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서 망명한 북한유학생, 그 이후의 삶 (2)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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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혁씨가 모는 경비행기.
김대혁씨가 모는 경비행기.
Photo: RFA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지난시간에는 지난 1980년대 말에 동유럽에서 망명한 북한유학생 김대혁씨의 한국망명과정에 대해서 전해드렸는데요. 12년이 지난후 이곳 캐나다에 오게 된 김대혁씨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김대혁씨는 1990년대에 캐나다에 방문 왔다가 한 한인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캐나다에 정착하게 됩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김씨는 캐나다사람들이 추구하며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 깊이 동감하게 되는데요.

김대혁: 캐나다에서 놀란 것이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어요. 누가 보던말던, 내가 옳은 일을 하면, 한국에서는 그런 것이 있어요. 남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남이 버리는 데 나도 버리지뭐 그러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면 나는 주워, 왜, 나는 옳은 일을 하니까, 니가 나한테 불공평하게 대해도 나는 너한테 공평하게 할거야, 나를 위해서, 그런것이거든요. 한국사람들은 니가 나를 불공평하게 대해? 난 너한테 더 불공평하게 대할거야. 이렇게 생각하죠. 진상 같은 손님들이 있어도 항상 원칙대로 대해요.

김씨는 한국이 비록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롭고 좋은 나라지만 캐나다의 선진국다운 면모가 좋았다고 전합니다.

김대혁: 한국적인 가치관이 있잖아요. 남의 눈치를 항상 봐야 하고, 남하고 똑같이 하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척하고,

김씨는 처음에 한국사람들이 운영하는 직장에서 일했지만 후에 좀 더 큰 꿈을 꾸게 됩니다.

김대혁: 북미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직업 1,2,3위 쭉 보니까 1위가 외과의사 등등인데 의대는 다녀봤지만 이제는 할려고 해도 늦은 것이고 네번째인가 그게 항공사 조종사가 있더라구요. 일년에 10만달러에서 20만달러 번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보면은 의사하면 의사가 되는 방법이 나오고, 조종사 하면 조종사 되는 방법이 쭉 나와요. 그런데 보니까 그렇게 어렵지가 않더라구요. 그럼 조종사 해볼가, 어차피 내가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래서 김씨는 조종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우선 대학에 가게 됩니다. 대학에서 영어쓰기, 발표 등 실력이 몰라보게 늘면서 김씨는 3달만에 조종사 학교에 가게 됩니다. 하지만 조종사과정은 그렇게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종사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캐나다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공부잘하는 젊은이들이 도전하는 직업입니다. 물론 북한에서와 같이 성분, 토대를 보는 일은 당연히 없을 뿐아니라 이곳 사람들은 생각조차할수 없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캐나다사람들은 조종사가 되려면 10대 후반이나 20대초반부터 배워야 하는데 김씨는 이민자로서 39세 나이에 시작한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주변 캐나다친구들은 다 김씨가 못해낼것이라고 했지만 김씨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끝내 자가용비행사자격증과 상업용비행사 자격증을 따고 마침내 소원하던 하늘을 맘껏 날게 됩니다.

지금 김씨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비행사교관일에 도전하고 있다는데요. 동유럽에서 탈출과 현재 캐나다의 생활, 김대혁씨가 20대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삶의 가치는 바로 “자유”입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탈북민 가운데서 선배격인 김씨는 후배탈북민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요.

김대혁: 탈북민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뭐냐면은 북한에서 살아오면서는 북한은 원래 제도가 나쁘니까 거기서는 불법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거짓말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 법치국가에 와서는 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법은 어기지 말고 살아남기 위해서 과거에 그랬지만 여기서는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일은 다 열심히 하고 살더라구요. 뭔 일을 하든지요.

김대혁씨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꿈꾸던 서방나라에서 살고 있고 또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비행사도 되었지만 자신의 삶이 결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고 말합니다.

북한에 두고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가 추구해온 자유의 삶은 항상 그의 머리에서 갈등하고 있었는데요. 동유럽에서 탈출해 혈혈단신으로 남한에서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서 반생을 지나보낸 그가 찾은 인생의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단란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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