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과 4월, 설렘과 스트레스 (2)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5.03.24
first_grade_start_305 북한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환영을 받으며 등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근데 제 아들이 이번에 개학했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일이 개학인데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어요. 북한에서 저희는 볼만 하잖습니까? 치마 주름 세우고 난리치고 책을 싸고 교과서를 책뚜껑을 씌우고... 근데 애는 그냥 다음날 학교 가면 된대요. 진짜 그냥 갔어요...

남쪽은 학교들이 모두... 3월 2일, 개학을 합니다. 입학식도 그날 열리죠. 북쪽의 시간표보다는 한 달이 빠릅니다. 북쪽은 4월에 학기가 시작하니까 3월은 졸업식이 있고 학기가 마무리되는 한 달입니다.

그래서 남한의 3월이 시작이라면 북쪽의 3월은 뭔가 마무리 되는 한 달이 될 것 같은데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에선 지난 시간에 이어 남북한 3월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박소연 : 그래서 저는 문 기자님, 아직도 잊혀 안지는 게 교복을... 우리 때는 주름 치마였는데 주름을 요렇게 세워서는 입으로 물을 푸푸 뿌리고 그 위에 얇은 담요를 덮고 다시 두꺼운 요를 덮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버지 요 아래 깔아놔요. 무거운 사람이 눌러줘야 그 주름이 잘 서거든요. (웃음)

문성휘 : 아닌 게 아니라 입에다 물을 넣고 푸 불어서 아버지 이불 밑에 넣고 글구 아버지한테 말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 이렇게 마구 돌아눕지 말라고... 그 바지 주름 두 개 생긴다고... (웃음) 그럼 아버지는 응 알았다... 옛날부터 그게 법이었어요.

박소연 : 맞아요. 맞아요. (웃음)

진행자 : 정겨운 모습입니다. (웃음)

박소연 : 그 다음엔 그게 진화해서 재봉기로 주름을 박았죠.

진행자 : 아이고... 별 얘기가 다 나옵니다. 남북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입학식이 특별하다는 건 세계 어디나 같겠죠? 집에 학생이 딱히 없어도 적어도 12년 간 반복된 습관에 3월엔 입학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요. 그래서인지 시동은 1월에 걸고 진짜 출발은 3월에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박소연 : 아... 그 말 듣고 보니 맞습니다.

문성휘 : 그러고 보니 북한은 3월말에 졸업하죠. 이때쯤이 졸업을 할 때인데 이자처럼 북한은 매년 학년을 뛰어오는 건 별 의미가 없지만 마지막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 여긴 굉장히 소란스럽지만 북쪽은 허전합니다... 졸업하는 애들 중에 먼저 군대를 뽑아가고요. 3월 10일 정도면 첫 초모가 시작되거든요? 졸업할 때는 3분의 1은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졸업한다는 게 한국은 사회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갖게 된다면 북한은 엄청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직업을 잡고 일한다는 부담감,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한 감정. 고난의 행군을 겪고 나서는 군대 가는 게 왜놈들 징병 끌고 가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웃음) 온통 울음바다죠.

진행자 : 고생하러 가는 거니까요.

문성휘 : 죽는 사람도 많아요...

진행자 : 3월이 북쪽은 쓸쓸한 달이네요.

문성휘 :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박소연 : 그런데 이렇게 남한은 3월은 개학 때문에 바쁜데요... 그게 북한으로 치면 4월이잖아요? 북한은 4월에 개학식, 입학식보다 더 중요한 거 있어요. 문 기자님?

문성휘 : 아! 그...

박소연 : 엄마들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4월 15일 소년단 입단!

진행자 : 중요한 가요?

박소연 : 아... 그 지금 생각하면 저희 진짜 알짜 바보였지만요. 소년단은 보통 노동당의 튼튼한 후비대라고 하죠? 소년단이 사로청이 됐다가 노동당이 되는 거죠. 이걸 인민학교 2학년이 되면 2월 16일, 4월 15일, 6.6절. 이렇게 단계적으로 입단을 시켜요. 벌써 개학을 할 때면 이미 명단이 들어가 있고요.

진행자 : 아무나 안 시키나요?

박소연 : 2월 16일은 한 학급에 한, 두 명. 4월 15일에 3분의 1 정도 그리고 6.6절에 하는 거는 부모들이 힘도 없고, 토끼 가죽도 못 내고, 과제도 못 하고, 못 사는 집 애들. 그러니까 4월 15일이면 각 도마다 광장에서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합니다. 넥타이 들고 소년단 동무들 짠짜잔... 하면서. 부모들이 경기장에 다 따라가고 그르믄 아들이 넥타이를 이렇게 쥐고 가서 도당 간부가 넥타이를 매주고 선서를 하재요.

문성휘 : 그걸 연합단체대회라고 했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모든 학교에서 다 모이고 각 시도에 있는 큰 공설운동장에서 합니다. 텔레비전으로 방송하기도 하고요.

박소연 : 여기선 너희 아이 학교 어디 갔어? 서울대 갔어... 북한에선 너희 아이 언제 입단했나? 4.15... 이거랑 같다는 거죠. 지금은 자식을 한둘 낳으니까 없이 살아도 내 자식만큼 남에게 뒤지지 않게 하려고 하죠. 부모들이 명단에서 빠지면 왜 쟤는 우리 아이보다 빠지는데 입단을 하냐고 자부디(머리채) 뜯고 싸우기도 하고 목숨을 걸죠.

진행자 : 다 시켜주긴 시켜주는데...

