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오늘 (1)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4.05.20
east_sea_305 경포 해변의 소나무 숲 그늘에서 관광객들이 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제가 얼마 전에 남조선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차에 휘발유를 여러 번 넣기에 도대체 우리가 몇 리를 왔다, 갔다 했느냐 물었더니 집에까지 도착하면 사천리라는 겁니다. 1,600킬로래요.

5월초 4일 동안 이어진 연휴 기간, 소연 씨가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2박 3일 동안 강원도부터 동해 바닷가를 거쳐 한반도의 동쪽 끝 포항을 찍고 부산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오는 무려 4천리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고요.

남쪽에 와서 첫 여행, 근 사십 평생 만에 해보는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데요. 부럽습니다... 이 얘기 한번 들어보죠.

진행자 : 긴 여행 하셨네요. 남쪽에 와서 첫 여행이시죠?

박소연 : 네, 하나원에서 나와서 하나센터 다닐 때 소양 댐을 단체로 선생님이 데리고 갔었는데요. 문 기자님, 댐이 우리말로 저수지죠?

문성휘 : 언제죠.

박소연 : 아.. 언제. 그때 보고서 너무 좋다고 했었지만 이번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일단 선생님이 통제를 안 해서 너무 좋았어요. (웃음) 하나 센터에서 단체로 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선생님이 통제를 하잖아요? 나는 이걸 보고 싶은데 더 못 보고 가자고 재촉을 하니까 내심, 내가 규율이 싫어서 남조선에 왔는데 여기서도 이걸 지켜야하네 그랬습니다.

진행자 : 개인적으로 가셨으니 이번엔 그런 거 없으셨겠네요.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십니까?

박소연 : 석류 동굴이요. 안에 들어갔는데 고름 같은 거 가뜩 매달렸고. 안에는 냄새도 나고 물이 뚝뚝 떨어져서 들어가기 싫었어요. 보니까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갈 수 없고 아이들에 어르신들까지 안전모를 쓰고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는데 어찌 잘 만들었는지 희한한 곳엔 다 불이 들어와요. 물 밑에 전기가 들어와서 전등을 만들어 놓고... 저는 북한에 살 때 금릉 동굴이랑 무슨 구월산으로 가자, 이런 텔레비전 극들을 많이 봤습니다.

문성휘 : 지하의 금강이라고 하죠.

박소연 : 맞아요. 그런데 가보진 못 했고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처음, 텔레비전이 아닌 내 눈으로 본 거네요.

진행자 : 석류굴... 남쪽에는 학생들이 답사로 많이 가는 곳이죠. 그런데 바다는 어떠셨어요? 두 분 다 고향이 바다 근처가 아니어서 바다가 아주 좋으셨을 것 같은데요.

문성휘 : 우린 정말... 고저 산이 꽉 들어찬 곳에서 살았으니까 바다가 좋죠. 그래서 저도 가끔 인천 쪽에 가는데요. 자동차를 운전 못하니까 혼자는 못 가고 뒤에 달려서 가야하는데... 그렇게 가면 나 혼자 풍경을 감상할 시간은 없어요.

진행자 : 바다는 정말 눈앞에 딱 튀면서 시원해지는 그런 맛이 있죠.

박소연 : 그래요. 저도 서해는 가봤는데 물이 탁 하더라고요. 동해는 이번에 처음입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텔레비전에서 그걸 봤어요. 어떤 예쁜 여성이 긴 치마를 입고 손에 신발을 들고 백사장을 걷는... 저는 그런 주제는 못 되지만, 저도 여자 아닙니까? 나도 한번 백사장에 긴 치마입고 저렇게 걸어봤으면 그랬는데 이번에 실행을 했습니다! (웃음) 사진도 찍고. 근데 여행을 긴 치마를 입고했다는 게 북한이랑 너무 대비되죠? 어떻게 치마를 입어요. 북한은 적재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려면 바지 입어야 해요. (웃음)

문성휘 : 근데 아쉬웠겠다... 동해를 죽 돌았는데 지금은 해수욕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진행자 : 아, 바다에는 들어가질 못했겠네요... 그런데 바다는 계절마다 주는 인상이 다르다고 합니다. 여름 바다도 좋지만 봄 바다는 또 그 나름대로 멋이 있죠.

박소연 : 네, 정말 탁 트였어요. 뭔가 막힌 게 탁 트이는 느낌...? 아침에 펜션에서 일어났는데요. 펜션이라는 게 북한으로 말하면 합숙 같은 숙소입니다. 아침에 나왔는데 비리비리한 공기가 정말... 그 바닷가 냄새, 내가 남조선 바다 앞에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진행자 : 일출도 보셨습니까? 바다 수평선에 태양이 두둥, 떠오르는 게 장관입니다.

문성휘 : 그 포항에 가면 해맞이 명소에 손 모양의 동상을 세워놓은 게 있잖아요? 그게 해맞이 하는 형상이라는데 어떤지 저는 그게 무섭더라고요. 물에 빠진 사람이 구해달라고 하는 것 같은... 왜 바다에 그런 조형물을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좋다고 사진도 많이 찍더라고요. 차라리 뭍에 올려놓지?

박소연 : 그 손 모양 동상은 뭍에도 마주 보고 있잖아요?

문성휘 : 아, 그렇지! 뭍에도 손이 있죠?

