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장기시합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7.14
korean_chess_b 평양 시민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선 장기를 두면서 ‘장군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이야’, ‘포장이야’ 하든가 ‘장훈아’ ‘멍훈아’ 하지 ‘장군아’라든가 ‘장군 받아라’라고는 안 한다는 편이에요

한국의 한 장기 단체에서 남북 통일 장기 경기를 하자고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남북한 장기 두기는 어떤 광경을 보이는지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의 대한 장기 협회 단체가 있지요.

임채욱 선생: 지난 5월 말 대한장기협회란 단체에서 남북통일장기경기 추진위원회란 조직을 만들어서 남북통일장기경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추진위원회 김홍규 위원장(64)은 “장기를 통해 남북이 마주 앉게 되면 대화와 소통의 문이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기는 전통적으로 남북한 모두에서 즐기는 민속게임이라서 남북이 공유하기에 딱 좋은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대로 남북 장기시합이 합의되면 어떤 물꼬를 틀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임채욱 선생: 아마도 한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장기교류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양입니다. 이 단체는 9년 전인 2008년부터 이 경기를 추진했다고 하니까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추진위원장 말로는 첫 대회를 내년 5월 10 일 쯤 평양에서 열기로 하고 경기 때 쓸 장기판과 장기알도 이미 만들어 뒀다고 합니다. 만일 성사가 된다면 장기판과 장기알도 만 세트를 북한에 기증 하겠다는군요. 과거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 했던 것처럼 장기판 1만 세트를 들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참 장기판과 장기알도 만들어 뒀다니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장기판 재질은 어떤 것으로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장기판 규격은 한국에서 쓰는 크기로 보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장기 알 글자가 전통적인 한(漢)과 초(楚) 대신에 통(統)과 일(一)로 됐군요. 장기판 옆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문구를 넣었어요. 장기판 가운데는 한반도 지도를 아로새겼고요. 문제는 북한은 장기판이 매우 커서 남쪽의 서너 배가 되고 차, 포, 상, 마, 졸, 같은 장기알도 한글로 쓰여 있지요. 그래도 시합은 다 합의하기 나름이니까 해결되겠지만 기증하는 장기판 1만 세트가 호응을 받으려면 북한에서 사용하는 크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도 싶군요.

장기판과 장기 알 모양이 다른데 장기 두는 방식도 다른 면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장기 두는 방식은 다를 것 없지요. 다만 북한에선 장기를 두면서 ‘장군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이야’, ‘포장이야’ 하든가 ‘장훈아’ ‘멍훈아’ 하지 ‘장군아’라든가 ‘장군 받아라’라고는 안한다는 편이에요. 왜 그럴까요? ‘장군’ 할 때 ‘장군’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 통치자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 되지요. 얼마나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까? 그래서 통일장기 처럼 ‘통’이나 ‘일’하고 외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장기는 보통 ‘장군아’하고 소리치는 재미로 하는데 ‘장훈아’ 하면 재미는 있을까요? 그런데 ‘장훈’이라 한다면 이 ‘장훈’은 어떤 뜻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 사전에서 ‘장훈’은 ‘장기놀이에서 장군을 이르는 말’, ‘멍훈’은 ‘장기놀이에서 멍군을 이르는 말’로 돼 있습니다. 한자 표현으로는 어떤 글자인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남북한 장기인구라든가 현황은 어떤가요?

임채욱 선생: 김홍규 위원장 말로는 한국에서는 장기 동호인 수가 10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바둑 인구가 900만 명이라는데 바둑 보다 많다는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북한에서는 장기가 장려되는 편이지요. 나라에서 육성하는 국기(國技)라고 까지 말할 정도지요. 북한에서는 인민체육대회에도 장기부문이 있습니다. 이 부문에서 3번이나 우승을 해서 선수권을 보유한 장기영웅이 있는데, 40대 중반으로 4살 때부터 장기를 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장기를 단순한 놀이로 생각하지 않아서 북과 남 그리고 해외동포가 참가하는 장기경기가 열린다면 좋겠다는 말도 합니다. 북한에는 또 군사장기라는 것도 있습니다.

