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권리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04.20
disable_rights_b 지난 2009년 장애인단체 대표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보건복지가족부의 `장애인권익증진과' 폐지를 결사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선 1981년부터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국가적인 기념행사를 해왔습니다.

장애인을 북한에선 사회보장자라고 하죠.

한국에선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념일을 제정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장애인을 위한 복지는 미비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보는 장애인 복지는 어떨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는 의료분야를 비롯한 생활자금, 자동차 세금 감면 등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방안들이 마련되어 있죠.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장애인 복지 향상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탈북하신 분들은 어떤 지원을 받고 계신지도 궁금하네요.

마순희: 탈북 장애인 분들이라고 특별히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고 북한이탈주민으로서 받는 혜택과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들이 받는 혜택을 함께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원을 수료할 때 가산금을 받습니다. 장애급수에 따라서 장애 4-5급은 360만원, 달러로는 3100여 달러, 2-3급은 1080만원, 9400여 달러, 장애 1급은 1540만원, 만3500여 달러의 장애가산금을 받게 됩니다.

이예진: 한 번에 받는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리고 하나원을 수료하고 신병 인수 나온 상담사들이나 복지사들을 따라서 동 주민센터에서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만일 장애가 있다면 지역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가지고 장애급여를 신청하게 됩니다.

이예진: 하나원에서 장애급수를 못 받으신 분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리고 장애급여는 급수에 따라서 다른데요. 선천성 장애인지 후천성 장애인지를 차별하지 않고 다 지급됩니다. 그러니 탈북자들인 경우, 북한에서 장애를 가지고 왔어도 똑같이 한국에서 지급받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장애인증을 가지고 계시면 대중교통, 즉 기차나 지하철, 버스, 비행기 등 모든 운송수단을 이용할 때 요금감면을 받을 수 있고 또 공원이나 유원지, 박물관 등을 참관할 때에도 항상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예진: 고궁이나 박물관 등 매표소를 보면 장애인을 위한 가격이 따로 책정이 되어있더라고요.

마순희: 그리고 국민임대주택을 신청할 때에도 장애인은 우선순위가 되어 제일 먼저 주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자활능력이 되시는 분들이 취업을 할 때에는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있어서 취업이 더 용이하기도 합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라는 것은 일정한 규모이상의 사업장이나 회사에 일정비율이상의 장애인들 고용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취업이 힘든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진 회사나 사업자에게 일정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부담금을 내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실례로 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인 경우 2.9% 비율이라고 하니 저희들이 가끔 동 사무소나 정부기관들에서도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장애인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저도 종종 그런 분들이 일하고 계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일하기 불편하면 그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직원을 고용해서 돕도록 하더라고요. 그게 참 인상적이었는데 한국에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혜택이 이렇게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받는 지원이나 혜택은 북한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지원은 고사하고 평양시는 물론 대도시들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거든요. 북한이라고 장애인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북한에서는 외국손님들도 많이 오고 도시의 인상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등 이유로 장애인들은 거의 도시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지방도시거나 외진 곳에서 눈에 뜨이지 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편의사업소라는 곳에서 우산수리, 신발수리, 도장 새기는 일 등등 일들을 할 수 있게 장소를 마련해 주는 거죠.

제가 학교 다닐 때에 제 친구 중에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키가 작은 사람, 난쟁이라고 얕잡아 부르기도 하죠.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 해엔가 그런 사람들을 모두 모아다가 무인도 같은 쑥섬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도 부부생활을 못하게 하여 아예 후대가 퍼지지 못 하게 한 거죠. 참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하던 친구였는데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엄청 슬퍼한 사실도 있었거든요.

제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 쪽 다리가 소아마비로 경직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국처럼 휠체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책가방을 메고 쌍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학교에 다니군 했습니다. 더욱이 중학교를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열차에 오르내릴 때에는 엄청 힘들어 했겠는데 그 때에는 그 어려움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함께 통학하던 친구들이 가방도 들어주고 많이 관심을 돌리기는 했지만 항상 얼굴에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 친구를 생각하면 도움이 되어주지 못 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미안한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참 돌이켜 보니 350여 명이던 중학교에 장애인은 그 친구 한 명뿐이었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합니다.

이예진: 소아마비였던 친구와 학교를 같이 다녔던 건 그나마 농촌지역이었기 때문인 거죠?

마순희: 네. 그렇죠.

이예진: 그래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분들이 장애인 복지제도와 관련해 놀라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특히 탈북자분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것들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한국에 와서 놀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장애인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놀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북한도 평등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물 체격을 우선 따지는 북한에서는 장애인이 무대에 선다는 것은 구경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비정상인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똑같이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는 모습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지금은 많이 변했나 보더라고요. 신문기사를 보니까 북한의 장애인 청소년들이 외국에 나가서 공연을 했다는 기사가 떠서 적지 않게 놀랐거든요.

아파트에서 살면서 장애인 전용차량이 아파트 입구에까지 와서 대상자들을 싣고 병원이나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가는 모습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더군요. 생활하면서 놀라운 점은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더군요.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소의 점자표식판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노란색의 보도블럭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장치들이라고 하더라고요. 도로를 건널 때에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음악이나 소리로 신호를 알려주기도 하더군요.

이예진: 그렇죠.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보행신호로 바뀌면 음악이나 말로 알려주죠.

마순희: 네. 그리고 국가기관이나 공공시설, 모든 병원이나 편의시설, 문화시설, 그리고 대중교통시설 등 모든 곳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장애인 삼륜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경사진 통로가 설치되어 있어서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들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예진: 네. 그리고 이젠 탈북자들 중의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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