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통일되면 남북도 통일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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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최홍희씨가 태권도를 창시하여 발전시키게 되는 과정과 박정희정부와 의 갈등으로 마침내 한국을 떠나게 되는 데까지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 계속이어집니다.

캐나다 교민이며 최홍희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저서 "태권도와 나" 집필에도 함께 참여한 전 러시아 특파원 송광호씨를 만나 최홍희씨가 한국을 떠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송광호: 최홍희나 박정희나 같은 군인들이고 같은 육군 소장이고 또 박정희 선배이고 5.16 군사정변도 함께 일으킨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파가 좀 달랐다고 그래요. 박해를 당해서 나온 것은 아니고 당시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하려고 태권도를 이용하고자 했는데 최홍희 총재가 그것을 용납을 못하고 순수한 무도인 태권도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런 최홍희 총재가 왜 또다른 독재국가인 북한으로 가서 태권도를 보급했을 까요?

송광호씨는 최홍희 씨가 망명해서도 박정희정부의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캐나다에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으며 반대로 한국의 WTF, 세계태권도 연맹 은 국가의 지지를 받아 점점 성장하는 데서 위구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송광호: 1980년도인가 요청을 했어요. 그 당시 북한의 부주석이 김일 인데, 자신의 제자도 잃고 자신이 갖고 있는 태권도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생활자체도 그렇고 하니까, 북한에 요구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태권도를 살려야 되겠다 생각하고 당시 10명이 북한에 들어가서 시범을 하니까 북한에서 깜짝 놀라서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하고 그래서 북한에서 정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홍희씨는 저서 "태권도와 나" 에서 북한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곳이면 이세상 어디든지 간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며 북한도 내 조국인데 가지못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1979년 당시 북한의 평화통일 위원장이며 부주석이었던 김일이 해외 언론 기관의 인사 10여명을 초청한 기회로 최홍희씨는 북한을 방문했고 34년만에 고향 명천도 가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여 최홍희 총재는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ITF, 국제태권도 연맹을 전국가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북한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범 한명에게 2,000달러의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최홍희씨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까지 태권도의 보급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남한에서 세계태권도 연맹(WTF)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 총재가 북한에 직접 와서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남한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포착한 것입니다.

북한은 또한 최홍희씨가 북한출신임에도 한국전쟁당시 북한인민군과 싸운 경력에 대해서 민족에게 죄를 짓고 세상을 떠돌던 망명객이 북한에 와서 광명을 찾았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습니다. 이 또한 북한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체제결속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한 것입니다.

탈북민 권효진씨는 그때 당시 북한에서 선전한 태권도와 최홍희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권효진: 전세계의 조선의 태권도를 알려주는 좋은 일하는 사람이 태권도의 고향에 왔다 이렇게 말했지요. 태권도의 긍지감이 대단했어요. 태권도 노래도 있고 태권도 율동체조도 나오고.

최홍희 총재로부터 태권도를 전수받은 북한은 1982년부터 군대를 비롯한 학교, 공장 등 모든 기업소들에서 태권도를 집중적으로 보급육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모두 당과 수령을 위한다는 정치적 구호속에 집중 되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기록영화를 만들어 태권도는 고구려시대때 내려오던 "박수"라는 우리민족 전통의 놀이로부터 "태껸"이 태어났고 "태껸"으로부터 태권도가 발전되었다고 하면서 최홍희씨가 창시자라는 사실을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북한은 또한 점점 태권도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 하기 위해 사범양성 해외파견 시범단 운영 등을 자체적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ITF 국제태권도 연맹과 대립을 보였습니다.

이는 처음에 최홍희씨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고수한 몇가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해외에 파견된 국제사범은 ITF가 정하고 통제하며 총재를 통해서만 해외에 나가 있는 사범들과 접촉할 수 있다 등이었는데 북한은 정교하게 짜인 대남전략에 의해 점차적으로 최홍희씨의 ITF를 흡수했고 1980년이후에는 결국 태권도 사범들의 해외파견을 직접 관장했습니다.

이 해외파견사범에는 북한 통일전선부의 공작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치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태권도를 보급하려고 캐나다로 망명한 최홍희씨의 태권도는 결국 우리민족의 남북한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화합의 길 모색하는 국제태권도와 세계태권도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