진행자 : 그래요? 저는 거기 못 가보고 사진만 봤는데요. 새해 해맞이 한다고 거기 많이 가잖아요? 사진에 보면 떠오르는 태양이 딱 그 손으로 들어오던데요? 근데 그 동상이 바닷물에 잠기게 서있나 보네요. (웃음)

문성휘 : 아이고, 세상에.... 남한에서 태를 묻고 살았는데 북조선 인민이 가봤는데 어찌 거길 못 가보셨나요? 거기까지 몇 시간 안 걸리는데 나 같은 궁금해서라도 가보겠네! (웃음)

진행자 : 포항까지 여기서 4시간 이상 걸리지 않아요?

문성휘 : 4시간이 뭐가 길어요. 우리는 12시간, 겨울 같은 때는 열흘씩 가는 기차를 타고도 평양에 간다면 좋아서 껑충 껑충 뛰었는데...

진행자 : 서울 사는 사람이 남산 못 가본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남쪽에 있는 사람들은 남한 곳곳 다 못 다니는 사람도 많죠.

박소연 : 정말 신기한 일일세...

문성휘 : 아, 나는 포항 갔을 때 포항 제철에 갔는데요. 세계적인 제철소라고 해서 정말 클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가보니까 청진 김책 제철소의 3분의 1 정도 되나? 그런 얘기가 있어요. 북쪽에서 외국 기업하고 합영을 하려고 김책 제철소로 사람들을 청했는데 사람이 와서 척 보더니 공장 규모는 세계 최고입니다, 하더래요. 그런데 설비는 원시 시대입니다, 그러더라고요. (웃음) 북한은 무슨 공장이라고 하면 쓰던 못 쓰던 일단 규모는 크게 짓고 보는 거죠.

진행자 : 저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포항 제철소를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커서 놀랐습니다. 도대체 김책은 얼마나 큰 건 건가요?

문성휘 : 남한으로 보면 한 개의 구? 김책에 비하면 포항은 애기 수준이죠.

진행자 : 그런데 부지만 넓고 공장이 여기저기 있으면 이동만 힘들지 않겠어요?

문성휘 : 그런 면도 있죠. 이건 부지 면적에서 그렇다는 거지 생산량은 다른 얘기고요. 사실 남쪽은 기계화를 해서 50명이 할 일을 1-2명이면 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문 기자 얘기를 듣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여행가서 똑같은 걸 보더라도 그 감상은 남북 사람이 틀릴 것 같습니다. 소연 씨 이번에 같이 간 친구들은?

박소연 : 남한 분들이에요.

진행자 : 어땠습니까?

박소연 : 네, 다릅니다. 저는 우선 4천리라는 말에 기겁을 했어요. 여기는 거리를 몇 킬로로 얘기하지만 북한은 몇 리인지를 따지죠. 차에 휘발유를 여러 번 넣기에 도대체 우리가 몇 리를 왔다, 갔다 하는데 이렇게 기름이 많이 드느냐 했더니 집에까지 도착하면 사천리라는 겁니다. 1,600킬로래요. 그래서 니가 사기를 치냐, 남북조선 합해서 3천리라는데 무슨 소리냐... 우리 북한에서 그렇게 배웠거든요.

진행자 : 삼천리 금수강산 그러죠.

박소연 : 그러니까요. 4천리라면 1천리가 남는데 왜 우리가 북한까지 못 갔다 왔느냐, 내 얘기가 그겁니다.

문성휘 : 아... 그건 소연 씨가 잘 못 생각한 겁니다. 삼천리라는 게 남한 끝에서 북한 끝까지의 거리가 아니고 서울을 기준으로 의주 천리, 서울 기준으로 경성 천리, 제주 천리 그래서 삼천리라고요.

박소연 : 그럼 남조선만 해당되는 거잖아요?

문성휘 : 서울을 기둥으로, 서울이 한반도의 중간 지점이니까요. 다 천리씩이라는 얘기죠.

박소연 : 몰랐습니다. 역사 강연 듣는 것 같네요. 문 기자는 그걸 다 어디서 아셨어요?

문성휘 : 그러니까 나도 뭘 꽤나 많이 아네? (웃음)

진행자 : 4천리라... 정말 긴 여행 다녀오셨네요.

조선 시대에 나온 말이라는데요. 서울 그러니까 한양에서 의주까지 천리, 한양에서 부산 천리, 부산에서 제주 천리 합이 천리. 그래서 우리 강산을 삼천리금수강산, 그랬답니다. 이 삼천리, 긴 거리 아닌데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삼천리금수강산을 다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네요...

남쪽 텔레비전 광고에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여름철 잘 팔리는 음료수 광고인데요.

옥색 바닷가, 절벽에 온통 하얀색 집들이 가득하고 밝은 햇살 아래 한 여성이 챙이 넓은 밀짚모자에 하얀색 긴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백사장을 자박자박 걷습니다. 맨발 위로 파도가 잔잔히 부서지고... 여자는 선전하는 음료수를 한 모음 마십니다.

여름철, 사람들이 바라는 최고의 이미지를 담아낸 장면인데요. 소연 씨, 이걸 바닷가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요. 문 기자는 여행길에 ‘민족과 운영’의 홍영자가 돼봤답니다. 무슨 장면인지 짐작하시겠습니까?

이 얘기는 다음 주에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저는 이현주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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