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달 8월, 해방의 달 8월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8.04
korea_flag_b 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8월입니다. 8월은 우리 민족이 잊을 수 없는 광복의 달이고 해방의 달입니다. 광복도 있고 해방도 있는 것이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이 날을 광복의 날이라고도 하고 해방의 날이라고도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의 ‘광복, 해방의 달’의 의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시대적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광복과 해방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의미상 차이가 있지요.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가 있다면 해방은 외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는 의미가 강하지요. 그래서 광복(Independence)에는 우리민족이 항거를 하고 투쟁을 했다는 것이 숨어있는데, 해방(Liberation)에는 외세의 힘으로 풀려나고 벗어났다는 의미가 느껴지는 편이지요.

그럼 어느 것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주권의 회복이란 뜻에서 보면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3년간 군정을 편 다음 새 정권을 세운 날이 진정한 광복의 날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독립항쟁을 해왔기에 그것이 1945년 8월 광복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방의 의미보다는 광복의 의미가 더 크지요. 따라서 광복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8월 15일을 남쪽에서는 광복절이라 하고 북쪽에서는 해방기념일이라고 하잖습니까?

임채욱 선생: 상해임정,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대부분은 수도가 있던 남쪽으로 옵니다. 임정요인들이 풍찬노숙 하면서 자나 깨나 바란 것이 광복이었지요. 광복을 외치면서 광복군을 조직해서 훈련하고 광복이란 이름의 단체들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광복이란 개념이 풍미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좌익계열 사람들은 해방이란 이름을 선호해서 해방신문, 해방일보 등 해방이란 이름의 단체를 많이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도 해방이란 이름의 기념일, 단체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방기념일이라고도 하고 조국광복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기념일 명칭문제는 이쯤 해두고 이번에는 그날 광복으로부터 올해가 72년 되는 해니까 많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삶의 외형도 많이 변하고 의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번 일별해보면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하나의 사람집단은 민족을 이뤄서 강역을 차지하고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런 바탕 안에서 자연을 이용해서 산업을 일으키고 의식주생활을 영위합니다. 또한 그 민족구성원들은 나라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민족문화를 창조합니다. 남북한의 우리민족도 광복되던 날로부터 70년이 넘게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동족상잔의 전쟁도 했습니다.

네. 민족, 강역, 역사 순으로 그 변화해온 모습을 한 번 훑어보도록 하지요.

임채욱 선생: 광복이후 38선 남쪽에서는 민족을 찾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운다고 했고 물론 이를 방해하는 좌익활동가들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지요. 북쪽에서는 계급이 민족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지요. 그래서 이 땅에는 민족론자와 계급론자가 대립하는 양상을 띄었지요. 계급론자들은 프로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 나중에는 나라도 없어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었지요. 그걸 북쪽과 남쪽에서 다 실현하려고 날뛰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도 남쪽보다 북쪽에서 민족을 더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일성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김일성은 1991년 8월 어느 날 느닷없이 자기는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민족주의자이고 국제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요? 아시다시피 1990년 대 초부터 동부유럽이 해체되면서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권 전체의 좌절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재빨리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아들 김정일 선대통치자는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약간 상치되는데 김정일 말이 진심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북한이 보는 민족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 사는 동포는 피는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부르죠아 민족이고 북쪽 사람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프로레타리아 민족이라고 보지요. 이렇게 다른 성격의 민족을 하나로 만들려고, 즉 부르죠아 민족을 프로레타리아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 ‘남조선혁명’이지요.

남쪽에서는 민족에 대한 관점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선 좌파활동가들이 북한의 민족강조 주장에 호응해서 외세배격을 외치는데, 오히려 우파진영에서는 탈 민족주의 경향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민족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단일민족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민족을 떠나서는 어떤 정책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민족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여기에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북한동포들은 분명 혈통을 같이하는 민족인데도 ‘주체적 민족’을 강조하니까 같은 민족이 아닌 것처럼 되지요. 그래서 남북한 동포들은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 말고 통일될 때까지는 정치적 개념인 민족보다 인류학적 개념인 동족이라고만 하면 어떨까 싶군요.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강역(疆域)에 대한 인식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영토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남쪽 대한민국 헌법에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 섬들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지역은 백두산민족 또는 김일성민족의 김씨 집안이 다스리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지요. 그 바람에 백두산 천지가 반으로 쪼개지고 백두산 봉우리들이 나눠지는데도 남쪽에서는 모르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뿐이 아니지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강역이였던 백두산 너머 만주 땅을 향한 아쉬움과 상실감도 있지요. 그래서 이런 시를 읊게 합니다.

백두산 너머 일만의 터전을 잃고/ 오늘도 지도 조각만 들여다보면/

통분한 생각, 가슴속에 불이 붙는데/ 줄어든 북한 땅마저 어둠 속에 던져두고/

겯고 틀고 헐떡이며 살아야 하나! (이은상)

백두산과 독도 지키기가 우리 강역에 대한 영토의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분단의 역사를 둔 관점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남쪽의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고 나아가서 허균이가 지은 소설 <홍길동 전>에서 꿈꾸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동사회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북한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동사회는 공자가 말했다고 하죠. 능력 있는 사람은 언제나 쓰임이 있고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 있고 노인은 자기 생을 편안하게 끝낼 수 있으며, 병자나 불쌍한 사람은 부양되는 세상이 바로 대동사회라는 거죠. 허균은 그의 소설에서 대동사회가 실현되는 율도국을 그리고 있지요. 허균의 소설뿐이 아니고 동양사회에선 이런 유토피아를 그린 글들이 많이 나타났지요. 그런데 북한이 대동사회를 만든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러자면 조건이 있습니다. 김씨 왕조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 국가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말은 사회주의 국가라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나라가 됐다고 하지요. 헌법도 명칭만 사회주의 헌법이지 실제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 봐야 하지요. 혁명과 건설을 한다면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만 110개를 조성하고 혁명박물관, 혁명사적관 88개가 만들어 졌고 혁명사적 기념비는 수 천 개도 더 되게 만들어 진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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