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치자의 시 짓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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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얼마 전 한국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기 서재를 공개 한 바 있습니다. 공부하는 대통령으로 보이려는 것이겠지요. 봉건시대 왕들도 통치를 잘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필요한 기예도 갖추려 노력했다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그런 노력 중 글쓰기, 특히 시 짓기에 대한 얘기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글쓰기가 산문 쓰는 것을 말한다면, 시 짓기는 운문을 쓰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시와 운문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말씀했듯이 봉건시대 왕들도 공부도 하고 글쓰기 기예도 갖추려고 했지요. 이 기예를 육예(六藝)라고 하는데 군자들이나 왕들도 이를 익혀야 했지요.

공부를 한다면 당연히 경전(經典)을 읽고 역사(歷史)를 배우고 글을 짓고 시를 읊었는데 이밖에 육예가 있다니 어떤 것들입니까?

임채욱 선생: 쉽게 말하면 예의(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御), 글씨쓰기(書), 수리능력, 계산능력(數)을 말하지요. 오늘날 버전으로 말하면 에티켓, 예능, 사격이나 당구, 볼링, 차운전, 컴퓨터글쓰기 작업이라고 하면 될런지요. 요즘엔 글씨 쓰는데 캘리그래피란 기법도 있더군요. 또 인터넷으로 셈하는 것을 수(數)라고 봐야겠지요. 어떻든 이런 것들도 익혀야 되는 것이지요.

지난번에 산문이 쌀로 밥을 짓는 것이라면, 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고 말 하셨는데 어떻든 시는 짓기가 어려운 것은 틀림없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산문이 그냥 걷는 것이라면 시는 무용이라는 비유도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를 쉽게 지을 수 있다고 보는지 시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지요. 하기야 사람이 말로써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문학이고 그 중에서도 시는 문학의 꽃이라고 하니까 누구라도 한 번 쓰고 싶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의 지적처럼 인공지능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일 수는 없다는 것 아닙니까?

시를 읊조리게 하는 가을입니다. 누구나 읊을 수 있는 것이 시라고 하겠는데 남북한 최고통치자들도 시를 사랑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시는 누구나 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들도 시를 읆지요. 남북한 통치자들도 시를 읊었습니다. 한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6.25전쟁 때 <전쟁중의 봄>이란 시를 읊었고 박정희대통령도 <거북선>이란 시조를 읊었습니다. 그 뒤 대통령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단시>란 제목으로 읊은 시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좀 소개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이승만대통령은 본래 한시도 지었고, 산문도 많이 썼는데 시조도 남긴 것이 있습니다. 1951년 봄에 지은 것인데 제목이 <전쟁 중의 봄>입니다.

강산을 바라보매 진지는 연기 자욱하고

되 기빨 양 돛대 봄 하늘을 가리웠는데

집 없이 떠도는 이들 생살 씹고 다닌다

거리엔 벽만 우뚝 산 마슬엔 새 밭 매고

전쟁이야 멀건 말건 봄바람 불어 들어

피흘려 싸우던 들에 속잎 돋아 나온다

운율이 있는 시조에 가까운 시라고 할까요? 아니 바로 시조라고 해야겠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은 노래 가사도 썼는데 <거북선>이란 시조를 썼습니다.

남들은 무심할제 님은 나라 걱정했고

남들은 못미친 생각 님은 능히 생각했소

거북선 만드신 뜻을 이어 받드옵니다.

이 시조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한산섬 노래의 밤’ 행사 때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1971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은 시조가 있습니다.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지었다는 <옥중단시>입니다.

면회실 마루위에 세 자식이 큰절하며

새해와 생일하레 보는 이 애끓는다.

아내여 서러워마라 이 자식들이 있잖소.

이 시조는 연시조인데 첫째 수만 밝혔습니다. 이 세 대통령 외에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 대통령 들 시조를 지으신 거만요.

그럼 북한 통치자 시도 한 번 봐야죠.

임채욱 선생: 북한 통치자도 시를 읊습니다. 김일성이 지은 <묘향산 가을날에>는 가을날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6층 발코니에서 지은 것이고 또 한시, 다시 말해 한문으로 된 시도 지었는데 바로 <광명성찬가>란 것입니다. 이 시는 운률은 그런대로 잘되었는데 내용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것이 돼서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한 것이 돼서 좀 그렇지요.

김정일 역시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예술분야 어느 곳 손 안댄 곳이 없을 테고 직접 문학론, 미술론, 음악론을 쓴 사람이니 시 창작도 못할 것이 없지요.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 <조선아 너를 빛내리>, <진달래>, <제일강산> 등등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김일성이 지은 <묘향산 가을날에>를 한 번 보지요.

료대 우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

묘향산 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 것을

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 펴니

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

로동당 새시대에 햇빛도 찬란하니

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

산천에 수놓구나 이 나라 새 력사를 (이하 생략)

1979년 10월에 지었다는 이 시가 북한 분류로는 서정시인데 송시, 즉 공덕을 칭송하는 시지요. 한국에선 시조라고 하겠는데 북한에선 시조라는 장르가 없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이 시를 두고 북한에서는 조기천의 <백두산>, 박세영의 <밀림의 역사>보다 더 걸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를 두고 보존해야 할 국보’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 시를 접하는 북한 시인들보다 더 행복한 시인은 세상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정일이 지은 시도 있다지요.

임채욱 선생: 뭐 어릴 때 지었다는 <한 초가 한 시간이 되어줄 수 없을가>를 소개하죠.

시계야 너라도 좀 더디게 가다오

아버님 쉬실 때만이라도

한 초가 한 시간이 되어 줄 수 없을까

이 시는 인민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것인데 이 짧은 시에 대한 북한문단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휴식을 좀 하도록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는데 시를 뜯어보면 철학적 심오성이 투영돼 있고, 풍만한 서정이 넘치고 비범한 시어들을 구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끝내지요. 어떻든 통치자도 시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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