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들의 구석기 겨울여행

지난 17일 겨울 여행으로 전곡 선사유적지를 방문한 한겨레계절학교 소속 탈북 청소년들이 대형 눈사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7일 겨울 여행으로 전곡 선사유적지를 방문한 한겨레계절학교 소속 탈북 청소년들이 대형 눈사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FA PHOTO/ 노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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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겨울 방학을 맞아 학습 지도를 받기 위해 지난 1월 4일 한겨레 계절학교에 입교했던 탈북 청소년들이 1월 20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수료에 앞서 지난 17일 한겨레 계절학교가 열린 연천에서 하루 일정으로 체험활동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의 체험활동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딸기가 작은 것도 맛있으니까 그거 다 따야 합니다.”

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온실에서 수확 체험이 한창입니다. 밖은 한 겨울이지만 온실 안은 15도 내외로 외투 없이도 지낼 수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따기가 무섭게 입속에 하나씩 넣습니다.

탈북청소년 1: 이게 진짜 맛있는 것 같애.

탈북청소년 2: 정말 맛있어요. 시장에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탈북청소년 3: 겨울철에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푸르른 딸기밭을 보니까 좀 신기해요.

얼마 되지 않아 탈북 청소년들은 빨갛게 익은 딸기를 바구니 가득 담습니다. 처음 해보는 딸기 수확인데도 손놀림이 제법 빠릅니다. 이곳 딸기 체험농장은 쪼그려 앉아서 따는 게 아니라 서서 딸기 수확을 할 수 있게 재배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유미 탈북청소년(가명): 북한에서는 딸기하면 자연적으로 땅에서만 재배하는데요. 봄철에 땅에서 나는 것만 먹는데 여기는 이렇게 위에 있고 더구나 깔끔하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탈북 청소년들이 방문한 이곳 딸기농장은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에 한탄강이 있어 자연 경관도 수려한데요. 겨울철엔 온실(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를 하기 때문에 겨울 방학만 되면 이 곳을 찾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2주 가까이 학업에 매달린 탈북 청소년들도 기분 전환을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농장 주인은 딸기의 성장 과정부터 따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농장 주인: 겨울철 딸기는 70% 정도만 익어도 맛있습니다. 그렇지만 될 수 있으면 빨갛게 익은 것을 따주세요. 딸기는 이렇게 손바닥으로 감싸서 하늘을 향하게 하세요. 그렇게 되면 뒤에 꼭지 부분이 접히겠죠. 그리고 이렇게 땅바닥쪽으로 당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딸기 따러 가면 이렇게 밑으로 당겨서 따는데요. 그렇게 따면 잘 안 따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잡아당기다 보면 그 옆에 있는 파랗게 생긴 딸기들이 미쳐 익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딸기 수확체험이 끝난 뒤 딸기 아이스크림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얼음조각 4덩어리와 소금 한컵을 넣고, 뚜껑을 닫고는 방금 딴 딸기 하나를 넣어주면 첫 번째 준비는 끝. 그런 다음 딸기를 숟가락으로 열심히 으깹니다. 으깬 딸기에 흰우유와 딸기잼을 적당히 넣습니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닫고 이때부터는 열심히 흔들줘야 합니다.

(현장음)

아이스크림을 다 만들고는 마지막으로 딸기잼 만들기 체험도 했는데요. 딸기잼을 만드는 순서는 간단합니다. 딸기를 손으로 으깬 다음 설탕을 한컵 넣어주고 끓이면서 잘 저어주면 됩니다.

농장 주인: 아까 비닐 장갑 하나씩 다 나눠드렸죠? 장갑을 끼고 딸기를 이렇게 으깨세요. 으깨기가 끝나면 여러분 앞에 있는 냄비를 전기에 연결하세요. 전기 꽂고 나면 밑에 있는 온도조절기를 강에 맞춰주세요.

탈북 청소년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딸기잼을 보며 신기해 했습니다. 농장에서 나눠준 빵에다 직접 만든 딸기잼을 발라서 먹기 시작합니다.

기자: (맛이 어떤 것 같아요?)

