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의 기념일(1)-화이트데이?

서울-윤하정 xallsl@rfa.org
2016.03.17
white_day_b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아 그룹 전체 여직원에게 사탕을 선물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전해드리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자, 반가운 얼굴도 있고, 새로운 얼굴도 있는데요. 함께 얘기를 나눌 청년들 먼저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세요, 클레이튼입니다. 미국에서 왔고 서른한 살입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러시아에 갔다 여러분 뵈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취업준비생이고, 스물일곱 살입니다.

서형 : 안녕하세요, 스물두 살 김서형이고요. 평안남도에서 왔습니다.

클레이튼은 남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요. 남한에서 태어난 예은 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형 씨는 3년 전에 탈북해서 지금은 남한 대학생이에요. 자, 세 명의 청년들과 함께 <청춘만세> 시작합니다.

진행자 : 회사 오는 길에 명동을 지나 왔는데 북한 분들도 명동은 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의 아주 번화한 거리죠. 그런데 이 명동 거리에 사탕이 가득한 거예요. 그 이유는 예은 씨가 설명해주겠어요?

예은 : 곧 있으면 3월 14일 ‘화이트데이’거든요. 화이트데이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에요. 보통은 사탕을 많이 주거든요. 그래서 지금 명동에서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을 거예요.

진행자 : 그러니까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고 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의미로 초콜릿을 주고,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고 해서 반대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거죠. 우리 방송은 화이트데이 이후에 북한에 전달되겠지만 화이트데이에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게 될까요?

클레이튼 :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화이트데이에 저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그냥 잘 겁니다(웃음).

진행자 : 미국에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없어요?

클레이튼 : 미국에서 밸런타인데이 아주 크게 챙기는데 화이트데이는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무척 놀랐습니다. 그때 한국인 여자 친구 있었는데, 밸런타인데이에 제가 초콜릿이랑 꽃을 줬더니 왜 주느냐고 화이트데이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그럼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서로 선물하는 거예요?

클레이튼 : 네, 밸런타인데이만 있습니다.

예은 :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러시아에 있을 때 밸런타인데이만 기념하고 화이트데이는 없었거든요.

진행자 : 화이트데이는 어디서 나온 거죠(웃음)?

예은 : 북한에는 그런 기념일이 있나요?

서형 : 저희는 그렇게 특별한 날은 따로 없고 국가적으로 청년절이라는 명절이 따로 있어요. 8월에 청년절이 있어서 친구들과 노는 날? 그런데 따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진행자 : 이 무렵이면 대학가에도 사탕이나 초콜릿을 많이 팔거든요. 그런 거 보면 어때요?

서형 : 저는 아직 연애를 못하고 있어서 그런 날이 되면 혼자니까 많이 쓸쓸하죠. 받고 싶어요.

진행자 : 주변 친구들은 사기도 하고 받기도 하나요?

서형 : 네, 화이트데이라고 꽃 들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집에서 만들더라고요.

진행자 : 정말 직접 만드는 사람도 많고, 그러려고 배우러 가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예은 : 네, 주변 동 주민센터, 마트나 백화점에서 연인들을 위해 사탕, 케이크, 초콜릿 만들기 행사를 많이 해요. 자리가 없어서 등록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여러분이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에 받았던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거 있을까요? 왜냐면 북한에는 그런 날이 없으니까 ‘그냥 사탕 몇 개 주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클레이튼은 어떤 선물 했어요?

클레이튼 : 초콜릿 한 상자랑 장미꽃이요.

진행자 : 저도 사탕 바구니, 꽃다발 받은 적 있는데.

예은 : 사탕으로 된 꽃다발을 어머니가 받으신 걸 봤어요, 아버지께(웃음). 그런데 저는 아직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해서 지나가다 그런 걸 받은 여자를 보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형 : 제가 놀랐던 건 그냥 학교 동기인 남자였는데, 예쁜 사탕을 모든 여자들한테 주는 거예요. 이걸 받아도 되나? 왜 이 남자는 이걸 모두에게 주지?

진행자 : 왜 준다고 하던가요?

서형 : 그냥 화이트데이라서 준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약간 의미 있는, 마음 있는 사람한테 주는 게 아닌가.

진행자 : 왜냐면 못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웃음).

클레이튼 : 아니면 바람둥이일 수도 있어요. 100명에게 사탕 주면 한두 명 꼬드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웃음).

예은 : 그런데 기념일이 고백의 기회가 되기도 하거든요. 보통은 연인들만 주고받는데, 예전에 중고등학교 때는 사물함이나 책상 서랍에 좋아하는 사람이 몰래 놓고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그 기념일을 정말 기다렸어요. 2월 14일이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잖아요. 내가 줬으면 그 사람이 확인을 하고 화이트데이에 나한테 선물을 하는지 여부로 마음을 확인하기도 해요.

진행자 : 연인들에게는 재미지만, 예은 씨가 말한 것처럼 아직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고백하는 건데 북한에서는 이런 날도 없으면 어떤 식으로 고백하나요?

서형 :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편지를 많이 써요. 제가 연애할 때 30장 정도의 편지를 받아봤어요. 편지만의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쉽지 않고, 글 한 자 한 자에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기지 않았을까.

클레이튼 : 한 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북한에서는 못 살겠다(웃음).

서형 : 이유가 있는 게 북한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한 게 최근이라 예전에는 편지로만. 대부분 남자가 여자한테 고백하는데 그 편지도 친구 통해서 전달해요. 여자도 마음에 들어 하면 그 가운데 있는 친구가 시간과 장소를 알려줘서 서로 만나는 거죠.