군사장기는 어떤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군사장기는 장기 알 명칭이 공병, 비행기, 포, 고사포, 탱크, 지뢰, 어뢰정, 구축함, 잠수함, 전투함, 수뢰, 군기 등 12개 말로 된 장기입니다. 그러니까 한편의 말이 12개죠. 이 알 들의 기능을 보면 공병은 지뢰를 잡고 비행기는 탱크를 잡고 전투함은 구축함을 잡으며 또 포는 탱크를 잡고 탱크는 고사포를 잡고 고사포는 비행기를 잡는 식으로 돼 있습니다. 알들 배치를 보면 장기판에는 바다와 육지가 있어서 군함과 수뢰는 바다 기슭의 놓고 싶은 곳에 두고 다른 것들은 육지의 아무 칸에나 두는데 장기알 글자가 안보이게 뒤집어 둡니다. 경기방법을 보면 자기진지에서는 직선으로 마음대로 가지만 적의 진지에서는 한 칸씩 밖에 못 움직입니다. 군함은 자기 해안에서만 마음대로 움직이나 바다를 건널 때는 가고 싶은 해안 한 곳에서만 닿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는 육지에서는 다른 장기알과 같이 움직이고 바다를 건널 때는 상대편 해안 한 곳에만 내려야 합니다. 지뢰와 수뢰는 한 번 놓으면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승패결정, 즉 이기고 지는 것은 상대편 군기를 잡든가, 나머지 알들을 다 잡으면 이깁니다. 장기알을 덮어뒀기 때문에 이쪽에서 움직일 때도 상대방 말이 무엇인지를 짐작으로 잡으려고 덤빕니다.

장기나 바둑은 우리나라 사람이 오래 전부터 즐겨온 오락물이고 오늘날에는 스포츠로 발전됐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바둑을 더 많이 두는 것 같고 북한에선 장기를 더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오락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사돈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합니다.

“사돈 바둑 두십니까?” “아니 못 둡니다.” “사돈, 장기는 둬요?” “못둡니다” “사돈 그럼 꼰은 둘 줄 알아?” 이 대화를 잘 들어보시면 처음에는 아주 경어를 서 사돈에게 바둑 두느냐고 물었고 못 둔다니까 낮춤말로 장기 두느냐 물었고 장기도 못 둔다니까 아주 낮춤말로 꼰은 둘줄 아느냐고 조롱하듯이 말합니다. 이게 옛날 우리 선조들이 바둑, 장기, 꼰, 꼰은 표준어로는 ‘고누’지요. 이 세 가지 위계, 즉 높이가 이런 순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면 고누는 모르지만 바둑이나 장기는 각기 다 좋은 점을 가졌지요. 바둑은 상대방과 협력하면서 자기 세력을 늘려가는 것이고 장기는 상대방을 잡아 없애는 것이어서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는 바둑이 더 적합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는 내 말이 죽으면서 다른 것을 살린다는 규칙대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북돋을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바둑알은 모두 똑 같은 평등관계지만 장기 알은 차, 포. 마, 상이 다 자기 기능대로 움직이니까 이 사회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즉 사회 축도판 이라고도 좋게 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장기도 바둑처럼 두뇌운동이어서 두뇌발달에 아주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지요. 1986년 미국 피스버그 대학 교수 연구에 의하면 초등학교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장기로 테스트를 했더니 장기가 우뇌발달에 효과가 있어서 창의력과 직관적 사고, 예술 능력 향상에 좋았다는 결론이 났다고 해요. 아무튼 바둑이든, 장기든 심지어 고누이든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남북한과 해외동포가 마주 앉아서 장기판을 둔 대국을 한다면 장군아! 라고 외치지 않고 통이야! 하던, 일이야!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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