탈북청소년 1: 적당히 달고 그러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기자: (잼을 들고 왜 돌아다니세요?)

탈부청소년 2: 제가 만든 것을 친구들과 나눠 먹으려고 나눠주고 있어요.

기자: 친구 꺼 먹어 보니까 본인이 한 거 보다 더 맛있어요?

탈북청소년 3: 네, 더 맛있어요.

탈북청소년 4: 원래 딸기잼 안 좋아하는데요. 친구들과 함께 이렇게 만들어 먹으니까 맛있는 것 같아요.

딸기체험이 끝나고 탈북 청소년들은 연천 구석기 축제가 열리는 전곡 선사유적지로 향했습니다.

겨울 방학을 맞아서인지 유적지 입구부터 학생들이 크게 북적입니다. 축제장에 들어서는 길목에는 햇볕에 반짝이는 얼음꽃들이 관람객을 반깁니다.

기자: 여기 겨울축제에 오니까 탈북 청소년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차미리 북한인권시민연합 간사: 아이들이 워낙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이런 데 오면 되게 좋아해요. 그리고 선생님들이랑 잘 지내서 너무 좋아요.

기자: 오늘 맑고 날씨가 좀 풀려서 야외 활동하기에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차미리 북한인권시민연합 간사: 네, 그렇지만 놀다가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죠. 혹시 모르니까 구급약 같은 것도 준비했습니다. 방심할 때 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각별히 신경쓰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구석기인들의 겨울생활 체험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지만, 탈북 청소년들에게 가장 관심을 끌 게 한 것은 역시 눈썰매장입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썰매를 즐기다 보면 추위는 어느새 달아납니다.

(현장음)

눈썰매장 옆에는 빙어잡이 체험장도 마련돼 있습니다. 특히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둘러앉아 생고기를 나무꼬치에 끼워 직화로 구워 먹는 모습에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 한참을 놀고 난 탈북 청소년들은 휴식을 위해 온실 안 장터로 들어갔습니다. 이곳 장터 안에는 국수를 비롯해서 순대, 지짐 등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돼 있습니다.

기자: 재미있게 썰매 탔어요?

김은미 탈북청소년(가명): 저도 재밌었고요. 친구들과 함께 놀아서 너무 좋았어요.

기자: 여기서 뭐 드시고 싶으세요?

박미정 탈북청소년(가명): 핫바 먹고 싶어요.

기자: 많이 배고파요?

박미정: 배고프지는 않은데요. 그냥 핫바를 좋아하세요. 신나게 놀았더니 먹고 싶네요.

기자: 뭘 드실 거예요?

정진향 탈북청소년(가명): 선생님들이랑 오뎅 먹으려고 왔어요.

몸을 녹이고 배를 채운 이들은 유적지 내 선사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구석기 시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현장음)

박물관 입구를 통과해 상설전시관에 들어서자 선사시대의 인류와 동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만달인 등 인류의 전신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 모형 외에도 매머드,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매머드 뼈 움집도 재현돼 있는데요. 전곡 선사유적지는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으로,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영상물: 날카롭게 날을 세운 석기는 요긴한 도구였는데 그 중에서도 주먹도끼는 가장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냥을 떠났던 이들의 귀환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함수연(홍익대 3학년): 연천에 왔으니까 연천이 어떤 곳인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아이들도 이번 현장체험을 통해 잘 이해가 됐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관심을 가졌던 것 같고요. 특히 주먹도끼 같은 경우 직접 박물관에 와서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박물관 관람을 모두 마친 탈북 청소년들은 선사시대 선조들의 놀라운 손기술에 탄복했습니다. 구석기시대 시간여행을 통해 한반도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탈북 청소년들은 말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도 이런 구석시 시대에 대해서 배웠어요?

박수정 탈북청소년(가명): 저는 배운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기자: 북한에서도 역사 시간이 있어 배울 것 같은데요.

박수정 탈북청소년(가명): 김정일 혁명역사 이런 것만 가르쳐서 배우지 못했어요.

백은희 탈북청소년(가명): 여기 와서 보니까 선사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마치 그 시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