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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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가정에서의 문제는 남한사회에서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만큼 범위가 넓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족구성원의 다양함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남한 남성과 결혼한 탈북 여성이 뒤늦게 북한의 자녀를 데려오는 경우, 혹은 남한 남성과 결혼한 탈북 여성이 탈북 후 중국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 남한에서 낳은 아이, 북한에서 낳은 아이와 함께 사는 탈북가정 등 경우의 수가 많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들, 엄마의 입장, 아이의 입장은 얼마나 다를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남편과 아들이 있는 탈북여성이 혼자 진도에 내려가 목장 일을 하겠다, 지난 시간에 이런 전화 상담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두고 따로 진도에 가서 목장 일을 하겠다는 진짜 이유는 아들과 남편의 불화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마순희: 한국인 남편을 만난 지 5년 되었고 둘이 함께 서울시내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예진: 포장마차라면 간이술집이라고 하면 되겠죠.

마순희: 그렇죠. 그리고 2년 전에는 북한에 두고 왔던 아들을 데려왔고 그 아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학교도 못 다녔다고 합니다. 대안학교에서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셋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남편은 친구와 동업해서 자그마한 사무실을 차렸고 지금은 함께 하던 가게도 접은 상태입니다. 그녀는 두고 온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기에 아들을 데려오면 모든 시름이 다 끝날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 아빠와 아들이 대학진학을 놓고 서로 갈등이 심하고 지금은 남편도 아들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예진: 어떤 갈등이 있었던 건가요?

마순희: 네. 남편은 서울에서 명문대를 다닌 사람이기에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합니다. 남자가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구실을 못 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지만 아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검정고시공부를 하면서 많이 힘들기도 하고 자신을 잘 알게 되었는데, 자기는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로 즉 기술을 배워서 취직에 도움이 되는 특성화교교에 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들이 제 말을 안 듣고 인문계 대학에 안 가면 둘이 서로 갈라지자고 하는데, 도대체 남편과 아들사이에서 누구를 택해야 하는지 걱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더니 남편과 자기 사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지고 싶더군요. 부부사이에 태어난 아들도 아닌데 아들이 자기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여 부부사이가 이혼까지 할 정도라고 하면 과연 정상적인 부부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지금 누구 말이 맞고 누구 말이 틀리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아들이던 남편이든 시간을 주고 생각하여 스스로 결정을 하도록 하면서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요. 그리고 오리목장의 그 분들의 동의를 얻어서 연락처를 주었는데 후에 알아보았더니 상담을 받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그러니까 그분은 그리고 나서 연락이 없었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 분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귀농문제가 아니라 가족 간의 불화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 새로 가정을 이룬 분들 가운데는 잘 살고 계시는 분들도 많지만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종당에는 서로 갈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이예진: 남의 집 사정은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알 수 없다고 하죠. 그래서 그런 가족 간의 불화는 아무래도 상담전화 하나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 상담이 어려운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의 특성상 가족형태가 얼마나 다양한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겁니다. 북한에서부터 함께 온 가족이나 자녀가 있는가 하면 제3국 즉 중국이나 소련 등지에서 가족이 형성된 경우, 한국에서 새로 가정을 이룬 경우 등 사례들에 따라서 자녀들 역시 한 가정 내에도 북한자녀, 제3국 자녀, 한국출생자녀 등 그리고 배우자 역시 국적도 여러 가지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살다보니 가족 간의 문제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워낙 지금은 세계화가 추세다보니 그런 현상들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지만 갈등으로 번질 경우에는 의외로 심각한 경우들이 많더라고요. 재단에서 일하면서 법률상담을 예약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가정불화에 대한 상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예진: 앞으로 통일되기 전까지는 탈북 가정의 불화에 대한 상담은 계속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에 있어 잘 해결된 사례도 물론 많죠?

마순희: 그렇지요.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 즉 집도 사회도 학교도 친구도 공부도 모든 것이 낯설어서 어린 학생들이 적응하기에는 많이 힘든 부분이 있죠. 그러나 탈북학생들이 많은 학교들에는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 교사들도 있고 학교들마다 선생님들이 관심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린 학생일수록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도 많고 어떤 일이 제기되면 부모와 상의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거죠. 그런데 부모의 관심도 지나치면 약이 안 될 경우도 있었어요.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기의 개성이 있고 생각이 있는 법인데 부모가 너무 자기 방식대로 키우려하고 강요하다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중국말밖에 모르는 자녀를 데려 온 경우도 간혹 있는데요. 사례마다 해결방법이 서로 다르더군요. 제가 민간단체에서 일할 때 예술단활동을 하던 친구는 9세 딸이 중국에서 왔어요.

이예진: 중국에서 낳았던 딸을 찾았군요.

마순희: 네. 그 딸은 한족마을에 살다보니 한국말 한 마디도 모르고 그냥 눈치만 보던 애였거든요. 엄마가 중국말과 한국말을 번갈아 쓰면서 말을 익혔고 방과 후마다 동행하여 복지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1년도 안 되어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엄마를 닮아서 노래실력도 대단해서 지금은 복지관에서 봉사로 하는 공연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사례는 한 기관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여성이었는데요. 한국에 와서 가정을 꾸리고 애기도 있었죠. 열 두어 살 되는 딸을 중국에서 데려오긴 했는데 애가 가정에 잘 적응하지 못 했어요. 물론 엄마도 하고 있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애에게 자기가 하고 있는 직장일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관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요. 그래서 애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방학이 되거나 시간이 되면 가끔 집에 오게 되니까 집 식구들과도 더 친해지고 학업성적도 쑥쑥 올라갔대요. 얼마 전에 들으니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에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고 기뻐하더라고요.

이예진: 공부도 잘했군요. 대부분 탈북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보면, 결국 누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온도차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선은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나 배우자의 입장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아이나 그 배우자 역시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다면 갈등이 시작되는 말 한 마디부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요? 초기 정착의 어려움을 딛고 한 계단, 한 계단 자신이 바라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