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할수 있는지, 하고 싶은지, 잘하는지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4.08.28
older_job_305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열린 '찾아가는 취업상담실'을 찾은 어르신들이 종로구청, 고용노동부 관계자와 취업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를 처음 만나는 남쪽 사람들은 대개 잠깐 놀랐다가 나중에 더 놀랍니다.

처음엔 낯선 북한 말투를 듣고 당황했다가 나중엔 사는 모습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어 더 놀란다고들 말하는데요.

탈북자들의 고민도 마찬가집니다.

탈북자라서 시작한 고민, 결국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고민과 맞닿아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과연 난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함께 고민해보시죠.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생계비로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생계비에만 의존하다보면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새로운 사회에서 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따라오는 성취감을 느낄 시간조차 없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게 안타깝더라고요.

마순희: 저 역시 동감입니다. 어르신들이라고 하지만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이나 신체여건은 되는 분들도 많잖아요? 사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시다보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건강에도 역시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도 가능한 일을 하시든가 여가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의 종합상담센터가 24시간 근무하다보니 오전 교대일 때에는 집에서 새벽 5시 40분경이면 버스 타러 나가야 되거든요. 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승객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십니다. 요즘 대한민국에도 고령화시대에 걸맞은 어르신들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고 있잖아요. 아파트경비라든가 도시 미화사업부문, 즉 다시 말하면 청소하는 일이라든가 배달 서비스와 어린이집 보조교사, 그리고 학교보안관 등 직업들도 가지가지잖아요?

이예진: 네.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사실 한정적이다 보니 청소나 아파트 경비, 주차관리 같은 좀 단순하면서 경제적으로 보수가 적은 편에 속하는 업무들을 하게 되지만 집에서 쉬는 것보다 일하는 걸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마순희: 네. 탈북자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니거든요. 제가 아는 분들 가운데에도 70살이 훨씬 넘어도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파트 경비실이나 관리실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물론 저도 60대 중반으로 가고 있지만 역시 전문직으로 아직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일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시든가 여러 가지 여가시설들에서 취미생활도 하시고 스포츠센터들에서 수영이나 배드민턴, 댄스, 노래교실 등 여가활동을 하시면서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들 계십니다.

저의 상담센터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상담사의 시어머님도 70이 넘었지만 며느리보다 하루 일정이 더 빡빡하다고 이야기해서 한바탕 웃기도 한답니다. 며칠 전에 제 맏딸이 어르신들의 노래교실 공부를 마치는 기념으로 촬영한 테이프들을 하나씩 만들어서 선물로 드린다고 견본을 가져왔었습니다.

이예진: 노래교실이라고 하면 주로 주부들이 좋아하는 가요들을 직접 따라 부르며 배우는 취미활동을 말하는 거잖아요. 어머님들이 남편,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평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역할을 톡톡히 해서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걸 영상으로 녹화해서 노래교실 어머님들께 하나씩 드렸다는 거군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어르신들이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열심히 노래하시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고향에 계시는 저의 오빠 언니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계시는지 그 생각으로 한동안 가슴이 먹먹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라면 누구나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고 계신 탈북 어르신들을 보면 그런 생각 들 것 같아요. 이렇게 일단 어르신들이 치열하게 취업을 하려고 하시진 않죠. 어르신들은 노후생활을 어떻게 하면 여유롭게, 혹은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반면에 탈북 대학생들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라는 문제인 걸 잘 아는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죠. 남한이나 북한을 떠나서 역시 나라의 미래는 후대들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한국에 온 탈북청년들 역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배움과 진로, 직업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 뿐 아니라 먼저 온 통일세대라고 자부하면서 자신들이 어떤 자세로 배우고 어떻게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할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성공적으로 정착해 나가는 자랑스러운 모습들은 TV와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요.

물론 대안학교나 정규학교나 어떤 대학에서 배우는 것도 쉽지는 않죠. 그동안 학업의 공백기를 메우고 한국에서 당당한 전문가로 준비하고 있는 배움 과정인데 어떻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대한민국의 교육문화, 또래관계에도 익숙해 나가야 하니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일하다 보면 배우던 때가 가장 쉬웠다고들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 탈북청년들의 취업이나 성공적인 정착이 어렵다는 얘기겠죠.

이예진: 사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은 남한에서도 한 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사회생활이라는 게 녹록치 않다는 거죠.

마순희: 네. 탈북자들은 사실 나라에서 교육비를 대주고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대학에 가는 것은 학력인정만 되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학업공백기를 메우고 끝까지 졸업하고 취업으로 가는가가 더 중요한 거지요.

저의 주변에도 정말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라던가 한국외대, 서강대 등 유명대학들을 졸업하고 각 분야에서 취직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들이 많거든요.

제 나이또래 친구들이 모이면 아시는 것처럼 제 자랑보다 자식자랑을 더 많이 하게 되잖아요. ‘우리 딸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는데 매달 용돈을 100만원씩 받는다’고 자랑하시는 분이 있어요. 딸이 얼마나 벌기에 용돈을 그렇게나 많이 받느냐고 했더니 ‘그 애 공부시키느라 내가 얼마나 공들였는데 그만한 것은 약과’라면서 은근히 딸 자랑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딸이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는 분,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아들 자랑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예진: 다 탈북자분들이시라는 거죠?

마순희: 그렇죠. 정말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혹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취직을 택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노력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포기를 하고 기술대학 같은데서 전문기술을 배워서 취직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아직도 취업을 위해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분들도 많기는 합니다.

모든 것이 국가의 지시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렵기는 하지만 또한 선택에 따른 책임도 본인의 몫이고 또 시행착오가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의 남한살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명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뇌하게 되는 문제기도 한데요. 탈북자들이 잘 선택하기 위한 방법, 찾아가는 종합상담소에서도 계속 고심해보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남북하나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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