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무덤에서 천국으로, 80세에 시작한 새 삶①

토론토-장미쉘 xallsl@rfa.org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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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한인권포럼에 참가해 경청하고 있는 올해 83세의 서주은 할머니.
RFA PHOTO/장미쉘
MC: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들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드리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잡니다.

캐나다 토론토시 중심가에 자리한 한 작은 아파트, 이곳에는 지난 2009년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민 서주은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서 할머니의 연세는 올해 83세, 탈북민들 중에 이렇게 나이가 많은 분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겪은 식량난과 탈북 과정에서의 힘겨운 삶으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 할머니의 단단한 체구와 힘있는 걸음걸이, 조용하면서도 조리 있는 말투, 강인한 눈동자는 누가 보아도 그가 80대의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활기에 넘쳐있습니다. 6.25전쟁 시기 북으로 끌려간 수많은 납북자 중의 한 사람인 그는 북한에서 산 50여 년간 한 순간도 자유를 향한 끈을 놓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사범대학을 나온 서 할머니는 중앙전화국 교환수로 일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평온한 삶은 6.25전쟁과 함께 한 순간에 뒤바뀌고 맙니다.

서주은: 하루는 연락이 오기를 교환수들 다시 나오라 돈도 주고 직업도 줄 테니까 나오라, 그래서 친구들과 나가 보니까 그게 아니고 군복이 잔뜩 쌓여있고 그걸 입고 차에 실어서 트럭에 실어서 밤새껏 간 데가 38선이었어요. 그때가 50년 9월 20일, 전쟁에서 지게 되니까...쫓겨 나면서 많은 청년남녀들을 끌어다 납치했을 때 단체 생활 시키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죠. 나하고 같이 끌려간 친구들이 한 30명이었는데 가면서 선동 원들이, "북한에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없다 병이 나면 무료치료를 해준다, 참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호기심이 나서 희망을 가지고 그랬는데, 정말 부유한 북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원도에 도착했을 때 웬 처녀가 나오는데 그 버선도 안 신고 베옷을 입고...그거 보고 너무 놀라서 이게 내가 속은 건가 하고 생각했죠...

북한에 끌려간 이후로 서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서주은: 항상 배고픈 걱정을 해야 하고 항상 절약해야 하고, 내가 남편을 만나서 생활하면서도 군관이기 때문에 남편은 700그람, 나는 300그람 가지고 생활하는데, 남편은 이 밥을 주고 나는 조밥을 먹어야 하고... 그래도 70년(대)까지는 상점에 과자 부스러기도 있고 그랬는데 그 이후로는 배급제로 넘어가면서 항상 줄을 서야 하고...며칠씩 기다리는 지도 몰라요...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간 다음 서 할머니는 자식들과 자신에게 닥쳐오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협동농장에서 강냉이를 도적질해 연명했지만, 결국 큰 딸과 사위, 외손주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서주은: 남편이 왜 정치범이 되었나 하면, 왜 로씨야는 잘 사는데 왜 조선은 못사는 가고 .. 술자리에서 한마디 한 것이 소식도 없고 바로 그래 ... 그 시절을 거치고 ... 들어가고 나서부터 내가 고난이 시작되고 정치범가족으로 손가락질 다 받고 ... 영양실조로 애들이 하나씩 죽었죠 ...

그가 지켜본 수많은 죽음들 가운데는 함께 북한으로 납북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서주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네 사람 있었는데 한 친구는 서울에서 이화여자 대학 나온 사람이었는데 교수까지 하던 사람이 북한에 끌려가서 고생 고생하다가 길에서 떡장사 하다가 죽었어요. 이렇게 서울에서 왔다 하면 요시찰 대상이거든요. 또 우리 친구 하나는 서울서 사범대학 출신이었는데 참 내가 북한을 지지한 것이 일생 일대의 실수였다고 하면서 남한에 친척이 있으면 무조건 가라, 여기는 인생이 아니다, 그러고 죽었는데 뇌출혈로.... 그 많은 인재들이 무참히 밟히고 참 너무도 원통하죠 ...

남편과 자식들, 친구들의 죽음, 그리고 50여 년간 한 순간도 놓지 않은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에게 70세 후반의 나이임에도 혼자된 작은 딸과 함께 주저 없이 조 중 국경을 넘을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모진 세월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서 끝내는 자유의 품에 안긴 서주은 할머니의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계속 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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