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남한에서의 1호 행사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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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서 북한군이 경계근무를 서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북한에서의 1호행사와 남한에서의 1호행사와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제가 외부세계에 대해 한쪽으로는 공감도 하면서, 또 다른 면에서는 많이 의아해 했던 것 중의 하나는 국가지도자들이 자연스럽게 국민들과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전용 공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폐쇄적이지 않은 사실, 국민들과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순간에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북한인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죠.

저도 북한에 있을 때 1호 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대통령을 환영하는 연도행사나, 열병식 같은 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직접 면담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였죠.

1989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회 마지막 회의 때였습니다. 제가 맡은 대표단은 서독청년단체 부위원장이었는데요, 너무 까다로워 한 여인이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저와 바뀌었습니다.

당시 김 부자에게 충성을 다 해야 하는 제가 보기에 그는 정말 까칠했습니다. 1호행사장인 만수대 의사당에 엄격한 검열을 거쳐 입장을 했는데 그때 외국인들에게 카메라가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전 검열 시 한 두 번 벽에 대고 셔터를 누르게 했죠. 무기가 아닌지 안전여부를 확인했을 겁니다.

근데 등골이 오싹하는 사건은 김일성과 대면인사 때 일어났습니다. 김 씨 독재를 증오한 그 서독사람은 김일성 앞으로 다가가 거칠게, 모욕적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당황해 우리 대열 뒤로 왔다 갔다 하는, 호위총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를 재빨리 일렀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가 당황할 줄 알았는데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맡은 사람이 사고라도 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일성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한 후 다른 대표단을 만날 때 사진기를 갖고 김일성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나 했는데 사진은 몇 번 찍었지만 별일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김일성 주위를 해당 일꾼들, 호위총국사람들이 몇 겹을 치고 움직였으니까요. 그제야 나는 왜 그 호위일꾼이 무관심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얼마 전 여기 남한에서도 1호 행사에 참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북한에서보다 더 급이 높은 행사였죠. 이명박대통령을 직접 만나 악수도 나누고, 환담에도 참여하고, 식사도 했으니까요.

근데 남한의 1호 행사는 너무도 편했고, 수수했습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니 놀랐고, 대통령에게 하는 보고도 평범한 공무원에서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격이 없이 진행되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식사는 도시락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도, 장관도, 청와대 비서들도, 평범한 공무원도 비좁은 공간에서 꼭 같은 밥을 나눠먹었죠.

물론 금속 탐지기 검사와 같은 의례적인 사전 보안조치가 있었습니다만 금속 탐지기는 비행기 탈 때, 정부기관 출입 시에 누구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이지 대통령에게만 허용된 특권이 아닙니다.

그 외에 특이한 것은 전혀 없었죠. 지금에 와서 평양에 있을 때 가졌던 의문들이 많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외부세계에서는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직위와 역할이 좀 다를 뿐, 그것도 일시적으로, 그 외는 꼭 같은 밥을 먹고, 꼭 같은 집을 쓰고, 꼭 같은 하늘아래서 살고 있죠.

북한에서처럼 3대째 하늘이 낸 태양으로가 아니라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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