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한인가(1) 남한이 잘살아서

서울-윤하정 xallsl@rfa.org
2018.01.18
Russian_Tourist-620 전국적으로 영하의 기온을 보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러시아 관광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오늘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김필주 :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북도 새별에서 태어나서 17년을 살고,

대한민국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탈북청년 김필주입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향 분들에게 남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예은입니다.

대학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고요.

남북통일에 관심이 많고 북한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브게니 소코브 : 안녕하세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예브게니 소코브라고 합니다.

남한에 온 지 2년 정도 됐고, 전문 통역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께 러시아와 남한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재밌게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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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안녕하세요. 우리가 지난주까지 겨울 얘기를 했는데

동장군이 심술 내듯이 요즘 더 춥습니다.

예브게니 씨는 아직도 안 추운가요?

 

예브게니 : 좀 추워서 러시아 같은 느낌이 들어요(웃음).

 

진행자 : 저희 방송을 꾸준히 듣는 청취자라면 참여하는 청년들이 바뀌고

러시아에서, 함경북도 새별에서 왔으니까,

우리도 외국인 만나면 물어보잖아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는지.

두 분은 왜 남한에 왔을까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예브게니 : 일단 제가 태어난 곳이 한반도, 중국,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라서 어렸을 때부터 동서양 문화를 함께 접했어요.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된 뒤에는 동양 언어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남한인가, 왜 한국어인지 물어보신다면

제 생각에는 한반도가 동양 문화의 중심이자 요람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와 음식도 마음에 들어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남한이 정말 잘사는 나라예요, 경제적으로.

남한과 러시아 사이에 무비자 협정이 발효되면서

러시아에서 불법 노동자들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이 못사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은 : 남한이 잘사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남한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잘 모르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남한을 좋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또 계속 남한 얘기만 하니까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까운 북한을 더 쉽게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남한으로 왔는지. 언어도 같잖아요.

 

예브게니 : 소련 시대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는 민간 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관계가 있지만 민간 교류가 없어서

러시아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소련 시대 때도 잘 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께 여쭤봤는데, 그냥 가난한 나라라고만 하셨어요.

 

필주 : 그런데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에 많이 들어가 있잖아요, 지금도.

 

예브게니 : (북한 노동자들은) 거의 무리로 다니고

만약에 러시아 사람과 대화하면 걸릴 수 있으니까 민간 교류가 아예 이뤄지지 않습니다.

 

필주 : 북한에서는 러시아에 일하러 가는 사람을 ‘재쏘’라고 해서 많이 부러워했거든요.

그래서 러시아에 대한 느낌은 땅이 크고 인구가 많고 잘사는 줄 알았어요.

왜냐면 부모님 세대가 러시아에 가서 돈을 벌어 오니까.

 

예은 : 북한보다야 잘 살겠죠.

 

진행자 : 예브게니 씨는 러시아에 살지만 동양에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 보면 중국, 일본, 한국 중에 선택을 한 거잖아요.

한국 문화는 어떻게 접했어요?

 

예브게니 :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해서 한국 문화를 알게 됐어요.

 

진행자 : 그럼 일본 문화를 더...

 

예브게니 : 일본 문화도 좋아하는데, 지금 일본과 러시아 관계가 안 좋아서.

 

진행자 : 그럼 ‘내가 남한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예브게니 : 네, 지금 남한과 러시아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전망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자 : 어쨌든 우리가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거나 공부를 하러 갈 때면

‘이 나라는 이래서 가고 싶다’라는 게 있거든요.

그게 게임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예브게니 : 남한이 잘사니까요.

 

진행자 : 남한이 잘산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예브게니 : 일반 러시아 사람들에게 남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최첨단 기술, 휴대전화, 옷이나 가전제품 등이 최상의 품질이라고 해요.

 

필주 : 그건 북한도 인정합니다.

 

예브게니 :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드라마나 케이팝이라는 음악이 있으니까.

러시아에도 한류가 많이 퍼져 있습니다.

 

진행자 : 인터넷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접할 수 있죠.

하긴 러시아에도 남한 대기업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러시아 인재들이 그 대기업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와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하기도 하더라고요.

 

예은 : 그리고 특히 러시아 여자들한테는 한국 화장품이 그렇게 인기가 많대요.

한국 화장품을 부탁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걸 보면서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과거에 부모님 세대들은 일본 가전제품이 좋다고 많이 쓰셨거든요.

그리고 서양권에서는 일본 게임을 접하면서,

왜냐면 게임 화면에 일본 풍경, 사찰 등이 나오니까

일본에 가보고 싶다는 환상을 가졌다고 하는데 러시아 사람들도 비슷한 현상이군요.

 

예브게니 : 똑같습니다(웃음).

 

진행자 : 간단한 게 러시아어로 자기소개 해볼래요?

러시아어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필주 : 저도요. 왜냐면 제가 북한에 있을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외국어가 노어에서 영어로 바뀌는 과도기였거든요.

