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자랑 (3)

0:00 / 0:00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옛날에는 집에 딸들이 많으면 저 집 딸들은 착하고 고정(정숙)하다면서 며느리를 해야겠다... 그랬는데 지금은 착하면 어디다 쓰냐? 그러죠. 착한 사람하고 바보가 종이 한 장 차이였는데 현재는 각기가(똑같다) 됐대요.

이악스럽고 자기 이득은 귀신같이 잘 챙기고 계산 빨라서 손해는 절대 보지 않고 목소리도, 힘도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 주변에 그런 사람 있죠? 그런 사람이 잘 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자녀가, 커서 이런 어른 된다면 어떨까요?

오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남북의 자식 자랑 얘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문성휘 : 그러고 보니 우리 어렸을 때는 성적증을 가지고 오면 그때는 10점 만점이었는데 10점이다 최우등이다, 그러면 부모들 자랑을 했어요. 그런데 80년대 말쯤 되니까 우리 아이 최우등했소... 그러면 그 집이야, 간부니까 그러지 그랬습니다. 빤한 집안이니 선생님이 10점을 준다는 거예요. 다 받을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죠.

진행자 : 저도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동네에서 애들 자랑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어떤 아줌마가 심하게 애들 자랑을 하면 뒤돌아서 한마디씩 하죠. 누군 자식 없나, 뭘 저렇게 유별나게 자랑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셨거든요. 칭찬할 때도 우리 애는 심부름 잘 한다, 착하다 그랬는데 요새는 월등히 공부 자랑이에요. 너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문성휘 : 그렇죠. 문제는 맞죠. 그리고 북한은 또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은 왜 애들 자랑을 많이 하게 되냐... 북한은 봉건이 심하기 때문에 남녀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손을 잡거나 어깨를 잡고 다닌다던가 하는 건 상상도 못해요. 부모들이 어디 가서 우리 애들 예쁘네, 이런 자랑도 안 해요. 그런 걸 다 빼놓고 나면 정치 얘기인데 그건 못하니까 시간을 때우는 게 누구 욕하는 거 아니면 애들 자랑 밖에 없는 거예요.

진행자 : 제가 북쪽에서 오신 분들 만나면서 진짜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바로 이 자랑에 관계된 건데요. 남쪽은 아무리 자기 홍보 시대라고 하지만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은 잘 안 합니다. 민망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북에서 오신 분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자기 자랑을 잘 하시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북은 항상 남을 압도해야 사는 사회예요. 그러니까 가끔씩 직장에 와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소식을 내놓아야 해요. 어제 27국 친구 애가 팔뚝만한 문어 다리를 가져왔는데 밤새 술이랑 배터지게 먹었는데 기분 좋았다는 둥...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못하게 이따금씩 자기를 내세워야 해요. 옆에 사람들이 감히 범접을 못하게 우정이라도 가끔씩 그런 자랑을 해야 하는 거예요.

진행자 : 특히 북쪽에서 오신 여자분들요, 남쪽은 처음에 만나면 예의로 참 고우세요... 그런 말 많이 하는데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요. 그렇죠? 제가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다리도 참 길고 날씬하다고 하고 남들이 옷태가 난다고 하고... 진심으로 자화자찬을 줄줄이 하시기에 처음에는 저 분이 좀 특이하신가보다 그랬는데 그런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었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러니까 그 사람들 본질적으로 잘못된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수 있으니 본능이 된 거죠.

진행자 : 소연씨도 좀 느끼세요?

박소연 : 먼데서 찾을 것 없잖아요? 저 제 아들 닮아서 착하다고 그러잖아요. (웃음)

진행자 : 그건 농담이잖아요? (웃음)

박소연 : 농담 반, 진담 반입니다. 저도 북한에서 장사를 했으니까 이런 말을 자주 했죠. 외상이라도 줄 때면 니 날 알지? 니 나한테 돈 안 줬다가는 깝데기 쪽 벗는다, 잡두리 잘 하고 가져가라... 돈 안 줄까봐 하는 경고입니다. 내가 누구보다 드살이 세다, 내 누긴데? 이렇게 내 위상을 올려야 해요. 그게 버릇인지 가끔 남한에 와서도 사람들이랑 얘기를 할 때면 제가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사람들이 소연 씨 너무 예뻐요 그러면... 당연하죠. 내가 누군데요? 그런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옵니다. 진짜 버릇이 된 것 같아요.

진행자 : 소연 씨 같은 경우에는 농담으로 넘기는데 정말 진심으로, 그래요, 제가 정말 그렇죠? 이러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문성휘 : 그 사회에서는 그래야 살아남아서 그럽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요. 그리고 부모들도 그렇지만 애들도 그렇습니다. 먹은 티는 안 나도 입은 티가 난다고 집에서는 통 강냉이 죽을 쒀 먹어도 옷은 반드시 남보다 잘 입혀라 그래서 부모들 정말 피 땀나는 거죠.

