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되려 방송국 찾아가다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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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으로 지난 1998년 가족과 함께 탈북해 2001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래퍼 강춘혁(오른쪽)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북한의 실상을 담은 자작 신곡 'For The Freedom'을 선보이고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으로 지난 1998년 가족과 함께 탈북해 2001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래퍼 강춘혁(오른쪽)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북한의 실상을 담은 자작 신곡 'For The Freedom'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일단 반은 성공이라고들 말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보다야 몇 걸음 더 앞서가는 거니까요.

탈북자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하던 일을 남한에 와서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기회를 성공으로 만드는 탈북자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북한에서 하던 일을 남한에 와서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탈북자들의 고민에 대해 들어봤는데요. 하나 궁금한 건 북한에서 하던 일을 남한에서 하려고 해도 직업이름도 다르고 전문지식이나 자격증도 있어야 하다보니까 주변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사실 북한에서 하던 직업이나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남한에서 계속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남북한 경제 발전의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더 어려운 거죠. 그래도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일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원 교육시기부터 대한민국에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배우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적성검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인지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한 번 배워서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원을 나와서도 직업교육은 하나센터에서도 계속 합니다.

그리고 하나원을 나오면 35세 미만이면 정규대학에서 배울 수 있도록 대학등록금까지 국가에서 다 대주기 때문에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취업훈련을 받으려면 분야별로 학원들이 다 있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기간에는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도 다 대주고 있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는 탈북민들을 도와주는 정착도우미도, 전문 상담사들도 있어서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취업을 할 때에도 취업전문상담사들이 일자리도 알아봐 주고 동행해서 면접도 함께 가주는 등 혼자서 걱정 안 해도 된답니다.

이예진: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게 된 지인들도 작지만 따뜻한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죠. 특별히 돈으로 지원해주는 것보다 그분들이 하는 일을 격려해주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주고, 조그마한 성과라도 있으면 기뻐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공감이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죠.

이예진: 그렇죠. 말 한 마디가 큰 힘을 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북한에서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 방송이나 노래를 하는 탈북자 분들도 눈에 띄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아마 북한에서 하던 일, 하고 싶던 일 중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예술 활동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많고 또 선전대나 기동대 등에서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직장이나 농장에서 중요 기념일마다 충성의 노래모임, 문답식경연, 그리고 자체행사들에서 항상 노래와 춤을 동반하다보니 거의가 다 끼가 있는 것 같아요.

이예진: 정말 그런 분들 많더라고요.

마순희: 북한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예술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에 와선 원하는 걸 마음껏 배울 수 있으니까 새롭게 예술 쪽 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탈북인 예술단체만 해도 수없이 많은데요. 제가 지방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어딜 가도 어느 곳에나 크고 작은 예술단이나 봉사단이 있었습니다. 단원들을 보면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있고, 또 한국에 와서 노래 춤 등을 새롭게 배워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이제 만나러 갑니다’나 ‘모란봉 클럽’ 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탈북자들도 많거든요.

이예진: 맞아요. 거기 나오는 분들의 말솜씨나 노래, 춤 등 끼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보면서 느낀 건 북한에서 활약했던 분들의 끼와 재능이 남한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는 거였어요.

마순희: 그런 부분이 있죠. 물론 배운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배우면 안 되는 것이 없잖아요? 특히 북한에서 노래와 춤, 연기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은 남한에 와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둘째딸도 지금 한국에서는 좀 잘 나가는 가수기도 해요. 북한에선 유치원 때부터 예술 활동을 다 하기는 합니다. 그러다가 학교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끼만 있어도 되는 게 아니라 재력도 안받침 돼야 하고, 부모의 직업도 상관이 된답니다. 우리 딸들 같은 경우에는 재력도, 부모의 배경도 없이 자신의 끼와 노력으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은데요. 우리 딸은 그렇게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제 스스로 선전대에 찾아갔대요. 자기는 학생소년회관 성악 화술소조를 졸업했는데 선전대에 받아주었으면 해서 왔다고요. 사실 선전대는 웬만한 배경이 없으면 상상도 못할 처지였는데 얘가 당돌하게도 선전대의 문을 두드린 거죠. 그렇게 선전대에 들어가서 노래도 하고 화술도 하면서 기량을 쌓아가다가 어느 날 덜컥 온 가족이 탈북을 했던 거죠.

이예진: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나오셨겠네요.

마순희: 네. 그런데 한국에 와서도 우리 딸의 당돌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원을 나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마침 우리 양천구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참가하여 우수상을 받아 와서 제가 깜짝 놀랐거든요. 그러더니 어느 날에는 주소만 들고 한국의 방송사인 KBS에 제 발로 찾아 갔었답니다. 아마도 북한의 도 예술극장 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그 앞에 가보니 감히 찾아 들어갈 엄두가 안 나더래요. 한 시간을 넘게 맞은편 공원에서 바라보다가 ‘아무리 멋진 곳이라고 해도 다 사람이 들어가는 곳인데 내가 들어간다고 설마 못 들어가게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들어갔답니다. 나는 탈북자인데 가수가 되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하는 철딱서니 없는 말에 모두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도 결국 노래를 들려줄 기회를 얻었고 그분들의 소개로 한국가수협회까지 찾아가게 되었더랍니다. 그 때부터 가수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지요. 가족노래자랑에 막내딸이랑 함께 나가서 3승까지 하고 왕중왕전까지 나가는가 하면 스타 골든벨, 도전 천곡,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에서 딸의 모습을 보기도 하는, 참 저는 복이 많은 엄마인 것 같아요.

이예진: 다 유명한 프로그램들인데, 북한에서 선전대에 당당하게 갔던 것처럼 방송국에도 당당하게 가셨군요. 물론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그런 기회가 주어진 거겠죠. 또 실력만큼이나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피타는 노력도, 늘 성공과 함께 하는 단어들인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걸 직업으로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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