에게 정치적으로만 언급되는 현재 북한의 현실을 문화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문화의 힘이 여론을 바꾸고 정치도 바꾼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가?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서방은 지금껏 자유민주주의 시각으로 북한을 보고 접근하려고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북한은 사회주의 동구권이나 중국과도 너무 다른 김씨 왕조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교류 밖에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북한인권도 정치적인 경계를 한다. 그 장벽을 깨자면 문화의 설득이 필요하다. 내가 옳게 말했는가?" 세계의 시인들은 바로 그것이라며 건배 차원에서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들의 지지와 기대 앞에서 나는 그날 큰 소리로 북한문학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다음날에는 고민이 많았다. 시집만으로는 세계 독자들과 소통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것은 분명해서였다. 무엇보다도 많은 독자들을 만나자면 세계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내야 하는데 그 산은 또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 고민을 단번에 풀어준 은인이 나타났다. 내 시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며 영국 출신의 여인이 나와 에이전트 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그녀는 아시아 담당 문학 에이전트였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도 그녀의 손을 거쳐 세계에 소개됐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시인이 아니라 시인의 삶을 통해 북한현실을 고발하는 운문의 자서전을 제안했고, 그녀도 흔쾌히 허락하여 마침내 서로 사인을 하게 됐다. 그녀는 원래 책을 놓고 계약을 하는 것이 상식인데 나의 문학성을 믿고 계약하는 것이니 되도록 짧은 기간에 책의 실체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 출판 에이전트 계약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기회가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북한만큼 진지하면서도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문학적 원천이 없을 것이란 것이었다. 나는 에이전트에게 그 설득을 숫자 3으로 설명했다. 3대 세습, 3대 멸족 연좌제, 3백만 대량아사, 세상에 없는 그 비극의 연속 속에서 사는 북한 주민들의 체험의 극한과 갈등은 세계가 상상할 수 없다고 말이다. 지구촌이 너무도 평화롭고 자유로운 탓에 인생사를 초월한 외계세계와 공상의 현실을 창조하는 현대문학이 비로소 독재국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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