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한국전 참전 기념 ①

토론토-장미쉘 xallsl@rfa.org
2011-06-28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canada_war_305
지난 2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거행된 한국 전쟁 제61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전 참전용사회의 김광웅회장(한인)과 테리위킨스 전회장(캐나다).
사진-참전용사회 제공
MC: 캐나다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과 북한 인권관련,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드리는 시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1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2만 6천여명에 달하는 캐나다의 젊은이들은 태평양 건너 멀리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의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오늘은 캐나다에서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토론토에서 장미쉘기잡니다.

(라디오 배경음)

1950년 6월 29일, 캐나다 국영방송인 CBC의 방송원이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 보도합니다. Today, Canada's first move to aid the United Nation's defense of Korea...discussing what the countries can do to follow up the lead taken by the United States... Minister of External Affairs Lester Pearson told the House of Commons..." 오늘 캐나다는 유엔의 한국방위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그 첫 번째 조치를 취했습니다.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은 국회에서 유엔한국위원회(UN Korean Commission)에 두 사람의 입회자를 파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만나본적도 없는'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 코리아는 이렇게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빚어진 "6.25전쟁"으로 인해 캐나다 국민들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6.25전쟁준비를 위해 1949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의사를 타진합니다. 이듬해인 1950년 3월 김일성은 다시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으며 같은 해 5월에는 중공의 모택동을 찾아가 지원을 약속받습니다.

함경북도 함흥출신으로 6.25발발 당시 육군 사관학교 제1기 생도로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한인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 김광웅 예비역 대령의 증언입니다.

김광웅: 그 때 박헌영이 같이 갔는데 만일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은 폭동이 일어나서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모택동이 지원해 줄것을 원해 모택동을 그때부터 이미 참전 할 것을 계획하고 병력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때 사관학교 생도로 학업중에 6.25전쟁이 나자 학업도 중단하고 그날 우리 1기생 260여명이 참전 했습니다.

모든 전쟁준비가 완료되자 북한의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도선 이남의 전 전선에 걸쳐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고 3일 만에 남한의 수도인 서울을 점령합니다. 유엔은 즉각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무력공격을 "침략행위"로 규정해 "북한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유엔의 이러한 결의안에 대해 북한이 아무런 응대도 없자 유엔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남한에 제공함과 동시에 미국, 영국, 캐나다를 포함한 16개국은 유엔군의 깃발아래 한국전쟁에 참가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파병을 논의 하면서 캐나다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한국전 파병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 캐나다국민이 가서 피를 흘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 피어슨(Pearson)외무장관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캐나다는 한국전에 참전함으로써 자유 수호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라고 엄숙히 선언했습니다.

캐나다 부대가 참전했던 가평전투는 세계전사에 남을 유명한 전투 중의 하납니다. 1951년 4월 가평군에 있는677고지에서 캐나다 패트리샤 경보병 제2대대는 중공군 제20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입니다. 이 가평전투에서 살아남은 올해 79살인 돈 힙스(Don Hibbs)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Don Hibbs: “There’s dirt. There’s dust. There’re people hallooing. There’re people dying on both sides. You can hear them. It was terrifying. But also you’re resolved that you are there and there is no place to go. 오물과 먼지 그리고 비명소리. 양측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 공포의 도가니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 현장에 있고 어디로든 피신할 곳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포격을 하고 전투를 하는 수밖에… 그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캐나다 군대는 수적으로 10배나 많은 중공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으나, 677고지를 끝까지사수함으로써 한국의 수도 서울을 공략하기 위한 그들의 4월 춘계공세를 가평 북쪽에서 저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캐나다는 이 가평 전투로 인해 한국전에서 특별한 긍지를 갖게 되었다고 돈 힙스 씨는 말했습니다.

"한국전 참전을 기리는 캐나다", 다음시간에는 캐나다에서 한국전쟁이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바뀐 과정과 북한인민들에게 6.25전쟁은 미국이 남한을 부추겨 일으켰다고 왜곡 선전하는 기만성 등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장미쉘입니다.
하고 싶은 말 (0)
  • 인쇄
  • 공유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