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혼자 사는 탈북자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4.09.04
fullmoon_lone_305 전북 무주우체국 우정사회봉사단은 추석을 앞둔 4일 군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독거 어르신을 찾아 생필품 등을 전달하고 훈훈한 명절을 보내도록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추석을 기다립니다.

휴식할 수 있는 날이 5일이나 되고, 모처럼 가족친지들과 만나고, 풍성한 명절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명절만 되면 막히는 도로에서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가족에게 나눠줄 선물 등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고, 주부들은 명절 음식 장만에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를 하느라 몸살이 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혼자 사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며칠 후면 민족의 명절이라고 하는 추석입니다. 한국에선 한 달 전부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 고향에 가는 승용차들로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열차표를 미리 사놓는 예매가 매진됐고요. 추석 2, 3주 전부터는 벌초하느라, 가족친지에게 보낼 선물 준비하느라 분주해집니다. 지금은 추석 음식 장만으로 바쁘고요. 선생님 댁은 어떠신가요?

마순희: 추석이라고 해도 고향에 갈 수 없으니 추석은 그 어느 명절보다도 고향생각이 더 나는 명절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산소에는 못 가지만 가족이 모두 모여서 며칠씩 명절을 보내야 하기에 명절준비도 나름대로 한답니다. 북한처럼 쌀이나 과일, 고기, 생선 등이 없는 게 아니다보니 당연히 푸짐한 명절을 보냅니다. 여느 집들처럼 송편도 빚고 전도 부치고, 추석에 고향에 못 가는 것을 빼고는 여느 집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예진: 선생님처럼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에겐 풍성한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만, 혼자서 남한에 정착해 사는 탈북자들에겐 명절이 가장 힘든 때라고 하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희들처럼 가족이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분들은 나름대로 풍성한 명절을 보냅니다만 혼자서 오셨거나 하시는 분들은 명절이 제일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특히 추석명절은 더구나 고향 생각이 간절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방에 살다가 몇 달 전에 서울에 올라온 한 여성이 전화가 왔더라고요. 지방에 있을 때에는 탈북자들이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많이 관심을 가져주고 행사 때마다 챙겨주었는데 서울에 올라오니 관심 갖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며칠 안 있으면 추석이라 합동차례라도 지내고 싶은데 어디서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와있는 곳이 어느 구인지 물어보았더니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더라고요. 그래서 각 지역마다 전문상담사들이 있지만 지방에서 오다보니 미처 몰라서 못 챙긴 것 같다고 설명해드리고 지역의 하나센터에서 하는 추석행사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좋은 벗들’이라는 단체가 주관하는 통일체육축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계속 있으려면 우리 지역의 전문상담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겠다고, 그래야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다고 하나센터와 전문상담사 연락처를 알려드렸습니다.

이예진: 지역적으로 탈북자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죠.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더라도, 또 혼자 살지 않더라도 명절이 되면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생각이 더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자신이 자라온 정든 고향 생각에 눈물짓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그걸 향수에 젖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우울한 마음이 커지면 향수병에 걸린다고도 하고요.

마순희: 그런 것 같습니다. 가족이 함께 온 저도 추석 보름달만 보아도 고향생각에 눈물이 나는데 하물며 혼자 오신 분들인 경우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남성들인 경우에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신다는 분들도 있거든요. 저의 절친한 언니가 있는데 두 아들과 딸을 두고 혼자서 한국에 왔거든요. 중국에 와서 돈을 벌어가지고 간다는 것이 일이 여의치 않았고 어찌하다보니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식들 생각에 항상 밥을 먹다가도 목이 메고 좋은 옷을 보아도 자식들 생각부터 먼저 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셨습니다. 60대 중반이지만 집에서 일을 하지 않고 놀면 뭐하냐면서 병원에서 간병인을 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번 돈을 훗날 자식들 만나면 쓴다고 차곡차곡 저금해 놓는답니다.

저의 집에도 혼자 사는 분들이 명절이면 놀러오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명절이 아니더라도 고향생각이 나면 ‘엄마, 밥 먹으려 가두 돼?’ 하면서 불시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예진: 선생님을 엄마라고 하는군요?

마순희: 네. 그냥 밥 한 끼 먹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라 없는 게 없이 살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워서 찾아 갔었다고 후에 전화가 오는데 정말 듣는 사람도 마음이 짠하답니다.

이예진: 그런 향수병이나 외로움 등을 이기려고 한국에 정착하자마자 성급하게 결혼을 선택하는 탈북 여성들이 많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순희: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북한을 떠난 후 중국이나 혹은 한국에 정착하면서 그동안 너무 외롭고 힘들었잖아요. 그러다보니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서로 의지해서 살면서 집안 살림이나 하면서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지원재단에서 한 주일에 두 번씩 무료로 법률상담을 해 드리고 있는데 그 중 이혼이나 그에 따른 자녀양육문제, 재산 문제 등 사연을 가지고 법률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바랄만한 일이지만 성급하게 잘 알아도 보지 않고 혼자서 앞날을 결정해 버리다보니 그런 부작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아니다싶어도 똑 소리 나게 거절을 못 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예진: 저희가 이 시간에 결혼이든, 직업이든, 주택 반납이든 성급하지 않게 찬찬히 생각해보고 올바른 선택을 하시라,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요. 한국에서 추석과 같은 온 가족이 풍성한 음식을 먹고 즐기는 때를 혼자 보내신 분들은 자신의 미래보다는 외롭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생길 것 같아요.

마순희: 물론 흔히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결혼을 하자면 물론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중매라고 해야 하나요. 한국식으로는 소개팅 같은 것들도 많이 하잖아요. 한국출신 분들 경우에는 부모형제는 물론 지인들과 학교의 동창, 선후배 등 알고지내는 분들이 많아서 많이 만나고 선택할 기회가 많지만 저희 탈북자들인 경우에는 선택의 폭이 별로 크지 않거든요. 그래서 누가 맞선을 주선한다든가 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거부감이 없으면 선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나온 지 여섯 달도 안 된 여성이 전화가 왔었는데요. 주택공급에 대해 문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원 나오면서 주택을 받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강원도에 받았는데 지금 서울에 와서 살고 있어서 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들어 보았더니 하나원 나온 다음 날이었는데 서울에서 남자가 찾아왔더랍니다. 같은 기수로 생활하던 언니가 서울에 한 고향 오빠가 살고 있는데 혼자라고 하면서 아무래도 한국에 살려면 혼자서 살기보다 그래도 함께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소개해 준다고 했었다고 합니다.

이예진: 소개팅 식으로 만나 즉석에서 정했군요.

마순희: 덩그런 집에 혼자 나와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차를 몰고 와서 데리려 왔다고 하니 그냥 다른 생각할 새도 없이, 그리고 별로라는 생각도 들지 않은 남자의 친절에 감동이 되어서 함께 짐을 싣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보자마자 같이 사셨다는 거네요.

마순희: 네. 결국 몇 개월 살고 있는 동안에 어려운 일이 많았고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어서 집을 받으면 따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기는 하지만 아직 2년이 안 되었기에 강원도에 받은 주택을 반납할 수도 없고 새로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정말 차를 가지고 강원도까지 찾아 온 같은 탈북자인 사람을 어떻게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어서 함께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예진: 혼자보다 낫다는 생각이 앞서서 처음 만난 사람과 함께 사는 걸 선택하는 건 참 위험한 일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혼자라는 게 두렵다는 얘기도 되겠죠. 다음 주 이 시간에 혼자 사는 탈북자들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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