박소연 : 그렇죠. 6.6절엔 안 하겠대도 다 시켜주죠. (웃음)

진행자 : 그러니까 소년단 입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4.15 입단이 중요한 거군요. 근데 이렇게 듣다보면 북한은 이런 게 너무 많아요. (웃음)

박소연 : 그렇죠. 개학과 동시에 하니까요. 제 동생이 4월 15일 입단 명단이 오르질 못했어요. 어머니가 알고는 주저앉아서 동생 선생을 두고 열두 간나를 부르더라고(욕을 하더라고요) 근데 암만 욕해도 입단 못하면 아들 손해거든요? 그러니까 다음날에 아들 손목 쥐고 나가서 사탕 한 킬로, 기름 한 병, 맛내기를 사서 선생님 집을 갔더라고요. 그래서 입단했어요. (웃음)

진행자 : 남한의 3월이 북한의 4월이네요. 근데 바쁜 거 따지자면 북쪽이 더 한데요? 입학 시키랴, 입단일 챙기랴 안 된다면 뭘 또 바쳐야 하고... 아까 문 기자가 북쪽에서는 3월 말에 두려움을 느끼는 때다 그랬는데 남쪽도 3월이면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병원에 오는 사람이 많답니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것들이 좋게 말하면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잖아요? 또 3월 학기 시작하면 방학 동안 개인들이 앓던 감기가 학기가 시작하면서 좍 유행을 하고... 그래서 병원에 환자가 가장 많답니다.

문성휘 : 진짜 그럴 것 같습니다. 근데 기억해 보면 북한은 감기도 못 사는 집 애들부터 걸립니다. 학급에서 제일 밀리는 아이부터 걸리고 나중에 제일 체격이 좋고 잘 사는 애들이 걸리죠. 그러면 제일 첨에 감기 걸려서 온 아이를 때려요.

진행자 : 아이고... 그게 때릴 일이에요?

문성휘 : 그 아이는 아프면 안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면 또 애들을 보내요. 가서 붙잡아 오라고... 지금도 그런 답니다. 아파서 교실에 앉혀 놓았다가 1시간 있다가 보내주죠.

진행자 : 그렇게 북쪽도 감기가 도는 군요.... 그럼 3월이라는 건 저희 직장인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박소연 : 직장인들은 3월보다는 월요일이요? (웃음) 3월은 여느 날이랑 같은데요?

문성휘 : 북한에선 이맘 때 진짜 나쁜 게 있죠. 지금쯤이면 평양도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그러면 돌격대를 뽑습니다. 왜냐면 돌격대를 뽑았다고 해도 겨울철엔 일을 많이 못하니까 집에 보내거나 인원을 축소해요. 괜히 국가가 쌀을 낭비하기 싫으니까. 그랬다가 이제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니까 인원을 뽑기 시작하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게 진짜 스트레스죠. 야, 저번에 내가 갔댔지 않았냐... 쟤는 왜 안 보내느냐... 아저씨! 그때 나는 사정이 있어서 못 갔잖아요... 이러고 싸웁니다.

진행자 : 진짜 봄 오는 게 반갑지 않네요.

문성휘 : 그리고 3, 4 월 위생월간 아닙니까? 여긴 환경미화원들이 하지만 북한은 구간 나눠서 개인들이 다 해야 해요. 어우... 4월엔 횟가루 칠하는 거 그게 진짜 싫죠.

진행자 : 남쪽은 3월, 좀 춥긴 하지만 봄의 시작이니까...

박소연 : 그래도 저는 3월이 좋아요. 가을은 남자가 피고 봄은 여자가 핀다는 말을 북쪽에서도 하거든요? 봄이니까 옷차림도 바뀌고 봄바람도 불고요...

진행자 : 아, 저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제 봄이 막 시작하는...

박소연 : 그런 설렘이 있죠! 조금 있으면 벚꽃이 피겠구나.

진행자 : 그래서 3월은 설렘의 달이기도 하죠?

문성휘 : 그건 한국이나 그렇죠. 농촌 동원 나기가 시작하면서 저는 그렇게 좋던 가을도 싫었습니다...

진행자 : 남쪽은 3월을 설렘과 스트레스 사이의 시간이다 그럽니다. 스트레스보다는 설렘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문성휘 : 그죠? 남쪽은 벌써 벚꽃 생각을 하며 그러는데 북쪽은 3월은 보리 고개죠. 우선 국거리가 하나도 없고...

박소연 : 그렇죠. 저장해놨던 거 다 먹고 새건 안 나오고. 의미를 따지자면 3월은 북한 사람들에겐 삶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때입니다.

문성휘 : 글고 3월이면 김치 다 떨어지죠. 그때는 아무리 친구라도 안쓰럽고... 그래 일부러 김치 떨어졌다는데 그래서 구실을 만들어서 친구 데려가서 밥 먹고... 그런 게 있었죠.

박소연 : 저도 친구가 2월 16일 세면 김치가 떨어지는 집이 있었어요. 저희 엄마가 딱꾹지에요. 제 친구가 네 번째 친구랑 수업을 떼먹고 배제를 넘어서 김치를 도둑질해서 주고 그랬던 게 3월이었네요.

문성휘 : 슬픈 달이에요. 또 산에서 물이 줄줄 내려오면 잘사는 집 애들은 장화 신고 나오는데...

박소연 : 장화 없는 애들이 더 많죠.

문성휘 : 장화 신은 얘들은 철퍼덕 철퍼덕 다니고...

진행자 :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3월도 가고 있습니다. (웃음) 곧 봄일 텐데요. 지난겨울보다는 나은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성휘 : 봄이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고 곧 가을이 올테니까요...

진행자 : 지난겨울, 다들 수고하셨고요. 청취자 여러분도 3월 무사히 넘기셨길 바랍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

봄이 속삭인다
꽃 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느 해 봄인가 광화문 교보문고 글 판에 올랐던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 중 한부분인데요.

이번 봄을 맞이하면서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마음에 담고 싶은 글귀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뵙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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