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배우는 데 8 개월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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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이 출근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소연 씨는 2012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박소연) 문 기자님은 처음에 지하철 잘 타셨어요? (문성휘) 무슨 소리! 제가 얘기 안 했던가요? 일생일대의...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오실 때 뭐 타고 오셨어요?

박소연 : 지하철이요.

문성휘 : 아시잖아요? 저는 지하철 밖에 안 탑니다.

진행자 : 왜 버스는 안 타십니까?

문성휘 : 회사까지 오는데 몇 번씩 갈아타야 하니까 시끄럽기도 하고 버스는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요.

진행자 : 서울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 지하철입니다. 조사를 해봤더니 응답자 중 36%가 지하철을 시용하고 다음이 버스, 승용차나 택시 순입니다.

박소연 : 저는 처음에 와서 지하철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문 기자님은 어떠셨어요?

문성휘 : 제가 얘기 안 했나요? 내 인생의 사건 중 하나입니다. (웃음) 처음 복지관에서 돈까지 넣어서 지하철 카드를 떼어주더라고요. 근데 지하철은 보기만 했지 탈 엄두가 안 났습니다. 타고 갔다가 집을 못 찾아 올까봐... 그래서 생각한 게 우리 집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타고 딱 한 정거장만 갔다가 되돌아오자 였습니다.

진행자 : 연습하신 거네요.

문성휘 : 그렇죠. 무사히 지하철 표를 찍고 들어가서 한 정거장 가서 다시 되돌아 왔는데 들어갈 때는 잘 들어갔는데 아무리 교통 카드를 출입구에 찍어도 문은 안 열리고 소리만 나는 겁니다. 삑삑 거리기만 하고 문이 안 열려요...

진행자 : 그럼 나갈 수가 없잖아요? 뭐가 잘 못 된 거죠?

문성휘 : 사람들은 다 나가고 저는 굉장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지하철 직원이 다가오더라고요. 카드가 안 된다니까 직원에 이렇게 보더니 왜 빨간 불이 들어온 곳에 카드를 찍었냐고... (웃음) 초록색 불은 지하철에서 내려 나가는 사람, 빨간 색 불은 지하철을 타는 사람 전용이거든요. 그걸 깜박한 거죠. 그 순간에 사람이 땀이 쫙 나고 어디 쥐구멍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막 한없이 작아지는 거죠. (웃음) 지하철 카드를 처음 찍을 때 또 은행에 가서 처음 카드를 들이밀던 심정... 아, 지금도 그 긴장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웃음) 소연 씨는 이런 경험 없어요?

박소연 : 문 기자는 저에 비하면 꽃이네요. (웃음) 저도 복지관에서 내준 카드를 찍긴 했는데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나더라고요. 안내원 목소리는 못 알아듣겠고 암만 카드를 찍어도 안 되는데 눈치를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훌쩍 넘어 뛰어 들어갔어요. (웃음)

문성휘 : 대단하다...

박소연 : 제가 그때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어떻게 넘어 뛰었는지 지금 생각해보 웃겨요. 북한에서 차표 없이 차를 탔다가 담장 넘던 그 기세가 그냥 나온 거죠. (웃음) 일단 차를 타긴 했는데 집 앞 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나가자니까 또 안 되는 거예요. 들어갈 때 승인이 안 됐으니 나올 때도 문제가 생긴 거죠. 그때는 그것도 몰랐어요.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늘은 공짜로 지하철 탔으니, 돈 절약했네... 좋아했었어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넘어 뛰자고 했지만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그냥 서 있으니까 직원이 와서 출발역에서 카드가 안 찍혀서 여기서도 승인이 안 된 거라고 설명해주더라고요. 나이도 든 게 체면이 있지, 그냥 출발역에서도 카드를 찍었다고 막 우겼죠. 그러니까 옆문을 열어주며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 때는 진짜 돈 절약했다 신났었는데 8개월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

문성휘 :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지하철이 전자동 무인화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표도 직원들이 팔아주고 했는데 2-3년 만에 다 자동화 기계로 바뀌면서 역무원이 거의 없죠. 뭐가 좀 잘 못돼서 좀 물어보려고 해도 사람이 없어요.

진행자 : 호출 단추를 누르면 되잖습니까?

문성휘 : 그건 온지 얼마 안 된 탈북자들에겐 무용지물이죠...

박소연 : 호출 단추가 뭔지도 모릅니다. 더 당황했던 것은 제가 학원이 가양 쪽이었는데 무조건 온 기차를 타고 갔더니 김포공항에 내려줘요. 급행을 탄 거였어요. 얼마나 속상 했나 그 자리에서 가방을 안고 막 울었어요. 학원은 늦었는데 어떻게 갈아 타야하는지는 모르겠고 물어봐도 사람들은 다 바쁘게 걸어가고... (웃음) 처음엔 제가 그렇게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때는 진짜 외국에 온 것 같더라고요.

진행자 : 같은 민족이라곤 하지만 문화나 사회 환경이 다른 곳이니 외국이죠...