클레이튼 :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중학교 때 밸런타인데이에 제가 쓴 편지를 친구더러 어떤 여학생한테 전해달라고 했거든요.

예은 : 예전에 남한에서도 편지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요즘은 직접 만나서 사랑 고백을 하거나 이벤트라고 특별한 걸 마련해서, 왜냐면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기 때문에 남자가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고백하는 거죠. 또 진실게임이라는 게 있어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서 여러 가지를 묻는 거예요. 그런데 솔직하게 대답해야만 해요. 대답을 못하면 벌칙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너 여기에서 좋아하는 사람 있어?’라고 물어봤을 때 이 사람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은연중에 마음을 확인하는 거죠.

진행자 :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특정일인 것이고 그날만 고백하는 건 아닙니다. 고백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클레이튼은 어떻게 고백했어요?

클레이튼 : 사실 미국에서는 연애 한 번 했는데, 제가 고백한 게 아니라 그 여자 분이 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소문이 들려서(웃음).

진행자 : 그럼 어떻게 사귀게 됐어요?

클레이튼 : 그냥 자주 만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만날수록 마음이 잘 통해서.

예은 : 그럼 미국에서는 ‘사귀자!’라고 말을 하나요? 보통 한국에서는 만남을 시작할 때 ‘우리 사귀는 거야!’라고 말하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진행자 : 요즘 그런다면서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예은 : 정말요? 저는 그냥 데이트만 하면 이게 남녀가 연인으로 만나는 것인지 친구로 만나는 것인지 불분명할 때가 있더라고요.

진행자 : 그래서 요즘 ‘썸탄다’라는 말이 나왔잖아요. 친구인지 연인인지 좀 애매한 사이.

클레이튼 : 미국 같은 경우는 대부분 썸타는 거죠. 처음 만날 때는 그냥 편하게 부담 없이 만나요.

진행자 :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썸탄다’라는 말이 있는데 만나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는데 이 사람과 내가 지금 사귀는 건지 그냥 친구인지 애매하니까 그래서 ‘우리 사귀는 거다, 오늘부터 1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예은 : 네, 정확하게 말을 하는 편이에요.

진행자 : 북한에서는 이걸 어떻게 확인하나요? 북한에 ‘썸탄다’라는 말은 없지만 비슷한 상황은 있지 않을까요? 어제까지 잘 만났는데 이 남자가 오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거나(웃음).

서형 : 저도 연애할 때 썸 기간이 6개월 정도 있었어요. 썸이라고 단어를 내놓으면 서로 의식하게 되는데 북한에는 그런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이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느끼는 거죠. 계속 생각하고 만나고, 따로 문화생활은 할 수 없지만 어디를 갈 때 동행도 하고. 그러다 다 확인이 된 것 같으면 얘기를 하죠. 사귀자는 말보다는 좋아한다고.

진행자 : 남한에 ‘썸’이라는 말이 나온 지 3~4년 됐나요? 그 전에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최근에 애매한 관계들을 지칭하는 말이 생긴 건데 북한에도 그런 애매한 관계는 있는 거예요, 특정 단어가 없을 뿐이지.

서형 : 네, 문화상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 단어는 없지만 썸 관계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웃음).

진행자 : 썸이라는 말이 영어잖아요.

클레이튼 :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하지... 제가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 모릅니다(웃음).

진행자 : 남한에서 썸 탄 적은 있어요? 클레이튼 : 솔직히 제가 작년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사람 있었는데 무척 고민했습니다. 만나서 재밌게 얘기는 하지만 그분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몰라서 밸런타인데이에 뭔가 선물하려고 했는데 결국 용기가 없어서.

진행자 : 아니, 덩치는 산만 한 친구가 용기가 없어서(웃음). 그래서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거잖아요, 용기를 내라고!

클레이튼 : 저 소심한 A형이라서... 다른 얘기 합시다, 제발(웃음). 아직도 그 사람이랑 친구라서.

진행자 : 아직도 썸타고 있는 거네요(웃음)! 서형 씨는 이런 얘기 들으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요?

서형 : 저는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상업적이다, 돈 벌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도 청년 문화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사탕이 비싸다고 해서 내 생활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고. 남녀가 만나서 즐기는 데 사탕을 주는 건 밝고 순수한 마음도 담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데 못 받으면(웃음).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됐는데 내가 사탕을 줄 사람, 받을 사람이 없게 되면 거리에 나가고 싶지가 않아요. 지하철 타는 것도 불편해요.

예은 : 요즘은 초콜릿이나 사탕뿐만 아니라 보석이나 옷 등 연인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저도 받고 싶고 주고 싶기도 한데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 아픈 거죠.

진행자 : 클레이튼은 6년째 남한에서 생활하는 거잖아요. 여자 친구가 없으니까 미국에서와 달리 이런 날 거리 돌아다니기가 싫어요?

클레이튼 : 네, 진심으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도 홍대나 강남처럼 연인들 많이 다니는 곳은 일부러 안 갔습니다. 계속 집에만 있었습니다(웃음).

예은 : 저도 서형 씨가 말한 것처럼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까지는 좋거든요. 그런데 남한에는 매달 14일마다 기념일이 있어요.

클레이튼 : 기념일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웃음)?

오늘 들은 새로운 단어들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실 텐데 또 무슨 기념일이 그렇게나 많은 걸까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청춘만세> 저는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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