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것만 (3)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6.10.04
nk_visual_art_b 만수대창작사 창립 55주년 기념 미술전시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큰 무대 였고요. 큰 도화지에 물감을 묻힌 공으로 아들이 발로 차기도 하고 가슴으로 쳐내기도 하면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선을 그렸는데... 작가는 어린 소년이 두만강을 넘고, 악어강을 넘고 라오스 산을 넘었던 그 여정을 그 선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요.

소연 씨 아들이 축구 공으로 그려낸 불규칙적인 점과 선이 만나 미술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남과 북의 미술 얘기... 나눠 봅니다.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도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문성휘 : 고저... 김일성이라는 가문에 꽉 갇혀 움직이는 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뭘 그린다 하면 흔히 소묘나 자연 풍경 같은 걸 그리지만 정작 졸업 작품을 할 때는 그때는 정말 고민하는 거죠. 그건 단순히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사상이 들어가야 합니다. 조용한 길거리 풍경,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 버드나무... 이런 것 안 됩니다! 자연을 그려도 왜 이게, 어떤 의미가 있나? 백년송이라면 수령님께서 몇 년 몇 월 몇 일 다녀가신 소나무 이렇게... 그러면 통과가 됩니다. 그런데 행복한 거리... 그래도 사회주의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면 통과는 되겠는데 점수는 높게 못 받겠죠? (웃음)

진행자 : 그냥 기분 좋은 하루, 행복한 아이들... 이런 건 안 된다는 거잖아요?

문성휘 : 지금은 례하면... 함마를 들고 눈에서 불이 튀어나가는 분위기로 정대나 함마를 내리 치던가 뭐를 까부수는 그런 그림에 제목도 요란하게 ‘미래를 위하여!’. 또는 ‘수산 전사들’ 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라면 그냥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전투하듯이 하면서 뒤에 살짝 ‘당과 수령을 위해...’ 뭐 이런 구호라도 보여야 점수를 받는 겁니다.

박소연 : 그래요. 정말 맞습니다. (웃음) 우리 동창 중에 그림을 진짜 잘 그리는 친구가 응용미술 학부를 갔습니다. 그 학부에서 그림은 제일 잘 그렸는데 걔가 졸업 작품을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그렸습니다. 남자 여자가 이렇게 동그란 풀밭에 앉았는데 남자가 여자 손목을 쥐고 그 순간 여자는 부끄럽다고 고개를 약간 돌렸는데 너무 잘 그린 겁니다... 꼴찌했어요.

문성휘 : 맞아요. 그렇죠. (웃음)

박소연 : 걔가 꼴찌를 했다는데요! 청춘들이 풀밭에 앉아서 사랑을 얘기하는... 걔는 굉장히 감성 주의자였는데요. 꼴찌하고 저에게 욕 먹었죠. (웃음) 아니, 왜 그걸 그렸나 이렇게 전투장에서 앞으로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그려야지! 그림 참 잘 그렸는데...

문성휘 : 같은 청춘이라도 새벽에 비 오는데 우산을 마주 쥐고 한 사람은 손에 삽을 쥐고 한 사람은 빗자루 쥐고... 그러면 둘이 사랑을 속삭이는 게 되도 합격이 될 것을!

진행자 : 남쪽 표현으로 그 친구분이 참 센스가 없으셨네요. (웃음) 어쨌든 그 분위기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런 것보면 남쪽은 아드님이 발로 뻥뻥 찬 공이 찍어 놓은 물감 자국이 작품이라고 전시가 되고... 어찌보면 남한 미술은 참 허망하고 장난인 것 같기도 하고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박소연 : 그래요. 쓰잘데기 없는 저 그림이 어떻게 수상작으로 선정됐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문성휘 : 저도요. 얼마 전에 위작 논란이 있었잖습니까? 한국에서 일러주는 화가고 그 사람 그림이 최고가로 팔렸다고 하던데...

