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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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미국북한인권위원회 김광진 객원연구원이 전해드립니다.

새해 2011년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고 계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를 축하합니다. 수십 년 간 하루같이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고 있는 북한인민들도 이번 새해에는 내일의 희망이 보이는 오늘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날이 오면 북한에서는 누구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김일성동상을 찾아 설 인사 하는 것, 또 하나는 신년사를 외우는 일입니다. 새해 첫 출근해서는 어김없이 그 정형을 보고하고 총화 짓습니다.

친구들, 가족들과 어울려 노느라 '만수대 동상'에 가지 못했지만 누구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며 동상에 꽃다발을 바쳤다고 거짓보고를 했던 적도 여러 번 됩니다. 매일 아침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정성작업(청소)을 했다는 것도 이제는 둘에 하나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단지 모르는 척 할 뿐이죠.

김일성의 신년사가 나올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은 상관없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누가 먼저 암송하는가의 경쟁이었죠. 문답식학습경연도 많이 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외국어문학부가 암송의 달인이라 매번 1등을 했습니다. 김정일이 졸업한 정치경제학부는 체면을 봐 점수를 얹어줘 공동1위로 만들어 줄때가 많았습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하던 사상학습에서 제일 큰 충격을 받은 적이 두 번 있습니다. 가장 모욕적으로 느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하나는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칭송하는 송시를 써서 바쳤을 때와 다른 하나는 김 부자가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라는 남 다른 칭호를 우리에게 주었을 때입니다.

권력에 얼마나 눈이 어두웠으면 '인민의 어버이,' '세계 사회주의 본보기 나라의 위대한 수령'이라고 자칭하는 자가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그를 칭송하는 송시를 썼을까, 권력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절대 권력의 독재자 김일성이 아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광명성찬가'를 써서 바쳐야 할까하는 생각에 어쩐지 많이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김 부자가 '조선인민'을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오늘의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라고 밥 먹듯 쉽게 말할까. 혹시 3백만이 굶어죽어도 반항 한번 못 해보고, 20만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도 항거 한번 못 하고, 수만의 '조선여성'들이 중국에서 성노리개로 팔려 다녀도 평양에서 시위 한번 일어나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할까요?

1996년 대학 교수․박사 답사단 일원으로 백두산을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는 '고난의 행군'이 절정이던 시기, 기차역 마다 '꽃제비'(집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이들) 들이 차고 넘치고 세숫물까지 한 모금씩 팔던 시절. 어떤 애들은 철로에 떨어진 석탄투성이 밥알을 주어먹고, 어떤 애는 서툰 요술을 팔아 동냥도 하고, 어떤 애들은 짝을 지어 노래로 빌어먹고.

그런데 더 억이 막혔던 것은 세수를 언제 했는지, 옷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맨발인지 알길 없는 애들이 부르는 노래가 모두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수령님이 장군님을 우리에게 맡기고 가셨다'는 등 '수령칭송, 장군칭송'의 노래였습니다.

'아, 빌어먹는 것도 이 땅에서는 자유가 아니지. 결국 허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김 부자 칭송이로구나.' '관객들도 꽃제비들의 호객행위를 받아줄 자유가 없지, 그 티켓이 바로 김 부자 찬양이로구나.' 그 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습니다.

빌어먹는 것도 '장군님'을 칭송해야 용납되는 사회! 그런 세상이기에 김 부자는 오만하게도 계속 우리 인민을 '참 좋은 인민,' '쉬운 인민,' '노예 인민'으로 부르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심한 모욕감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 씨네도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겁니다. 루마니아의 챠우세스크도 총살당하기 바로 전까지 인민들이 자기를 칭송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