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2월이 되면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모든 졸업식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인데요. 3월에도 역시 꽃을 들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 학기, 새 학년을 맞는 입학철이기 때문이죠. 탈북 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교, 새 친구를 맞는 지금, 두려움이 앞섭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낯선 새로움을 대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심정을 들여다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선생님 주변에는 새로운 학년을 맞거나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나요?
전진용: 네. 3월이 되면 제 조카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기도 하고요. 대학원에 가는 친구들도 있고 3월에는 아무래도 입학과 졸업을 하는 지인들이 있죠.
이예진: 저도 그 때 설렜던 기억이 있는데요. 입학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은 아무래도 설레는 마음이 앞서겠죠?
전진용: 네.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기도 하지만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긴장감과 걱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예진: 네. 설렘 반 긴장감 반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탈북 학생들의 심정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먼저 김규림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김규림: 처음에는 신입생 생활도 남한 애들과 똑같이 시작해요. 선배들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동기들과는 어떻게 지낼지, 무슨 옷을 입고 다닐지 걱정하는 건 똑같은데 차이점은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어떻게 대처할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고, 사투리가 있으니까요. 그런 걸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이예진: 대학 입학을 앞둔 탈북 학생들은 특히 더 자율적인 대학 생활에 대해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탈북 학생들을 상담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진용: 네. 예전에 하나원에서 근무할 때 고등학교에 가는 학생이나 하나원 퇴소 후 새로 배정받는 학생들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고요. 탈북자라고 나를 놀리는 것은 아닐까,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 또래에서 유행하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듣고 반응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예진: 또래 언어가 있으니까요.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인데요. 앞서 들으신 규림 학생의 얘기로도 남한 친구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규림 학생 뿐 아니라 많은 탈북 학생들이 처음부터 고향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규림 학생의 얘기를 더 들어볼까요?
김규림: 친구들 사귀면서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말해야 하나 생각하는데요. 왠지 말하지 않으면 속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북한에서 온 게 자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요. 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껴요. 그런 갈등을 많이 했죠. 저는 얘기를 안 해요. 친해지기도 전에 말하면 벽이 생기거든요. 북한에서 왔다고 먼저 말해서 벽을 쌓을 필요는 없잖아요. 서로 술 먹고 한 잔 하면서 서로 힘든 얘기하다가 저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레 말해서 친해지는 거죠.
이예진: 규림 학생의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진용: 남한 사람들에게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렇다고 계속 숨긴다면 불안해지고 조바심도 나고 대인관계도 위축되고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이 좋겠지만 너무 불안정한 상황인데 억지로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규림 학생이 잘 하고 있네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스스로 감춘다는 느낌이 든다면 대인관계도 오래 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전진용: 네. 감추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반경을 좁히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대인관계가 위축되고 하나하나 조심하다보면 상황을 과장해서 생각하게 되거든요. 상대방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안 좋은 의도로 그러나보다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피해의식까지 생길 수 있어서 대인관계에서 어려움과 불편감이 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규림 학생은 그래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긴 친구도 있다고 하는데요.
김규림: 그런 상황들이 있고 자주 경험하다보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는데 그러다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경우도 봤고요. 대학 생활하면서 친구들 사귀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직 자아정체성이라고 하나요? 그런 걸 잘 인식하지 못해서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처럼 아직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탈북생들을 위해서 행사를 많이 하잖아요. 거기에 참여하면 뭐 주고 그러면 할 수 없이 참여하고, 대안학교는 어디어디에 참여하면 기숙사를 제공한다 하면 참여하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적극성이 떨어진다고 할까.
이예진: 자아정체성과 대인기피증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먼저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사람들의 어떤 특별한 유형이나 성향이 따로 있나요?
전진용: 일단 인격장애, 선천적인 성격 때문에 흥미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 생활하다보면 자신감이 결여되고 우울감이 생겨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겠고요. 또 일부는 편집증적인, 의심이 많은 성향이 있는데요. 이런 분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볼 것이라는 과장된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예진: 규림 학생은 또 대다수 탈북 학생들이 자아정체성이나 적극성이 낮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아무래도 심리적인 원인이 있겠죠?
전진용: 네. 북한 자체가 수동적이고 개인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전체를 강조하는 사회이다 보니 수동적이 되고 위축되게 하는 면이 있을 것 같고요. 정체성이라는 게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이 시기에 중국이나 제3국, 한국을 거치면서 혼란을 겪기 때문에 아무래도 안정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규림 학생이 한 말 중에 누굴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인식이 있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요. 이 자아 정체성을 키우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전진용: 최근에 보면 탈북자들을 위한 리더십 교육이 많던데요. 단체 활동이나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 교육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생활 등에 재미와 자신감을 붙여서 활동하다보면 조금더 능동적이 되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규림 학생과 만나보니까 대체로 잘 적응해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래도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바로 아르바이트. 주로 대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중, 고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과외나 커피를 파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단기 부업 같은 일을 말하죠.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기 어렵다고 하는데요. 규림 학생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김규림: 저도 되게 부러웠어요. 다른 애들은 과외나 부업을 하잖아요. 커피 전문점에서 일해도 평상시에는 모르다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어조가 달라요. 그런 것 때문에 커피 전문점에서 일을 못 했고 얼마 전에는 당구장에서 부업을 하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자꾸 말투가 이상하다고 어디에서 왔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긴장하면서 더 이상하게 말투가 나오더라고요. 기분도 상하면서 자신감도 더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예진: 선생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시겠어요?
전진용: 일단 굳이 그쪽에서 물어보지 않는 상황에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좀 더 당당할 필요는 있겠죠. 억지로 사실을 밝히거나 밝혀서 불리해진다면 사실을 말하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만 자꾸 감추다보면 긴장이 커지고 위축되는 상황이 되니까 좀 더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다보면 긴장이 줄고 적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예진: 새로움에 맞닥뜨리는 탈북 학생들의 현실이 아직은 안타깝습니다. 어리지만 배짱을 가지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탈북 학생들의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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