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장례식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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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안타깝게 숨진 한 탈북자의 빈소 모습.
사진은 안타깝게 숨진 한 탈북자의 빈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도 장례를 집에서 치렀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장례용품 준비부터 시신관리, 장례식 주관 등 장례의 모든 절차를 장례지도사가 진행해주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이 본 한국의 장례식, 그리고 탈북자들의 장례식은 어떤지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남과 북의 차례 지내는 모습이 비슷한 듯 하면서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탈북자들이 보는 남한의 장례문화는 어떨지도 궁금해지네요.

마순희: 장례 문화도 남북한이 서로 다른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망하면 으레 묘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한국에 와서 화장 문화를 접하고 정말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뜩이나 넓지도 않은 땅에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가 다 차지하면 산 사람이 살 땅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잖아요? 추모원에도 가보았는데 얼마나 설비가 잘 되어 있는지 정말 놀라웠습니다. 우리 탈북자들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지면서 저도 여러 번 장례식에 참여했는데요. 화장터와 추모원 등 서비스가 참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예진: 화장을 해서 단지에 넣고 추억거리와 함께 보관이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매장하는 것보다 공간이 많이 줄어들죠. 생각해보니까 한국에 나온 지 20년이 넘는 탈북자 분들 중에는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이번 추석 때 절하러 가는 일도 있겠어요.

마순희: 그렇지요. 탈북자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정착한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탈북자 사회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 입국할 때 50-60대이던 분들이 이제는 거의 70-80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도 어르신들의 사망소식이 자주 들려오기도 하고 직접 장례식장에 가보기도 합니다. 함께 생활하시면서 늘 고향을 그리던 분들이라 더 애틋하고 끝내 고향에 가보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는 누구나 거스를 수도 없는 일이기에 받아들여야겠지요.

며칠 전 강원도의 횡성에서 고사리 농원을 하시는 분을 인터뷰하러 갔었습니다.

12000여 평의 산에 고사리를 심어서 고사리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고사리 농원이었는데요. 가서 보니까 그곳에 정착한지 7년차인데 이제는 그곳에 완전한 정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도 돌멩이가 길바닥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집어서 길옆에 주어다 놓았고 나뭇가지가 휘어진 것이라도 있으면 꼭 가지를 쳐주고야 지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주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네요. 동네의 대소사에도 빠지지 않는다면서‘잔칫집엔 못 가도 상갓집엔 반드시 갑니다’라고 하던 그 대표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기쁠 때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슬플 때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하나가 되는데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함께 놀러 다니던 가까운 분들 중에도 벌써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이 여러 명 됩니다.

이예진: 선생님 주변에도 꽤 계시군요. 이제는 그만큼 한국에 오래 사신 탈북자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네요.

마순희: 네, 그런 사례들이 여러 건 됩니다. 몇 개월 전 우리 아파트 9층에 사시는 분이 돌아가셨는데요. 그 분은 사리원시에서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시던 분이었는데 딸과 사위, 그리고 부인이랑 함께 오신지 15년이 넘었습니다. 폐암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니 사위 분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랍니다. 딸이 우리 맏딸과 친구지간이라 그 소식을 듣고 저한테 연락이 왔었기에 저도 놀랐습니다. 며칠 전에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함께 잘 어울려 다니시던 분들에게 연락을 하고 모두 함께 장례식장으로 갔답니다. 북한에서는 장례를 치르는 것이 거의 집에 안치하고 3일장으로 나가지만 한국에서는 병원마다 장례식장이 다 있어서 여러 가지로 편하답니다. 그 중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병원들도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예진: 한국에선 복잡한 장례절차를 알아서 다 진행해주는 상조 회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요. 대부분 경황이 없는 상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죠.

마순희: 네. 그런 면에서 탈북민들의 장례식에 가보면 조문객이 많지 않아서 더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실 장례식장이 한 층에도 수십 개의 칸들이 있는데 문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들을 보면 돌아가신 분이나 아니면 상주들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예진: 조의를 표하기 위해 보내는 조화에 써 있는 글귀를 보면 어떤 일을 했던 분인지 그런 걸 보면 알 수 있죠. 또 조화가 많이 들어오는 집이 있이 있는가 하면 거의 없는 집도 있잖아요.

마순희: 네. 그래서 친인척도 지인도 많지 않은 탈북민들에게는 더 어려운 게 장례 치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잔칫집엔 못 가도 상갓집엔 가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북한출신 화가님이 돌아가셔서 직접 장례식을 겪어 보기도 했고 민간단체에서 근무하다보면 대표님이랑 함께 장례식장에도 자주 가군 합니다.

한국의 장례 문화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워낙 갑자기 일을 당하면 당황해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상조회사의 보험에 가입하면 여러 가지 모든 서비스들을 알아서 다 처리해 주어서 한결 수월하게 의식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에서도 여러 가지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과 함께 탈북민들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사망위로금을 지급합니다. 지원대상은 당해 연도에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사망한 북한이탈주민에게 1인 30만원, 260달러의 사망위로금을 지급합니다. 물론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으로 확인이 되는 유가족에게 통장으로 송금해드립니다. 그리고 무연고 북한이탈주민인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집행 외의 사항을 공문협조에 따라 통일부의 확인을 거친 후에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했던 새조위라는 통일부산하의 민간단체에서도 사망한 분들에게 조화를 보내주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각 단체나 기관, 지방자치단체별로도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네요. 탈북자들의 장례문화, 다음 시간에 계속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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