진행자 : 하여튼... 참 살기 힘드네요. 남들보다 세다는 걸 입증해야 살 수 있고, 내실이고 뭐고 일단 겉모양이라도 보여줘야 하고... 그런데 참, 애들 커 가면서도 자랑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은 착하다, 앞가림 잘 한다... 이런 것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애가 어리니까 잘 먹고, 잘 놀아요, 이게 제일 자랑입니다.

박소연 : 그러게요. 우리가 우리 아이들 자랑하느냐 신이 나서 이 기자한테는 물어 보지도 않았네...(웃음)

진행자 : 저는 명함을 못 내밀겠는 게 애가 너무 어리니까요. 지금 자랑이라는 게 밥 잘 먹고, 화장실 잘 가고, 잘 놀아요... 이런 거죠.

문성휘 : 아! 맞아요. 일전에 제가 이 기자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페달 없는 두 발 자전거가 유행이어서 아이에게 사줬는데 우리 애가 정말 못 탄다고 그랬잖습니까? 저 속으로 이런 반편이 어디 있어?? 놀랐습니다. (웃음)

진행자 : 아니, 뭐 그런 그게 약점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그건 그냥 하소연 같은 건데요. (웃음) 웃자고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문성휘 : 북한은 우리 애가 남보다... 이런 말 절대 안 해요.

진행자 : 일종의 농담 같은 것인데요?

문성휘 : 네, 또 그런 것도 있겠네요.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집까지 거리가 몇 십 킬로죠. 여긴 운수수단이 좋아서 그렇게 살아도 20, 30분 내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으니 멀리 살지만 북한은 직장이 다 한 동네, 그야말로 코앞이에요. 그러니까 직장에서 아이들에 대한 이런 얘기를 하면 부모들이 집에 가서 자기 자식에게 물어보죠. 저 집 아이는 아직도 못 탄다더라, 니는 어떠니?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집 아이가 자기 애를 깔보게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약점을 말 하면 안 돼요.

진행자 : 그런 면도 있네요.

문성휘 : 그런 면도 있는 게 아니라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진행자 : 남쪽은 너무 자랑만 하고... 그러면, 솔직하지 못하다고 해요.

박소연 : 그리고 지금 이 기자가 아들 자랑 했는데 또 심각한 거 있네요. 옛날엔 우리도 자랑 삼아 애가 잘 먹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우리 애가 잘 먹어요 하면 어떻게 하냐.. 흉년에 아(아이) 배만 터진다, 힘들겠다... 지금은 애가 밥을 잘 먹는다고 하면 걱정을 합니다. 나가서 우리 애 잘 먹는다고 하면, 쟤는 진짜 철딱서니 없다, 나이 밑궁기로 먹었다 그럽니다.

진행자 : 진짜... 힘드네요. (웃음)

문성휘 : 솔직히 벼농사가 안 되는 농촌 같은 경우는 3살 짜리한테도 통 강냉이를 먹이는데 보드랍게 해서 밥을 해 먹여야 합니다. 어쨌든 애들이 먹는 밥은 품이 더 가니까 밥 잘 먹는 거 큰 문제예요.

진행자 : 남쪽은 밥 잘 먹다, 이 말은 애 건강하게 잘 커요... 이런 얘기죠. 그 맘 때는 그게 제일 큰 자랑인데요. 아... 참, 오늘 예상치도 못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네요.

박소연 : 저는 재밌는데요?

문성휘 : 사실 저도 오늘 얘기 하면서 깜짝 놀라네요. 전에는 이런 생각 못했는데 얘기하다보니 참 심각한 게 많구나 싶습니다.

진행자 : 여태까지 방송 중에 오늘 소연 씨, 표정이 제일 밝아요.

문성휘 : 역시 애 자랑이 듬뿍 묻어납니다.

진행자 : 이렇게 자랑스러운 아들, 어떻게 컸으면 좋겠어요?

박소연 : 대한민국 식으로 말할게요. 엄마한테 손 내밀지 말고 엄마를 양로원에 보내지 말고 효자가 되라...

문성휘 : 아이고 깜짝이야... 그게 무슨 끔찍한 말입니까?...

소연 씨의 말은 결국 아이가 자기 앞 가림 잘 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뜻인데요. 학교 졸업하고 직장도 잘 잡고 때 되면 장가도 가서 가정도 꾸리고 엄마도 챙겨라... '자기 앞가림'이란 표현엔 이 모든 게 포함되는 거죠. 사회가 복잡해져서 그런가요? 이렇게 당연한 일이 우리 부모 세대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길 바라십니까?

남북 부모의 자식 자랑... 그 모양과 내용은 많이 달라도 애들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