진행자 : 이우환 화백이요. 추상 화가이고 문제의 작품이 이우환 씨가 그린 것이냐 아닌 것이냐 논란이 있었죠.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전부 점이나 선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문성휘 : 저는 그 사람 작품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냥 천에 점을 찍어 놓거나. 그냥 보면 시퍼런 천 또는 시뻘건 천을 펴 놓은 것 같아요. 아, 기술적인 공감은 갑니다. 이렇게 선 또는 점을 그리려면 상당히 기술적인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분명 듭니다. 도대체 말하자는 게 뭐냐?

진행자 : 남한의 일부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저거 나도 그리겠네... (웃음) 그렇지만 문 기자, 그 작품은 기술적인 면이 아니라 예술적인 면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문성휘 : 그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진행자 : 북쪽에서는 어떤 목적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보면 뭘 전해주자고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는데요. 남쪽에선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남쪽의 예술이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렇죠. 일단 사상이 없으니까.

문성휘 : 그러니까 모든 정체성이 파괴되죠. 남한에 와서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추상파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고 환호합니다. 놀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난 전혀 감흥이 있어요. 손가락에 여러 가지 물감을 묻혀서 유리에 벅벅 문대고 그걸 작품이다, 그림이다 내놓으면 난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진행자 : 소연 씨 아들이 축구공 차서 그린 그림도 감흥이 없으시겠습니다.

문성휘 : 그렇죠. (웃음) 근데 한국이나 자본주의 사회엔 이런 난해한 그림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젊은 남녀들을 그린 그림도 있고 만화도 있고... 엄청 많죠.

박소연 : 말하자면 무질서함입니다. 북한식으로 보면 그런 것이고 남한에서 보면 자연스러움이죠. 임진각 쪽에서 가게 되면 전쟁 전에 기관차가 그대로 있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구호가 있고 그 옆 철조망에 사람들이 리본에 글씨를 써서 수 천 개를 묶어 놓았습니다. 북한식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 무질서해요. 저거 뭐야? 그냥 끈오라기를 잔뜩 걸어놓았네... 그런데 그냥 내가 걸고 싶은 곳... 높이 건 사람은 높이 건대로 낮은 곳에 건 사람은 그 사람대로 걸어 놓은 거죠. 그러다가 내가 몇 년 전에 써놓은 리본이라도 찾으면 금을 찾은 느낌이고요. 무질서하지만 자연스러운 대로 좋습니다.

문성휘 : 모든 게 자기 흐름이 있고요. 취향이 있고요. 북한 사람들도 다 취향과 관심 분야가 다릅니다. 보면, 사회 흐름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왜? 북한이라는 나라, 사회주의 국가의 결함이 그겁니다. 똑같이, 하나 같이 움직여라, 시키는 대로만 해라.

진행자 : 사회주의의 결함입니까? 북쪽의 결함이 아니고요?

문성휘 : 스탈린이나 모택동 주석 시기를 생각해보세요. 사회주의 초기엔 모두 그랬고 그게 가장 심한 곳이 북한이고요. 지금까지도 그걸 강요하고 있다는 게 참...

박소연 : 사회주의 미술 작품은 사람들이 한 가지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한 사람이 주체사상을 위하여 그러면 그 뒤에 수 십 명, 수 백 명의 사람들이 한곳을 쳐다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그림은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도 동작도 다 각기 다릅니다. 자유분방하죠. 그림을 보면 자유롭구나... 그게 안겨옵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보면 여유가 보입니다. 자유로울 수 있는 여유...

추상화는 눈으로 우리가 익숙히 보는 사람, 과일, 풍경 등의 형상을 그리지 않습니다. 점과 선, 면, 색깔로 구성된 그림인데요. 그래서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그림을 보는 공간과 시간, 그림을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도화지에 찍힌 점들이 어느 날은 내 눈물처럼 보이다가 어떤 날은 나를 찌르는 바늘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으로 보는 그림. 남쪽의 미술, 어떠십니까?

오늘 얘기는 여기 까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그리고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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