박소연 : 사실 그때도 휴대 전화기를 갖고 있었어요. 검색만 하면 다 나오겠는데... 특히 환승할 때는 갈아타는 2호선, 4호선으로 가야하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기다려요. (웃음)

문성휘 : 맞다. 북한은 전철기를 돌리면 다른 쪽으로 가는 차가 들어오고 그런데요. 남쪽은 선로가 여러 개죠. 그래서 저도 어떤 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고 했습니다. (웃음) 처음엔 많이 고생을 합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는 10리 길이라도 자전거가 없으면 걸어 다녔어요. 남들도 다들 그렇게 다니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여기는 모든 시스템이 잘 돼있고 이걸 잘 이용해야 내 생활에 이익이 있습니다. 지금도 부지런히 공부하며 한 3달 이용했더니 이제 한국 사람들보다 지하철을 더 잘 안데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제 막 경기도, 인천까지 검색해서 잘 찾아가요. (웃음) 어떻게 환승하면 더 빨리 가나 잘 찾아보고요. 제가 얼마 전 지하철 층계 내려가면서 제 친구한테 그랬어요. ‘야, 은실아 우리 한국에 오길 잘 했지?’ (웃음) 친구도 대뜸 응 그래요. 갸도 뭘 말하자는가 알더라고요. 지금은 지하철 타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승용차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부럽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시간에 차에 발동을 걸어서 내가 운전해서 가면 좋은데 조건이 그렇게 안 되는데다 지하철이 현대적이고 고급이니까 그것도 지금은 좋아요. 만족합니다.

문성휘 : 근데 소연 씨, 남쪽에는 차 있는 사람들도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요. 저도 서울에 금방 왔을 때 어느 교수가 만나자, 밥 먹자 그러면 약속을 잘 지키겠다고 택시를 탔어요.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탔는데요. 택시가 어떤 때는 오히려 늦다는 걸 몇 년 지나서 알았습니다. 그저 버스나 지하철이 제일 빠릅니다.

진행자 : 문 기자님 말씀은 택시 운전기사들이 화낼만한 얘기인데요. (웃음)

문성휘 : 택시는 아무리 막히는 시간에도 다른 차들과 같이 가야하기 때문에 계속 약속을 어기게 되더라고요. 비싼 돈 주고 일부러 탔는데! 시간에 맞춰 가고 싶으면 지하철이 제일 좋습니다.

진행자 : 지하철 광고로 그렇게 합니다. 약속을 지키려면 지하철을 타라... 소연 씨도 도로에 보시면 3000 cc 이상의 큰 승용차를 혼자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봤을 거예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반도에서 이건 기름 낭비로 볼 수 있지만 강제로 하지 금지해야하진 못합니다. 대신 남한 정부는 국민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독려하는 깜파뉴를 전개하죠. 하지만 저도 소연 씨가 자가용 몰고 싶은 심정은 이해를 합니다. (웃음)

박소연 : 희한해서요... 그리고 내가 손이 두 번 움직이면 그 큰 바퀴가 움직인다는 게 너무나 황홀해 보여요. (웃음) 근데 제가 너무 한국 생활에 빨리 막 들어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 와서는 시골에서 온 촌뜨기처럼 얼뜬해서 울고 했는데 금방 와서는 지하철에 타서도 초초해요. 내가 내릴 역을 놓치면 어쩌나 싶어서요. 안내원의 방송 소리만 귀를 기울였는데 지금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가 있습니다. 이젠 남한 사람들과 똑같은 동작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문성휘 : 우리 탈북자들 진짜 재밌어요. (웃음) 와서 한 두달 있다가 지하철 타면서 하는 말이 다 똑같아요. 나 이제 지하철 탈 줄 안다... (웃음) 아주 자랑을 합니다. 저는요, 늘 소연 씨에게 말하고 싶은 게 요즘 일부 낙오자들이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회를 1-2년도 못 살아본 사람들입니다. 1-2년을 살아 보고 한국 사회를 평가하지 말아라, 이자처럼 지하철을 배우는데 8개월이나 걸렸는데 한국 사회를 알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천천히, 천천히... 절대로 급하게 서두르지 마세요. 남들이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나도 당장 차를 운전해야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금방 나온 사람도 차를 막 할부로 사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러지 마세요.

박소연 : 저번에 KTX 고속 열차를 타고 전라도까지 갔는데 우리 집에서 전라도 거리가 아마 우리 고향부터 해주까지 거리일 겁니다.

문성휘 : 해주까지는 못 돼도 남포, 평성은 될 겁니다.

박소연 : 근데 타고 다가보니까 열차 자리가 절반 이상 비었어요!

문성휘 : 맞아요. 열차가 왜 뛰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꽉 찬 기차 안, 발을 들어 가려운 다리를 긁었는데 그 발을 내려놓자니 자리가 매워져서 발 하나 놓을 자리가 없고, 애 엄마가 아이를 업고 고압 전기가 달린(흐르는) 기차 지붕 위에 몇 시간을 매달려가고, 아이를 업고 버스 타는 건 아이의 생명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북한.

기차 칸이 텅텅 비어가고 버스와 승용차 등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도로가 항상 막히는 남한... 문성휘 기자는 남북 양쪽이 어떤 의미에선 모두 교통지옥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연 씨는 도로가 막혀도 일단 승용차는 꼭 운전해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남한의 대중교통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