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시인의 세계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7.07
leeyooksa-620.jpg 경북 안동의 이육사(李陸史.1904∼1944.본명 이원록) 선생의 묘를 찾은 외동딸인 이옥비(李沃非) 여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7월입니다. 7월이면 떠오르는 시가 있지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생각납니다. 이 시 귀 중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청포를 입은 손님은 과연 누구일까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육사 같은 애국시인을 시작으로 남북한 시인들이 쓰는 시 세계를 알아봅니다.

이육사 시인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임채욱 선생: 이육사는 아시다시피 애국시인이지요. 지금 말씀하신 청포를 입은 손님은 우리 독립을 이끌 염원의 대상이 아닐까 싶군요. 이육사는 다른 작품 <광야>에서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표현으로 독립운동을 이끌 어떤 영도자를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육사 자신이 열 몇 번이나 감옥에 들락날락 했을 정도로 애국을 했던 독립운동가였지요. 육사란 이름도 죄수 번호에서 왔다는 것 아닙니까? 어디 육사뿐이겠습니까? 시인으로써 애국하던 분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애국시인을 둔 남북한 평가가 다른 경우도 있겠지요? 비단 애국시인뿐 아니더라도 민족항일 시기를 거친 시인을 보는 눈이 다를 것 아니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그렇지요. 이육사 외에 이상화나 윤동주 같은 시인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일제에게 저항한 애국시인으로 보고 있지요. 이상화 시인은 그의 작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서 설령 봄이 오더라도 봄조차 빼앗기는 기막힌 식민현실을 묘사하면서 저항의식을 직정적으로 내 뱉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이상화시인은 애국시인으로 평가됩니다. 윤동주시인도 지난 번 이 시간에 한 번 다룬 것처럼 남북한에서 다 애국시인으로 좋게 평가되고 있지요.

이번에는 이야기를 바꿔보겠습니다. 먼저 시란 어떤 것이고 시인은 남북한에서 어떻게 다를까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임채욱 선생: 네. 시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시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가 뭣인가를 한 번 짚어보지요. 어떤 사람은 경영자의 외로움을 시가 달래주더라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삶이 아플 때 응급약처럼 쓰이더란 말도 했습니다. 또 누구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시대에 인간성을 지킬 마지막 보루가 시가 된다고 단정도 합니다만, 이 말은 어떻습니까? “죽으려고 했다. 그때 한 편의 시가 나를 건졌다”라고 절절하게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걸 시의 효용성이란 말로 표현하면 너무 세속적이 되지요? 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산문과 비교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쌀로 밥을 짓는 것과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생각할 때 쌀로 밥을 짓는 것은 산문, 즉 수필 같은 글을 쓰는 것이고 쌀로 술을 빚는 것은 시를 쓰는 일이라고 합니다. 쌀로 밥을 지을 때는 쌀의 변화가 물리적 변화이지만 쌀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화학적 변화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 형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지요. 밥하기 보다 술 빚기가 어렵겠지요? 또 이렇게 비유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질문 한 번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은 축구와 야구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나요? 축구? 야구? 네. 누군가 말했습니다. 축구는 시를 닮았고 야구는 소설을 닮았다고 합니다. 축구는 야구보다 의외성이 강해서 시적 함축이 나오고 야구는 타자가 홈, 즉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는 야구보다 더 본능에 가까운 광기를 느끼게 합니다. 시를 짓는 길에는 술도 한몫한다고 합니다. 술은 일상을 벗어나서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시를 짓는 작업에는 아폴로적인 사색보다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이 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은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몽환 속에서 파악하려는 행위를 하지요.

남북한에서 시인이나 시 짓기가 다른 부분도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이런 것은 있습니다. 가령 앞에서 나온 이상화시인 경우 남쪽에서는 그의 <나의 침실로>같은 낭만주의 시를 선호했다면 북쪽에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현실주의 작품을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선 남한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백석 같은 시인은 작품이 언급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서정시가 평가되지 못하고 있지요. 남한이나 북한에서 시에 대한 사념이나 관념이 다를 수야 없지요. 시 짓기도 시상을 가다듬고 거기에 맞는 언어를 선택해서 시적 표현을 하는 과정이야 세상 어느 곳 시인이더라도 같을 터이지요. 그런데 지어진 남북한 시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요? 제 생각은 시상을 가다듬을 때 남쪽 시인들은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개인적인 느낌과 사색도 시 소재로 선택하는데 비해 북한 시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선 시상을 신비화해서 영감(靈感)에서 찾으려는 것을 못하게 하지요. 그러다보니 시어를 선택하는데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북한 문학이 근거하는 주체사실주의란 것이 디오니소스(Dionysus, 고대 그리스 신화의 술과 풍요의 신) 적인 창작태도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주체사실주의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다가 ‘우리식’이 붙은 사실주의지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인 창작방식이라면 주체사실주의는 북한에서 등장한 창작방식으로 사회주의사실주의가 사람을 사회역사 발전의 주체로 나타내지 못한데 대해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을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사람이 밟아보지 못한 광대한 밀림이 있다고 합시다. 이 밀림이 아무리 신비스럽고 아름답더라도 사람이 보지 않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밀림 그 자체 만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밀림을 봐야만 그게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꽃도 사람이 이름을 붙여 줘야만 꽃으로 살아난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요. 사람이 없는 세상에 꽃들만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주체사실주의란 것은 1970년대까지 지켜왔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른 문학창작방식을 문패만 바꿔 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남북한 시인들의 정신세계와 그에 따른 작품활동은 남북한 주민들이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데도 아주 중요한 다리(교량) 역할을 할 텐데요?

임채욱 선생: 일단은 다른 면모가 많이 보이지요. 한국에서 보면 시와 관련해서 한국에선 별별 희한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가령 어떤 시인은 세계명시를 한 자리에 모은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6권을 발간합니다. 국내시인 177명과 해외시인 223명의 작품 650편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중국 시인 두보와 독일 시인 하이네와 릴케, 그리고 헤세가 있고 한국시인 소월이 있으며 프랑스 시인 보드레르가 있지요. 이렇게 세계의 온갖 서정시 650편을 모아서 분석해보니까 소설이 사람살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서정시는 어느 시를 보더라도 사람의 속마음이 똑 같은 것을 알려준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작업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또 서울 지하철 역 15군데에 시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항아리 안에는 시를 인쇄한 두루마리를 둬서 누구나 끄집어내서 읽을 수 있게 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세상에 쓸모없는 시는 없다는 신념으로 낙선작만 모아서 시집으로 출판해주는 사람도 있고 시를 잘못 인용하거나 틀리게 쓰여 진 시를 찾아서 고쳐주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행태에 비한다면 북한 시인들은 조직에 속해서 지정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작업에 매진하겠지요. 무엇보다 북한 시인들은 사람들을 문화 정서적으로 교양하기도 하거니와 나아가서 정치사상적으로도 교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더라도 남북한 시인들은 남북한 주민들이 동질성을 갖도록 연결해 주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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