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시티 운동과 만리마 속도 운동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6.09.02
manrima_movement_b 북한이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속도전인 '만리마 운동'을 주제로 한 행진곡 '우리는 만리마 기수'를 제작했다고 노동신문이 2016년 6월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청봉악단의 공연 일부 화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만리마’는 김일성이 내놓은 ‘천리마’에 김정일이 내놓은 ‘속도전’을 합친 것”이라며 “‘만리마’는 ‘천리마’ 보다 날개가 열 배나 길어 얼마 못 가 날개가 부러질 것” /북한에서 그간에 벌인 속도전만 해도 50년대에 평양속도, 60년대 비날론속도, 강선속도, 70년대 충성의 속도, 70일전투속도, 1백일 전투속도, 80년대 80년대 속도창조운동, 90년대도 90년대 속도창조운동 등등 수없이 많았지요.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올림픽 슬로간이지요? 이런 슬로간 아래,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 보다 높게 뛰려고 구슬땀을 흘리던 선수들도 다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에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는 빠르고 멀리 높은 것만 가치 있는 것인가, 보다 느리게 보다 가깝게, 보다 낮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없는 것일까 말입니다. 스포츠경기에서는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가 미덕이고 목표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꼭 그럴까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슬로시티운동과 북한의 만리마 속도운동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볼 까 합니다.

 

먼저 슬로시티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런데 질문하신 슬로시티운동은 만리마속도, 아니면 만리마  속도운동이란 것과는 비교를 하기 가 어려운데, 굳이 말하자면 느리게 가자는 운동과 하루에 만리를 달리는 말처럼 속도감 있게 생산운동을 벌이자는 운동은 차원이 다르지만 느린 것과 빠른 것이라는 대비되는 개념에서 한 번 살펴보지요. 이제 말씀하신 슬로시티운동은, 우리말로는 느린 마을운동으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떻든 이 운동은 2000년대가 들어서기 전인 1999년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느림과 여유를 찾자는 운동이지요. 자세히 말해 보면 한 지역이 본래 가진 자연환경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전통문화, 이 전통문화에는 고유 음식, 시간관념, 계절감 등도 포함되겠습니다만 이런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 느긋하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찾는 삶의 자세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지요. 여기에서는 빠름의 편리함 보다는 느림의 즐거움과 행복, 세상의 속도보다는 세상의 깊이와 품위, 삶의 양보다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느려서 행복합니다”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운동은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한국에도 이 운동에 참여하는 지방자치체가 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이탈리아 4개 도시에서 출발했는데 현재 27개국 174개 도시가 슬로시티를 행하는 도시로 됐습니다. 한국에선 충청남도 예산, 전라남도 담양, 완도, 경상남도 하동, 경상북도 청송 등 10개 지역이 슬로시티 지정을 받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마을이 슬로시티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해당 나라 슬로시티 본부를 거쳐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슬로시티 운동이라서 그런지 전파되는 속도도 느려서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지도 않고 번개 속도로도 퍼져나가지 않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나름으로 구상하고 궁리한 끝에 받아들이고 있지요. 슬로시티 운동을 하는 마을을 간단히 묘사하면 마을에 있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한 달 뒤에 도착한다든가 음식으로는 절대로 패스트푸드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만리마 속도를 한 번 살펴보죠.

임채욱 선생: 천리마 속도도 빠른데 만리마 속도는 10배 더 빠른 것이죠. 천리마 속도는 천리마 운동에서 나온 것인데 천리마 운동은 1956년 12월에 시작됐어요. 김일성이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라는 구호를 앞세우면서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치기 위해 시작된 대중운동이지요.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말인데, 이 말 이야기는 중국에서 나온 것이지요. 중국 주나라 때 조보라는 사람이 목왕(穆王)에게 말을 한 마리 바쳤는데 목왕이 이 말을 타고 먼 서쪽에 산다는 서왕모를 만나러 가서 그여자에게 빠져서 귀국할 줄 모르다가,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에 천리를 달리면서 돌아올 때 탄 말이 천리마입니다. 이 천리마는 그래도 이런 전설이라도 가진 말이지만 만리마는 북한에서 지어냈을 뿐 실제 만리마 이야기는 전설로도 없지요. 잠시 옆길로 갑니다. 말처럼 인간에게 이득을 준 동물이 없겠습니다만 그래서인지 역사상 유명한 말도 많았지요. 고전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페기우스, 알렉산더 대왕이 타던 애마 부케팰러스, 중국에서 항우가 타던 오추마(烏騅馬), 주나라 목왕의 녹이(綠駬)가 있지요. 또 관운장이 탔다는 적토마도 이름이 있죠.

