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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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장벽 붕괴 11개월만인 1990년 10월 놀랍게도 독일 통일이 이뤄졌는데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어느덧 25주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자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의 통일 과정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데요. 이번 주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자유와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이제 남아있는 장벽은 적대감의 장벽이라며, 이를 허물어뜨려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메르켈 :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아 기쁨만이 아니라 독일의 역사가 지워주는 책임도 함께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은 이날 오후 7시, 25년 전 장벽이 붕괴 된 그 날에 맞춰 빛이 나오는 8천 개의 풍선이 일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며 장벽이 사라지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풍선은 장벽 붕괴로 자유를 얻은 기쁨을 표현한 겁니다. 풍선 하나하나에는 행사에 참여한 독일인들이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글을 담았는데요.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풍선 15개에 통일을 기원하는 글을 띄워 보냈습니다. 이에 맞춰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가 연주됐는데요. ‘환희의 송가’는 1990년 독일통일 선포 당시에도 울려 퍼진 곡이기도 합니다.

(환희의 송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약 10개월 전 당시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연설에서 “베를린 장벽은 50년, 아니 100년도 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호네커의 이러한 호언장담은 1년도 안 돼 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정이 파탄 난 동독 정부는 1989년 5월 부정 선거로 살 길을 모색했고, 성난 민심에 불을 지폈습니다. 동독 주민들의 자유를 향한 저항은 끊임없이 이어졌죠.

동독 정부는 급기야 11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서독여행을 상시 허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 동독 공산당 대변인 샤보브스키는 “여행 자유화는 언제부터입니까?”라는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바로 지체없이 시행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샤보브스키가 그날 당 중앙위원회에서 승인된 여행법 개정안 내용을 설명하다가 실수로 잘못 말한 겁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은 텔레비전 통해 생중계됐고, 이를 지켜본 동독 사람들은 곧바로 베를린 장벽 앞으로 몰려갔습니다. 베를린을 둘러싼 브란덴부르크 주의 국경 초소 장벽 통로는 이렇게 해서 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우연찮게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서독 방송 ARD 뉴스(1989.11.9): 오늘 밤 우리는 감히 11월 9일을 역사적인 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동독이 지금부터 그들의 국경을 모두에게 개방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은 그저 우연히 무너진 건 아니었습니다. 브란트 서독총리가 꾸준히 추진해온 동방정책과 자유를 향한 동독인의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주역이 있다면 바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입니다. 1986년부터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동유럽 민주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이 독일 통일의 기폭제가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과 손을 잡고, 냉전 종식에 앞장섰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25주년을 맞은 베를린 현장을 찾아 독일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 : 통일 과정에서 당시 동독군 병력 17만 명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는데요. 동독 군인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동독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군을 통해 동독 군대의 무장 해제를 명령한 사람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입니다.

동독에서 성장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방송에서 “옛 동독 주민들의 서독을 향한 대탈출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몇 년간 동독지역 작센 주는 떠난 이들보다 들어온 이들이 더 많았다는 사례를 들어 ‘탈동독 현상’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동독지역 실업률은 10.3%로 통일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서독지역 실업률 6%에 비하면 여전히 2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동독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쪽으로 대거 이동하는 바람에 동독지역은 인구 고령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독일은 장벽 붕괴 이후 옛 동독 지역에 2조 유로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했던 동·서독 지역 간 경제 장벽은 지난 세월 동안 많이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최근 펴낸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보고서를 보면 “독일은 동독지역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경제성장에서 큰 진전을 보였지만 동독지역의 생활 수준은 아직도 서독의 3분의 2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동독 지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 지역의 67%에 그쳤습니다. 통일 이듬해인 1991년 33%에 그쳤던 때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지만, 2000년의 61%와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슈뢰더 독일 자유대학 정치학 교수 : 통일이 되는 날 북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 말을 해줘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분명히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남한처럼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릴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동서독 간의 경제 격차를 들며 독일 통일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독일인의 80% 이상은 “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하엘 부르다 훔볼트대학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통일의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터널을 지나면 빛이 보이기 마련”이라며 독일의 미래에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두 달 후 독일을 방문해 대통령의 의지를 보다 구체화시켰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지금 한반도의 휴전선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요. 박 대통령은 당시 옛 베를린 장벽을 찾아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 그 치열한 힘들이 모여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우리 휴전선도 반드시 무너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고 나서 박 대통령은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새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 독일의 통일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메르켈 총리는 “독일 통일은 행운이자 대박”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박근혜 :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 독일과 사회통합과 경제통합 및 국제협력 등 분야별로 다면적 통일 협력 체계를 구축해서 독일의 통일 경험을 효과적으로 공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메르켈 : 독일은 40년 분단됐고, 한국은 거의 70년간 분단됐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는 게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된 지금, 잿빛의 동독지역은 빛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동베를린에서도 낙후지역이었던 하케쉬 마르크트는 이제 베를린 최고 번화가 중 하나로 바뀌었습니다.

크리스티안 (독일인):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엔 모든 게 엉망이었죠. 그때 집들은 곳곳에 전쟁 때 입은 상처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요.

이제 지구 상에 남아있는 분단국가는 한반도뿐입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는 한반도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줬습니다. 어쩌면 독일은 운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을 통해서 알게 된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통일은 준비했을 때 온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