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사랑한다 말하세요? (2)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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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서울 남산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가운데)이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하트를 만들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7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부인한테 사랑한단 말 자주 해주세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문성휘 : 114 같은 전화 안내 서비스에도 전화를 하면 맨 처음 인사가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지 않습니까?

진행자 : 소연 씨도 들어보셨어요?

박소연 : 네, 저도 들어봤습니다.

진행자 : 그 전화 응대에 대해서 남쪽에선 너무 간지럽다는 비판도 있었어요. 저도 좀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문성휘 : 이 기자는 진짜 구식이네요! (웃음) 애초에 그런 전화응대를 시작한다고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게 한 2년 전인가 설 직후에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저는 그게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궁금해서 한참 기다렸다가 그날 바로 전화해 봤는데 굉장히 듣기 좋았습니다.

진행자 : 젊은 여성분들이 친절한 목소리로 그렇게 응대해줘서 문 기자 뿐 아니라 다른 남성들에게도 인기 있습니다.

문성휘 : 아, 이제 알았다! 이 기자는 남자분이 전화를 응대했으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박소연 : 그럴지도 모르죠. (웃음) 사실 남한에서 말하는 사랑과 북한에서 말하는 사랑은 같은 감정이지만 많이 달라요. 북한에도 남한에서 말하는 소위 스타들이 있습니다. 북한식으로 하면 숨은 영웅들이죠. 이 사람들이 방송이나 기록 영화에 나오면 마지막엔 꼭 사랑이라는 말을 읊죠. 어버이 수령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됐겠는가, 열심히 해서 수령님의 사랑에 꼭 보답하겠다... 이렇게 끝을 맺는데 남한을 보면 다르죠. 남한의 이름난 배우들은 ‘한 일 없는 저를 너무 사랑해주시고 이렇게 환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사랑도 이렇게 다르게 말하고 표현하죠.

문성휘 : 북쪽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에선 남쪽이랑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쓰임의 용도는 다릅니다. 한국의 사랑이란 순수한 인간 사이의 교감에서 오는 감정인데 북쪽에선 모든 사랑의 가운데 당과 수령이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사랑은 수령을 거쳐서 가야하는 거죠.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의미가 인간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입니다. 어떤 때는 그게 참 씁쓸해요.

진행자 : 당에선 그렇게 얘기를 해도 북이나 남이나 우리 사랑 중 제일 큰 건 우리 부모님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식들, 문 기자님은 말로 하기 간지럽다고 하셨지만 (웃음) 같이 사는 남편, 부인에 대한 사랑... 이게 첫째죠.

문성휘 : 그렇죠. 북한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늘 말하는 게 있는데요. 당과 수령도 모르는 썩어 빠진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건 한마디로 동물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당과 수령의 정치적 생명을 받아 안고 그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값있고 보람 있는 것이다... 선전하는 걸 보면 종교에요. 수령이나 당을 하나님, 신과 같은 존재로 보는 거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종교가 있다고 해도 남녀가 연애하는 데까지 신을 개입시키진 않잖아요? 북한은 모든 사람들의 연애까지 장군님과 연결시키니까 사실 더 한 거죠.

박소연 : 북한에선 우리 청춘들의 사랑은 당과 조국을 위한 길에서 아름답게 꽃펴나야 한다...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 남녀 간의 사랑이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인간의 감정이고 교감이죠. 사랑은 느껴야하는데 북한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받야들여야 하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문성휘 : ‘도시 처녀 시집와요’ 라는 북한 영화를 보면 북한의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처녀가 농촌을 지원하는 과정에 농촌 총각한테 반해서 화려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당이 부르는 농촌으로 간다는 내용인데 결국 당의 바람이죠. 도시 처녀들, 제발 농촌 총각한데 시집을 가라... 이런 건데요. (웃음)

진행자 : 당에서 얘기하는 건 그렇지만 연애편지도 썼다고 하고 연애 시절 얘기도 해주셨는데 일반 주민들의 연애는 그런 것과는 전혀 별개로, 당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는가 싶은데요. (웃음)

문성휘 : 맞아요. 그러니까 북한이라는 사회가 참 답답한 게 정치와 현실이 완전히 별개라는 겁니다. 완전히 반대라고 보셔도 됩니다. 요즘 자본주의 국가의 큰 정치적 과제는 정치의 눈높이를 주민들의 현실 생활과 맞추는 것이잖습니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과 수령이 끌고 나가면 대중은 무조건 따라 가라는 것이죠. 사랑 이야기가 아주 대표적입니다. 당과 수령은 끌고 가지만 대중들의 현실 생활은 전혀 그렇지 않은 거죠.

진행자 : 그러나 연애는 한국 드라마랑 비슷한 거죠? (웃음)

문성휘 : 그렇죠. (웃음) 저도 연애할 때는 예쁜 처녀의 손목을 잡고 걸었어요. 저쪽에서 누가 오면 손을 놓고 슬렁슬렁 얘기하며 걸어가는 척하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잡고... (웃음) 사실 이 방송을 듣는 북한 주민들, 좀 웃을 겁니다. 자기 생각도 나고 해서...(웃음)

진행자 :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가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재밌어 하는 이유는 현실과 비슷한데 거기에 약간 더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잖아요? 현실성이 없다면 재미없죠.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좋아하고 재밌게 본다는 건 어느 정도 드라마 내용을 공감을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특히, 그 많은 사랑 얘기들이요.

