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를 보는 남북한의 관점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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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
하늘에서 본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가야 이주민들이 일본으로 가서 갸야계 소국들을 세웠음을 강조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한국대통령이 가야라는 역사상의 나라를 연구하고 복원해서 영남과 호남의 벽을 허물면 좋겠다고 말 한 뒤, 한국에서는 가야사 연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가야사 연구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얼마 전 8월 말에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야사 관계 세미나가 열렸고 매스컴을 통해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언급이 나왔고 관련 동향은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지난 6월 초(1일) 문 대통령은 삼국시기의 고대국가 가야(伽倻)가 영호남에 걸쳐 있었기에 이를 연구하고 복원해서 영호남 간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영호남 통합의 물꼬를 트면 좋겠다는 뜻에서 가야사 연구를 강조했다고 하지요. 이를 대통령의 지시라고 보고 정책과제로 삼으려는 기관장도 있고 해당되는 지방자치 단체들은 복원사업에 따른 예산을 얻으려고 움직인다고 하지요.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찬성도 하지만 반대도 많아요. 찬성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철기문화를 꽃 피운 가야국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대통령이 역사를 특정해서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대통령의 그런 지시는 학문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면서 반대하는 여론도 많지요. 가야사를 전공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가야사 연구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호남 화합을 위한 정치적 의도를 깔고 대통령이 지시해서 연구돼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야가 영남 쪽에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호남 쪽으로도 영역이 걸쳐있었는가요?

임채욱 선생: 전라도 동부지방인 남원, 장수 지역은 후기 가야시대 때 경상북도 고령에 기반을 둔 대가야가 세력을 넓혀간 곳이지요. 신라가 백제와 영토문제로 다투느라 대가야에 눈을 돌리지 못할 때였지요. 그래서 영호남에 걸쳐서 가야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지요. 호남으로 봐서는 극히 일부분이지요.

가야사 연구가 중요하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아시다시피 우리 고대사는 고조선에 이어 삼한과 삼국시대로 연결되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다투던 그 때 분명히 가야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가야는 철기를 생산하는 기술이 있어서 그때 중국이나 일본에 수출도 했고 농업도 발달됐고 가야금이 만들어지도록 문화도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6개 나라로 나눠져 있었으나 500년 이상 있었던 나라이니 당연히 네 나라, 즉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요.

그간에는 왜 가야 역사가 중시되지 않았는지요?

임채욱 선생: 무엇보다 가야사람 들이 남긴 기록이 없다는 것이지요. <가락국기>라는 역사기록이 고려 초까지 있었다는데 전해지지 않으니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에 실린 몇 줄 기록으로 가야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일본에서 지은 <일본서기>에도 가야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가야 땅 일부를 지배했다는 (엉터리) 주장만 실어놨지요. 결국 가야역사는 문헌기록 보다 가야가 있었던 땅에서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으로 정확한 모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지요.

북한에서는 가야사를 어떻게 보는지요?

임채욱 선생: 가야에 대한 북한의 관점은 한국역사학계의 관점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갸야의 성립, 건국설화, 국토영역, 문화 등등 모두 거의 같은 시각이고 같은 내용입니다. 북한 역사학계는 1988년 1월 경상남도 창원지방(다호리)에서 발굴된 가야유물 정보도 잘 알고 있으며 이 유물 중에서 붓이 나왔다는 것도 눈여겨봤습니다. 붓이 나왔다는 것은 문자생활을 수준 높게 했다는 것을 말한다고 좋게 평가합니다. 다만 북한역사학계에서는 가야 이주민들이 일본으로 가서 갸야계 소국들을 세웠음을 강조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이걸 아주 강조하고 내세웁니다.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가야계 소국들은 몇 개 됩니다. 북규슈 이또지마 반도에 이또지마 가야소국, 동남규슈 휴가의 사도벌 가야소국, 세도내해 연안에 있는 기비(吉備) 가야소국 등등입니다. 이들 소국들은 기원 후 3세기경에 일본으로 진출한 가야계 이주민들이 일본 영토 안에서 세운 나라들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왜(倭)라고 나오는 것이 바로 이들 가야계 소국의 군사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야사람들이 이렇게 일본 땅에 가서 나라도 세울 실력을 가졌는데, 일본은 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도 한다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말하는군요.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 가야지역에 일본이 다스리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역사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한마디로 임나일본부는 이 땅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허구란 말이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한 역사학계가 일치해서 반박합니다. 북한역사학자들은 6세기 일본열도 안에 있었던 가야계, 백제계, 신라계 등 조선계통 소국들을 일본 야마도 왕정이 통합한 사실을 두고 일본학자들이 왜곡하고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가야계 이주민들이 일본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했는데 북한학자들은 가야뿐이 아니고 백제, 신라도 나라를 일본 땅에 세웠다고 합니다. 김석형이라는 북한학자가 대표적인데 그가 말하는 삼국분국설을 따라서 북한학자들은 대체로 조선 땅에서 간 주민들이 일본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대담스러운 가설일 수도 있는데 한국학자들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임채욱 선생: 그야 받아들이는 학자도 있을 수 있고 안 받아들이는 학자도 있겠지요. 다만 삼국분국설은 그렇다해도 임나일본부설은 받아들이는 학자는 없을 겁니다.

가야역사를 보는데서 남북한은 거의 같은 관점이지만 가야계 주민이 일본으로 이주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학계가 더 크게 본다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런 셈이지요. 북한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것 중 이런 것은 주목되기도 하지요. 김수로왕 아내 허황옥 있지요? 인도 아유다국에서 왔다는 설이 있지요? 인도에서 바로 온 것이 아니라 중국 땅을 거쳐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요. 그런데 북한학자들은 허황옥이 인도 아유다국에서 탑을 싣고 왔다는 것은 승려들이 꾸며낸 것이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아유다국은 다름아닌 북규슈 동쪽에 자리 잡고 있던 가야계 소국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가야사 복원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요?

임채욱 선생: 우선 가야역사를 전공한 학자들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가야사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것이 무슨 영호남 화합이니 하는 의도를 깔고 무슨 정비사업을 벌인다든가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합니다. 가야역사는 자료가 부족한 만큼 유물, 유적 발굴에 힘써야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 가야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자치 단체들은 가야사 복원에 쓰일 예산을 따내려고 분주하다는 보도도 있는데 학자들의 의견을 잘 들어서 체계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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