그럼 만리마 속도, 만리마 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만리마 속도는 김정은 시절에 와서 생긴 것이지요. 올해 5월 노동당 7차대회가 열렸지요? 이 때 사회주의 건설에서 새로운 속도전을 전개하자면서 만리마 속도창조 운동을 벌이자고 합니다. 당 대회에 앞서도 70일 속도전을 벌여 주민들이 힘들어하는데 또 새로운 속도전인 만리마 속도 창조 운동을 벌이니 주민들이 몹시 힘들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그간에 벌인 속도전만 해도 50년대에 평양속도, 60년대 비날론 속도, 강선속도, 70년대 충성의 속도, 70일 전투속도, 1백일 전투속도, 80년대 80년대 속도 창조 운동, 90년대도 90년대 속도 창조 운동 등등 수없이 많았지요. 2000년에 들어와서도 평양속도, 희천속도 등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속도전으로 53층 건물을 6개월 만에 후딱 지었으니 그게 부실공사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부실공사의 한 예로 1개 층에 36시간 걸려야 하는 철근용접을 4시간 만에 하고 그 단축을 속도전이라고 자랑하고 있지요. 지금 북한에선 “동무는 만리마를 탔는가”라면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내 달리자라고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축지법을 썼다고 하는데 말에게도 축지법을 가르친 모양입니다. 한 가지 괜한 걱정도 생깁니다. 북한에 지금 천리마 운동을 기념하는 천리마 동상이 수없이 많은데 이것을 두고 만리마 동상이라 할 수 없다면 새로 만리마 동상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군요. 노래야 <천리마 선구자의 노래> 대신에 <만리마 운동 행진곡>을 지어 부른들 큰돈이 들지는 않겠지만, 동상은 돈이 들 텐데 말입니다.

문성휘 기자가 진행하는 지난 5월 30일 ‘북한은 오늘’ 시간에 북한소식통이 전한 만리마 운동에 관한 내용 함께 듣겠습니다.

문성휘 기자: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만리마’는 김일성이 내놓은 ‘천리마’에 김정일이 내놓은 ‘속도전’을 합친 것”이라며 “‘만리마’는 ‘천리마’보다 날개가 열 배나 길어 얼마 못 가 날개가 부러질 것”이라는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천리마(김일성)’는 이미 송장이 된 지 오랬고 ‘속도전(김정일)’은 아직도 지옥의 불바다에서 행방 없이 헤매고 있다”는 농담을 주고받는다며 시대를 망각한 ‘만리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명을 다했다는 진단을 앞 세웠습니다. 김정은이 ‘200일 전투’를 앞세우며 들고 나온 ‘만리마’는 그동안 경제를 파탄낸 ‘자력갱생’이라는 암 덩어리를 더 키운데 불과하다며 인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만리마’는 날개도 펼치지도 못한 채 추락할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습니다.

슬로시티 운동과 만리마 운동이 한쪽은 느림을 추구하고 또 한 쪽은 속도를 추구하는 것이 다르지만 결국 둘 다 행복을 얻으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즐거움이나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객관적인 수치는 있는 것이지요. 외국사람 사례가 됩니다만 스위스 청년 두 사람이 조그만 자동차를 타고 제네바를 떠나 유고슬라비아, 지금은 몇 개의 나라로 나눠졌습니다만 이 유고슬라비아를 거치고 터키,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까지 갔다고 합니다. 21세기 지금이 아니라 1953년, 54년에 말입니다. 놀랄 일이지요. 이때 벌써 이런 여행을 했다니... 이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돈은 별로 없었지만 시간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치만을 가장 소중하게 누리기로 해서 그것을 얻었다. ”만리마 운동도 생산현장에서만 있는 일이라면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것이 온 사회에 풍조로 돼서 모든 일에 만리마정신이 강조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해질 거 아니겠습니까? 지난 날 한국에서도 빨리, 빨리 풍조가 있어서 그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지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이를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보여서 다행인데 어떤 사람은 공무원들에게 제발 일 좀 그만 하라고까지 주문하더군요. 너무 부지런해도 탈이 생긴다고까지 말합니다. 북한 일군들이나 주민들도 좀 여유롭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느림과 빠름의 미학이랄까 그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임채욱 선생: 한 음악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곡에서 빠른 악장만으로는 음악이 안 되고 느린 악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느린 악장에서 감칠맛 나는 기교, 애끓는 듯한 표현이 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느린 것을 제대로 잘해야 다음 빠른 악장이 힘들지 않게 연주된다는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이란 작가 있지요? 그는 “모레 해도 되는 일을 내일로 앞당기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렇지요. 창조도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릴 때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필요할 때 속도전도 하지만 느림의 미학도 향유할 수 있어야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은 느림의 가치를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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