문성휘: 그렇죠. 그리고 자기들 바람이 그런 거죠. 결국 자기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 그게 없다면 누가 그걸 보겠어요. 자기들이 혐오스럽다면 굳이 보지 않죠.

박선희: 사실 북한의 영화도 사랑 얘기가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꼭 청춘 남녀나 중년기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에 나와요. 남한의 드라마는 둘이 사랑해서 가정사, 부모의 반대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끝에 둘이 맺어지기도 하고 안 맺어지기도 하죠. 그런데 북한의 예술영화는 청춘남녀가 같은 직장에서 오직 수령님과 당에 대한 충실성에서 둘이 서로 맘을 합쳐 사랑하게 됐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북한의 영화는 둘 사정에 의해 갈라진다… 그런 끝은 없습니다. 근데 사람 생활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해서 꼭 같이 사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곡절이 있으면 헤어지기도 하는 게 인간 생활인데요... 북한 사람들도 인간이니까 자기 생활하고 가까운 우리의 인간사를 그린 남한 드라마에 치우치게 되는 거예요. 아.. 진짜 재밌다. 우리 생활과 비슷하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오직 북한은 남녀 간의 사랑도 수령님과 당을 위한 그 마음 한 길에서 꽃피워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다보니 생활에서 멀어져 가는 거예요.

진행자 :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겠네요. 그런데 소연 씨는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여기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다시 시작한다면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듣고 싶은 것 같아요.

박선희 : 네, 저는 많이 듣고 싶어요. 그런데 제발 문 기자님 같은 분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렇게 (무)뚝뚝하면 그런 말 잘 안 해줄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사실 남자는 속으로 운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 하는 겁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 결혼한 사람들이 '사랑해' 이러는 게 드라마로 볼 때는 자연스러운데 진짜 생활에서 그런다고 생각해보면 좀 어색해요. 차라리 나 같으면 크림이나 분 같은 거 하나 슬쩍 사서 야야... 하고 옆구리에 놔 주겠어요.

진행자 : 그것도 좋죠.

박선희 : 그런데 그런 속담 있잖아요. '벙어리 속은 제 엄마도 모른다!’ 전 후배로서 그 말을 꼭 대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문성휘: 후배들일수록 더 한 것 같아요. 오히려 이 기자보다 더 개방적이야 (웃음) 늦게 배운 사람들이 더 한다고...

진행자 : 좀 더 빠른 세대인거죠. 원래 후세대들이 더 빠르잖아요.

박선희 : 최첨단 시대입니다! 저는 결혼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할 거예요. 그 사람이 많이 안 해줘도 나라도 하겠어요. '사랑해 자기야', '날 만나서 고맙고 앞으로 잘해줘' ... 이렇게 하면 따라 하겠죠.

문성휘: 어우, 닭살이야. 난 못할 거 같아요.

박선희: 생활을 잘 모르셔... (웃음)

이현주: 그런데 60, 70대 노부부들이 손을 꼭 잡고 서로 '사랑해' 얘기하면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문성휘: 금방 왔을 땐 젊은 아이들 손잡고 다니는 것이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는 게 참 편해 보이더라고요. 이제는 어르신들이 손을 꼭잡고 가는걸 보면 편하다가 아니라 뭔가 숭고하다, 숭엄하다 이렇게 보여요.

박선희: 전 부러워요. 그리고 마누라 ~ 사랑해...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문성휘: '당신', '여보'.. 이런 호칭들도 듣기 좋죠.

이현주: 젊은 사람들 사랑보다 더 찡한게 있더라고요. 근데 소연 씨 말도 맞아요. 이렇게 표현이 자연스러운 시대인데 그렇게 좋은 표현을 아끼고 살 필요가 없죠.

문성휘: 그니까 소연 씨는 이제부터 연애를 시작하면 이 사회에 와서 첫 연애니까 사랑한다는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요. 근데 우린 너무 늦었어... (웃음)

진행자 : 요즘 남쪽 방송에서 이런 토크쇼하면 이렇게 많이 끝내더라고요 소연 씨한테 사랑이란?

박선희: 사랑이 없는 생은 없다... 사랑은 느끼는 것,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누구에게 주고 싶은 사랑을 가까운 친구나 부모에게 표현을 해야죠. 제가 만약 이 기자님을 생각하면 건강하고 아프지 말아야 할텐데 이렇게 속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 기자님 힘내세요! 이런 말이 차라리 좋거든요. 표현해야죠. 사랑은 느끼면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현주: 문 기자한테 사랑은?

문성휘: 사랑은 내 아내, 내 자식,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 자동차, 우리 직장 사람들.. 너무 많다 사랑이... (웃음)

사랑이란 말의 시작이 어딜까요? 사량 즉 생각할 사에 헤아릴 량 자로 한자말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고 생각하다는 뜻에서 분화된 순 우리 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요즘 사랑이 너무 흔해서 사랑타령이라고 비난도 많이 하지만 그렇게 흔해졌기 때문에 또 사랑이라는 좋은 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입 밖으로 낼 수도 있습니다.

간지럽지만 남쪽에선 마지막 인사를 청취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렇게 끝내는 라디오 방송이 많습니다. 우리 방송에선 아직 좀 어색할까요?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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