저희 엄마나 형님 세대는 노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저 때부터 영어로 바뀌어서 노어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예브게니 : 자기소개(러시아어)

 

진행자 : 아마 청취자 여러분 가운데는 익숙하거나 반가운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필주 씨 부모님 세대는 러시아어를 배웠으니까.

 

필주 : 그럴 것 같아요.

 

예브게니 : 러시아 영화와 음악도 북한에서 인기 있었을 거예요.

 

필주 : ‘왈렌끼’가 러시아어 맞아요? 군인들이 신는 부츠 있잖아요.

 

예브게니 : 맞아요.

 

필주 : 거봐요. ‘왈렌끼’라는 단어가 나오는 러시아 노래를 좋아했거든요.

 

예은 : 남한에서 일어나 영어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나 봐요.

 

진행자 : 예를 들어 영어를 못해도 미국 사람들이 영어로 자기소개하면

몇 단어는 알아듣거든요.

그런데 예브게니 씨 말은 한 단어도 모르겠어요.

러시아어라는 말 자체가 남한에서는 낯선 거예요.

 

예브게니 : 러시아어는 중국어만큼 낯선 것 같아요.

 

진행자 : 아니에요, 중국어는 몇 개 알아요.

 

예은 : 중국은 워낙 가까워서 언어도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진행자 : 예브게니 씨가 말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한에서는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발레나 음악, 문학 정도만 알아요.

예은 씨가 러시아어를 전공했다는 점을 잠시 접어두고

왜 남한에서는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를까요?

북한에서는 오히려 좀 더 익숙한 거잖아요, 특히 부모님 세대들은.

 

예은 : 글쎄요, 문화적인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남한과 러시아가 수교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까 홍보가 잘 안 됐고,

수교를 맺었던 1991년 이전에는

북한과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 않나.

남한은 미국이나 서양 문화에 익숙해져서 러시아 문화에 매력을 못 느꼈을 수도 있고요.

 

예브게니 : 대립적인 면이 있잖아요. 미국과 러시아 문화가.

 

예은 : 또 소련 문화가 체제 선전이 포함된 게 많아서

대중적인 문화는 접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진행자 : 지금 남한에서 1월에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이라는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미술품들이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고,

<안나 카레니나>라는 뮤지컬, 음악극도 공연되고 있어요.

러시아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들은 많이 들어오는데

일반적인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아요.

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체제가 바뀐 게 20년이 넘었는데,

지금 예은 씨랑 예브게니 씨가 3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예브게니 씨는 남한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고, 와서 직접 공부까지 하는데

남한 사람들은 러시아에 대해 왜 잘 모를까.

참, 음악 공부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에 유학 많이 가요.

 

예은 : 네. 음악, 발레 이런 예술 분야는 많이 가는데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러시아가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인 줄 알아요.

그러니까 러시아는 북한이랑 친한 나라고, 체제적으로 멀고,

거리적으로도 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필주 : 일단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형, 중국이 그 동생 느낌이거든요.

체제의 영향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6.25 한국전쟁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남한에 와서 제가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황당했던 게

6.25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해서 시작됐다는 거였거든요.

북한에서는 반대로 알고 있었는데.

청취자들도 지금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생각하실 거예요.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이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공격했다고 배웠어요.

그래서 저희는 미국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고.

그 상황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도와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남한도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서는...

 

예은 : 냉전의 폐해죠.

 

진행자 : 그 냉전이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거든요.

아마 남한에서 북한을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다고 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그 이유가 ‘안전할까?’ 생각되거든요.

(과거에) 일본 여행에 비해 중국 여행은 많이 안 갔어요.

거리적으로는 비슷한데 왜 사람들이 중국은 잘 안 갔을까.

그게 체제의 영향인 것 같아요.

일본은 안전할 것 같은데, 중국은 왠지 위험할 것 같은. 갔다가 잡히는 거 아닌가.

 

예브게니 : 러시아에 대해서도 똑같은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맞아요, 제가 4~5년 전에 혼자 러시아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세계적인 관광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였는데,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위험하다, 동양 여자 혼자 가면 절대 안 된다고.

 

예은 : 그리고 사람들이 주로 관광을 가니까 편의시설이 잘 돼야 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바뀐 곳들은 그런 관광산업이 좀 부진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관광객들이 불편하고, 행정적인 절차도 까다롭고.

 

진행자 : 저는 러시아 여행에서 느낀 점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깨끗한데

남한에서는 서비스라고 하죠, 북한에서는 봉사.

식당이나 찻집을 가면 친절한데

러시아의 경우 친절하지는 않더라고요, 불친절한 것도 아니지만.

 

예브게니 : 그것도 사회주의 국가의 잔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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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친구가 생각하는 남한과,

남한 친구가 생각하는 러시아의 모습이 사뭇 다르죠?

청취자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이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청춘 만세>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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